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 유리문이 열렸다.
딸랑.
현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검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조금 급하게 뛰어온 듯 숨을 고르고 있었다.
“미정 씨.”
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카운터 뒤에 앉은 채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는 금방 표정이 달라졌다.
“무슨 일 있어요?”
“올라가자.”
“203호요?”
“응.”
둘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203호 문이 닫혔다.
평소라면 현우가 먼저 미정을 끌어안거나 장난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미정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정 씨.”
“응.”
“무슨 일인데 그래요?”
미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손에는 병원에서 받아온 봉투가 들려 있었다.
현우가 그걸 바라봤다.
“병원 갔다 왔어요?”
그 한마디에 미정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응.”
“어디 아파요?”
미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어젯밤부터 수십 번이나 머릿속으로 연습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우가 눈앞에 있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우야.”
처음이었다.
미정이 그를 이름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부른 것은.
현우도 그것을 느꼈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네.”
미정은 봉투에서 검사 결과지를 꺼냈다.
그리고 현우에게 내밀었다.
“이거 봐.”
현우는 영문도 모른 채 종이를 받았다.
몇 줄을 읽었다.
다시 읽었다.
그리고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이거….”
미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임신…?”
미정이 아주 작게 대답했다.
“응.”
현우의 눈이 커졌다.
미정은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놀란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확실해요?”
“병원에서 검사했어.”
“테스트기만 한 게 아니고요?”
“혈액검사도 했고 초음파도 봤어.”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미정은 그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다.
“뭐라도 말해.”
현우가 천천히 침대에 앉았다.
“잠깐만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미정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서운 거겠지.’
스물셋.
대학생.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나이.
그런 현우에게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미정은 오히려 자신이 먼저 말했다.
“당장 대답 안 해도 돼.”
현우가 얼굴에서 손을 내렸다.
“미정 씨.”
“응.”
“진짜 제 아이인 거죠?”
그 질문에 미정은 순간 기분이 상할 뻔했다.
하지만 현우의 표정을 보고 참았다.
의심해서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확인하는 얼굴이었다.
“네 아이 말고 누구 아이겠어.”
현우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미정의 배를 바라봤다.
아직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았다.
그런데 현우는 마치 그 안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봤다.
“여기에….”
그가 말했다.
“진짜 있는 거예요?”
미정의 목이 메었다.
“그렇대.”
현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이 기쁜 건지 당황한 건지 미정도 알 수 없었다.
“와….”
한마디가 전부였다.
미정은 오히려 초조해졌다.
“현우야.”
“네.”
“너한테 책임지라고 부른 거 아니야.”
현우가 그녀를 바라봤다.
미정은 말을 이어갔다.
“네 나이 알아. 아직 학교도 다니고 있고 앞으로 할 것도 많잖아.”
“미정 씨.”
“들어봐.”
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이 나이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 못 했어.”
미정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솔직히 아직 나도 정신이 없어.”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무섭다고 해도 이해해.”
현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정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싫다고 해도… 이해할게.”
그 말을 하면서 미정은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현우가 떠나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다.
아이보다 먼저 그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현우가 갑자기 물었다.
“미정 씨는요?”
“뭐가?”
“아이 낳고 싶어요?”
미정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계속 피하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모르겠어.”
“무서워요?”
미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현우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정의 손을 잡았다.
“저는….”
미정이 그를 바라봤다.
현우는 한동안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낳았으면 좋겠어요.”
미정은 그대로 굳었다.
“뭐?”
“아이요.”
“현우야.”
“진짜예요.”
미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너 지금 놀라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스물셋이야, 너.”
“알아요.”
“학생이야.”
“알아요.”
“애 하나 키우는 게 무슨 연애하는 거랑 같은 줄 알아?”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몰라요.”
그 대답에 미정은 말을 멈췄다.
현우가 말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라요.”
그는 미정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돈도 많이 없고.”
“…….”
“학교도 다녀야 하고.”
“…….”
“부모님한테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겠고.”
현우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근데 그래도….”
미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정의 눈이 흔들렸다.
현우는 시선을 내려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오히려 이상하게….”
작게 웃었다.
“진짜 있다고 생각하니까 보고 싶어요.”
미정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뭘 봐.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요.”
현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미정의 배 위에 올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세게 만지면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정은 그 손을 바라봤다.
예전에도 현우가 자신의 배를 만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현우의 손 아래에 정말 자신의 아이가 있었다.
두 사람의 아이.
“아빠 되는 건가.”
현우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미정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난 채로.
“너 진짜 상황 파악 안 되지?”
현우도 웃었다.
“좀 안 돼요.”
“좀?”
“많이요.”
잠시 둘 다 웃었다.
그 웃음이 방 안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하지만 미정은 다시 진지해졌다.
“현우야.”
“네.”
“이건 네가 지금 좋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알아요.”
“병원에서도 내 나이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고 했어.”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미정은 말을 이어갔다.
“아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검사 많이 해야 한대.”
현우가 바로 말했다.
“같이 갈게요.”
“뭐?”
“병원.”
미정은 그를 바라봤다.
“저도 같이 갈게요.”
“학교는?”
“시간 맞추면 되죠.”
“수업은?”
“빠져야 하면 빠지고.”
“현우야.”
“저 진짜예요.”
미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현우가 말했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건 맞아요.”
“…….”
“근데 도망가지는 않을게요.”
그 말에 미정의 표정이 무너졌다.
어젯밤부터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책임지겠다는 거창한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도망가지 않겠다는 말.
미정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현우가 놀라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왜 울어요?”
“몰라.”
“제가 뭐 잘못 말했어요?”
“아니.”
미정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냥 내가 미쳤나 봐.”
현우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정은 잠시 버티다가 결국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현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도 무서운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너도 무섭지.”
미정이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현우가 대답했다.
“네.”
“그런데 왜 낳자고 해.”
현우는 미정의 등을 쓰다듬었다.
“제 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우리 둘 때문에 생긴 거잖아요.”
그 말이 미정의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혔다.
우리 둘.
처음으로 현우가 그렇게 말했다.
누구의 실수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둘.’
미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말 낳았으면 좋겠어?”
현우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네.”
“나중에 후회해도?”
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후회할 수도 있겠죠.”
미정의 표정이 굳으려는 순간 현우가 말을 이어갔다.
“근데 무서워서 지금 없애버리면 그것도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미정은 그 말을 듣고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의 배 위에 놓인 현우의 손 위로 손을 겹쳤다.
두 사람의 손이 겹쳐졌다.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작은 배.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미정에게 그 안의 존재가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현우야.”
“네.”
“나도….”
미정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겨우 말했다.
“나도 낳고 싶은 것 같아.”
현우가 미정을 바라봤다.
“진짜요?”
미정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응.”
현우는 그대로 미정을 꽉 끌어안았다.
미정 역시 그의 등을 감쌌다.
그날 203호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성관계 없이 오랫동안 함께 있었다.
아이 이름은 뭘로 할지.
현우는 졸업을 어떻게 할지.
병원은 언제 다시 갈지.
돈은 어떻게 할지.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운 문제들뿐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처음으로 그 문제들을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졌을 때 현우가 다시 미정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근데요.”
“왜?”
“딸일까요, 아들일까요?”
미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제 임신 확인한 사람이 벌써 그걸 궁금해?”
현우도 웃었다.
“궁금하잖아요.”
미정은 그런 현우를 한동안 바라봤다.
이상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는 자신에게 위험한 일탈이었다.
언젠가 끝날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아이의 성별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미정은 현우의 손 위에 다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두 사람은 203호 문을 나서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