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줄 요약 먼저
1. 코로나 시기 개날먹 부업 없나 찾아 보던 중 알바몬에서 중계 기기 설치 알바 찾음
2. 쎄한 느낌이 들어서 경찰 신고함
3. 공범으로 엮여서 ㅈ될뻔 함
2021년 초 아니면 2022년 초였던 걸로 기억함.
길어진 코로나 때문에 너도나도 부업을 찾고 유튜브에도 디지털노마드 이런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던 시기였음.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보니 나가기는 싫고, 개날먹으로 집에서 할 부업 없나 싶어서 알바몬을 뒤적거림.
몇 가지는 지원도 해보고 그러면서 중계기 설치 건당 40만원이라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음.
뭔가 싶어 눌러보니 배달 어플 개발 중이며 해당 지역의 배달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중계기이며, 한 대만 집에 설치해 두면 월 40만원을 준다고 하더라.
이게 무슨 개꿀이지 싶어서 바로 지원하고 다음 날 퀵으로 중계기를 전달 받았음.
통화하면서 설치 방법 물어보니 전원 연결하고 랜선만 꽂아주면 된다며 랜선 구입 + 멀티 탭 필요할 테니 10만원을 별도로 지급해 준다고 함.
멀티탭 남아돌고 재택 근무 때문에 랜선도 남아돈다고 거절했지만 남들 다 받는데 본인만 안 받으면 손해 아니냐길래 새로 살 필요도 없는데 굳이 받는 건 마음이 안내킨다고 재차 거절함.
근데 처음 온라인 계약서? 같은 거 쓸 때 기재한 내 계좌로 5만원을 입금하더라. 이거라도 받으라고.
다행히 이 때 여러차례 거절하던 카톡이랑 통화 녹음이 남아있어서 후에 도움이 크게 됐음.
돈은 한달 되는 날 후불로 받기로 하고, 가동률에 따라 두대~세대 추가 설치를 요청할 수 있고 기기당 40만씩 더 준다길래 진짜 머가리 텅텅 빈 것처럼 마냥 신나기만 했음.
그리고 다른 지원했던 것들은 어떻게 됐나 싶어서 다시 알바몬을 켜고 지원 현황을 보는데 이게 무슨 일?
그 중계기 설치 공고가 삭제됐고 화면에는 '대포 통장 등 어쩌구' 하면서 아무튼 불법적인 사유로 공고가 삭제됐다고 써있는 거임.
순간 쎄함을 느낀 나는 바로 네이버에 '중계기 설치 알바'를 검색해 봤고 기겁을 했음.
내가 받은 기계랑 똑같은 게 잔뜩 쌓여있는 사진이 무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발신번호를 010으로 바꿔주는 기계였던 거임.
여기 위에 가운데 위에 있는 거랑 똑같이 생겼었음 진짜로.
너무 놀라서 바로 랜선 뽑아버리고 전원도 뽑아버렸는데, 바로 그 범죄자 새끼한테 전화 오더라.
당시 새벽 4시경이었는데 솔직히 무서워서 전화 안받았음.
그리고 112에 전화 걸어서 내가 알바하려고 무슨 기계를 받았는데 이거 인터넷에 있는 보이스피싱 중계기랑 똑같다, 그래서 신고하려고 전화했다니까 담당 지구대에서 출동할거라며 일단 통화 종료함.
그리고 약 15분 뒤, 지구대에서 도착하고 기계를 회수해 갔음.
그리고 내가 이 기계를 받기까지의 과정, 상대방의 전화 번호, 나눴던 카톡 내역과 통화 녹음까지 전송해 줬음.
이 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게 아무 의심이 없었지 라는 자책과, 그래도 누군가의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뿌듯함이 공존하던 상태였음.
근데 기계 회수해 갔던 지구대원 두 명이 다시 오더니 임의동행이란 걸 할 수 있겠냐고 함.
거절해도 되지만, 제보자인 만큼 상세한 경위를 듣기 위함이라고 하길래 다음날 어차피 쉬기도 하고 흔쾌히 ok하고 경찰차에 탔음.
이른 새벽 도착한 곳은 지구대가 아닌 경찰서였고 1층에 무슨 방(어떤 과였는지 기억이 안남)에 가서 마음 편히 앉아 있었음.
그렇게 한 10분 앉아있었을까?
나를 데려온 지구대원과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고 들어오더니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여유롭게 앉아있는 나에게 굉장히 위협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함.
형사 : 본인 지금 태도가 그게 뭐에요?
나 : 네? 제 태도가 왜요?
형사 : 본인 무슨 신분으로 여기 왔어요?
나 : 신고자 아닌가요?
형사 : 무슨 소리에요, 본인 공범 신분으로 여기 앉아있는 거에요. 돈 받았죠?
나 : 네?? 공범이요? 기계 받은지 10분도 안걸려서 껐고 돈은 안받는다는 거 그 쪽에서 억지로 준 건데요?
형사 : 다 그렇게 말해요 나는 억울하다고. 걸릴까 봐 먼저 신고한 거 아니에요?
나 : 아니 아까 다 설명하고 자료도 다 드렸는데요?
형사 : 내가 지구대원한테 들었던 내용이랑 다른데? 일단 조사 받아 보세요. 여기서 하는 건 아니니까.
대충 위랑 비슷한데 글자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내용은 거의 90% 위와 같았음.
실제 조사는 2층에 있는 지능 범죄 수사과였나? 그런 곳에서 받았는데 내가 전해 준 자료가 이미 출력되서 다 넘겨졌더라.
팔락팔락 넘기며 읽어보더니 나를 되게 안쓰럽게 쳐다 보며
"하, 신고자를 무슨 범죄자 취급해서 올려놨네. 이러니까 사람들이 신고를 안하지. 죄송해요." 라고 이야기 함.
이 후부터는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뚝딱뚝딱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 신고자 신분으로만 진술하고 끝남.
그 과정에서 신고 과정과 1층 형사와의 대화까지 이야기 하니 "실적에 미쳐가지고..."라며 중얼거리더라.
2층 형사가 집까지 태워다 주며,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말라고 각자 다 본인들 실적 때문에 과하게 말했던 것 같다고 함. 혹시나 얘네가 배달 음식 같은 거 테러할 수도 있는데 그건 사실 자기들이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일 당하면 꼭 신고해 달라던 게 기억에 남았음.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거 아니면 그 어떤 불의를 목격 하더라도 못 본척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현재까지 그 다짐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음.
연배도 있고 직급 체계는 모르겠지만 일반 순경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ㄱㄹ3 파출소의 김xx님.
지금은 어떤 신분이신지 모르지만 덕분에 경찰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인터넷 썰에서 과장된 게 아니었단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네도 신고할 일 생기면, 혹시나 내가 책 잡힐 일 없나 여러 번 확인해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일단 '넌 유죄야. 그러니 거짓말 할 생각말고 순순히 불어라'라는 고압적인 태도고 내가 하는 말은 그냥 범죄자가 늘 하는 변명으로만 취급해서 진짜 말 문이 턱턱 막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