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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한 리퍼의 고백

아이콘 힐라
조회: 134
2026-07-05 14:21:12
우리 파티는 수많은 사지와 핏빛 전장을 함께 헤쳐 나왔습니다.

비록 같은 무기를 들고, 같은 기술을 사용해 전술적인 이점 하나 없는 싸움을 반복했을지라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가 있었고, 그 믿음 하나만으로 우리는 끝없이 몰아치는 전장의 아가리를 찢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백 번 패배했고, 수도 없이 전멸했습니다.

좌절이 목을 조르고 희망이 바닥을 드러낼 때에도, 우리 마음속에 '패배'라는 두 글자를 품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 명이 무너지면 세 명이 일으켜 세웠고,

두 명이 쓰러지면 남은 두 명이 끝까지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세 명마저 힘을 잃은 순간에도 마지막 한 사람이 기적처럼 버텨내며 반격의 시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끝없는 혈투 속에서, 정작 저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거대한 적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검을 들던 자신감은 어느새 사라졌고, 이제는 앞장서는 전우들의 등을 바라보는 것조차 미안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여러분의 등을 지켜낼 자신이 없습니다.

무력감이 마음을 잠식했고, 이제는 여러분 곁에 서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제 죽음이 여러분의 투지를 꺾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제 실수가 여러분의 결속에 균열을 만들까 두렵습니다.

제 검 한 번 빗나가는 것이, 여러분이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릴까 두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절망이 여러분에게까지 번질까 두렵습니다.

끝내 제가 저 거악보다 더 큰 짐이 되어, 사랑하는 전우들을 제 손으로 나락으로 밀어 넣게 될까 봐 미치도록 두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녹슨 비수를 쥐려 합니다.

다시 절망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려 합니다.

비록 기댈 곳은 쿨타임이 돌아오는 디스토션뿐일지라도, 저는 다시 싸우겠습니다.



여명은 쫓아가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곁에 어느새 도착해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다시 이 칠흑 같은 수라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언젠가 우리의 피투성이 어깨 위로 조용히 내려앉을 그 눈부신 아침을 기다리며,

오늘도 기꺼이 여러분 곁에서, 서투른 칼춤을 다시 한번 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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