스물한 살 대학생 지은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서울까지 앞으로 두 시간 남짓.
휴대폰 화면에는 오후 4시 17분이 떠 있었다. 버스는 고속도로 위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차창 너머로 회색 방음벽과 가을 들판이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배 속에서 아주 작게,
꾸르륵.
소리가 났을 뿐이었다.
지은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손바닥을 배 위에 올렸다.
‘점심을 너무 급하게 먹었나.’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 친구와 먹었던 매운 떡볶이가 떠올랐다. 거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마셨다.
평소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몇 분 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꾸우욱—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천천히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올라왔다.
지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
통증이라기보다는 묘한 압박감이었다.
아주 익숙한 느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느낌.
‘설마.’
지은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옆자리에는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가 이어폰을 낀 채 잠들어 있었다. 앞좌석에서는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뒤쪽에서는 누군가 코를 골았다.
너무나 평온한 버스 안.
자신에게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지은은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가방을 끌어안았다.
‘아니야. 그냥 배가 좀 아픈 거겠지.’
하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단순한 복통이 아니었다.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신호.
그것도 소변이 아니었다.
지은의 얼굴에서 조금씩 표정이 사라졌다.
휴대폰을 켜 지도 앱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1시간 58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두 시간?’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려 보았다.
혹시 중간에 휴게소에 들른다는 안내가 있었던가.
예매할 때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고속버스에서 화장실 때문에 고생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은은 앞좌석 등받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흘끗 보았다.
그 어디에도 휴게소 관련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배가 움직였다.
꾸르르륵.
이번에는 확실히 느껴졌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압박감이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
지은은 다리를 가지런히 모았다.
‘괜찮아.’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나 원래 잘 참잖아.’
실제로 그랬다.
수업 중에 화장실이 급해도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었고, 지하철에서도 웬만하면 집까지 참는 편이었다.
그러니 두 시간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갑자기 배가 세게 꼬였다.
“읏…”
아주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지은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등줄기가 순간 굳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신호였다.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한 번 크게 밀려 내려온 듯했다.
지은은 본능적으로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몇 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다 압박감이 서서히 약해졌다.
지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미쳤다.”
이번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급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손끝이 차가워졌다.
‘지금 기사님한테 말해야 하나?’
시선을 버스 앞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부담스러웠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면 기사님이 바로 세워 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요.”
그 말을 승객들이 듣는 장면을 상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야.’
지은은 고개를 아주 작게 저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남은 시간.
1시간 51분.
불과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더 끔찍했다.
지은은 시간을 보지 않기로 했다.
휴대폰 화면을 껐다.
창밖을 바라봤다.
다른 생각을 하면 괜찮아질지도 몰랐다.
지나가는 자동차 번호판을 세었다.
노래를 틀었다.
SNS도 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화장실.
그 단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화장실 문.
변기.
휴지.
그리고 거기에 앉는 순간의 안도감.
‘생각하지 마.’
지은은 이를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생각과 반대로 움직였다.
아랫배가 다시 조금씩 무거워졌다.
이번에는 통증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조용하게 압박이 쌓이고 있었다.
마치 몸 안에서 누군가 천천히 무게추를 올려놓는 것 같았다.
지은은 두 발을 가지런히 붙였다.
허벅지에도 힘이 들어갔다.
손은 어느새 가방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한 시간 반만 참자.’
아직 두 시간이 가까이 남았는데도 시간을 마음대로 줄였다.
‘한 시간 반쯤 지나면 거의 다 온 거잖아.’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버스가 도로의 이음매를 지나며 크게 흔들렸다.
덜컹.
지은의 몸이 좌석 위에서 아주 조금 튀었다.
그리고—
“…!”
아랫배에 순간적으로 강한 압박이 밀려왔다.
지은은 양손으로 가방을 움켜쥐었다.
숨이 멎었다.
‘안 돼.’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이거…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굴은 뜨거운데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옆자리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자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도 평온했다.
오직 지은만이 좌석에 꼿꼿하게 앉은 채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견디고 있었다.
몇 초 뒤 압박은 다시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은도 알고 있었다.
끝난 게 아니었다.
잠시 물러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신호는 아까보다 더 강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은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켰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검색창을 열었다.
‘고속버스 화장실 급할 때’
검색 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췄다.
그 순간.
배 속 깊은 곳에서 다시 길고 낮은 소리가 울렸다.
꾸우우우륵—
지은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는 배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아래쪽으로 힘이 내려왔다.
지은은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잠깐.’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는데….’
그녀는 그제야 처음으로 떠올렸다.
정말 끝까지 못 참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 생각이 시작되자,
지은은 더 이상 창밖 풍경을 볼 수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이 떠 있었다.
**1시간 43분.**
지은은 그 숫자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버스는 멈출 기색 없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