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오래도 했다.
2주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쉽게 놓지 못했던 게임이다.
처음엔 사람들도 참 친절했고, 게임도 정말 재밌었다. 그때 나는 풋풋한 20대 후반이었는데,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네.
발비쿠 시절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몇 시간씩 트라이하고, 결국 클리어했을 때의 그 짜릿함.
알비온은 또 어땠고. ㅋㅋㅋㅋㅋㅋㅋ
카멘도 재밌었고, 카제로스도 재밌었다.
그때는 정말 게임이 게임다웠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싶었고, 밤을 새워도 아깝지 않았고, 클리어하고 나면 그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게임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분노와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감가? 이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장비 가치가 떨어지고, 성장 구조가 바뀌고, 기존에 투자했던 것들이 의미 없어질 수도 있지.
온라인 RPG니까. 그런 건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 캐릭터 자체의 성능 차이는 대체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 비슷한 돈을 쓰는데 누구는 캐릭터 잘 골랐다는 이유만으로 압도적인 성능을 뽑고, 누구는 아무리 투자해도 그 격차를 메우지 못한다.
밸런스 패치는 대체 어디다 팔아먹었냐?
유저들이 뭘 불만스러워하는지, 왜 지쳐가는지, 어떤 부분에서 박탈감을 느끼는지.
그렇게 오래 운영하면서 아직도 그 흐름 하나 제대로 못 읽냐?
나이스단 때는 그렇게 질질 짜더니, 이건 왜 조용하냐?
아, 그냥 내가 다른 캐릭터를 키운 병신인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설명되긴 하네. ㅋㅋㅋ
밸런스 패치 자주 하겠다며.
믿었다. 진짜 믿었다.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내가 키운 캐릭터도 제대로 대접받겠지.
그런데 돌아온 건 뭐냐?
차술 7000 들고 와서 딸깍으로 DP 21억 뽑는 꼴이나 보고 앉아 있으니, 그냥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내가 쏟아부은 돈과 시간은 대체 뭐였을까.
지금까지 결제한 금액을 확인해 봤다.
2천만 원이 조금 넘더라.
시발, 그냥 그 돈이나 모을걸.
물론 내가 선택해서 쓴 돈이다. 누가 강제로 결제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재밌게 놀았으니 그 값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까 너무 허무하다.
그 돈으로 여행이나 다닐걸.
좋은 거 먹고, 좋은 풍경도 보고, 다른 경험도 해볼걸.
그래도 뭐, 잘 놀았다 치자.
내 돈으로 니들 점심이나 맛있게 처먹였다고 생각할게.
그런데 돈보다 더 아까운 게 있다.
바로 시간이다.
출근해야 하는 날에도 어떻게든 레이드 하나 깨보겠다고 밤을 새웠다.
피곤한 몸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또 게임을 켰다.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싶어서, 남들한테 뒤처지기 싫어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끝까지 키워보고 싶어서.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내가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지?'
게임이라는 게 원래 즐거우려고 하는 거 아니냐?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장하고, 결국 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
그게 게임의 재미 아니었냐고.
그런데 이제는 게임을 켜기도 전에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오늘은 또 얼마나 불합리할까.
내 캐릭터는 또 얼마나 초라해질까.
내가 투자한 건 또 얼마나 무의미해질까.
게임을 하면서 즐거울 생각보다 고통받을 걱정을 먼저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도전의 의미도, 성장의 보람도, 노력에 대한 보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은 건 박탈감과 자괴감뿐이다.
더 좆같은 건, 이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관심도 없었으면 화도 안 났겠지.
애정이 없었으면 진작 접었겠지.
그런데 좋아했으니까 참았다.
좋아했으니까 기다렸다.
좋아했으니까 욕하면서도 다시 접속했다.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버틴 결과가 이거다.
즐거웠던 기억보다 괴로웠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수많은 레이드를 클리어하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막상 마지막에 남은 감정이 행복도 아쉬움도 아닌 분노라는 게 참 씁쓸하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렇게 싫으면 접으면 되잖아."
맞아.
그래서 이제 접는다.
더 이상 내가 좋아했던 게임을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참 이상하다.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걸 쏟아부었는데, 떠나기로 마음먹은 지금은 후련함보다 허무함이 더 크다.
한때는 내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게임인데.
이제는 내 하루에서 가장 먼저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됐다.
"너 아직도 그 게임 하니?"
응. 했다.
존나 오래 했다.
남들이 떠날 때도 남았고, 욕하면서도 했고, 지치면서도 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오래 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야 할 가치는 없다는 걸.
내가 그리워하는 건 지금의 로스트아크가 아니라, 예전에 그렇게 즐겁게 플레이했던 그 시절의 로스트아크였다는 걸.
그 시절은 이미 끝났는데 나 혼자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던 거다.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게임 속 풍경 대신 진짜 자연을 좀 보고 살아야겠다.
밤새 레이드 트라이할 시간에 잠도 푹 자고, 스트레스받을 시간에 다른 즐거움도 찾아보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스마일게이트.
너희 게임을 정말 좋아했던 유저로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유저가 떠나는 이유가 단순히 게임에 질려서라고 생각하지 마라.
게임이 재미없어져서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좋아했던 게임에 계속 실망하고, 지치고, 결국 좋아했던 마음마저 닳아 없어져서 떠나는 사람도 있다.
게임을 접는 게 아쉬운 게 아니라,
그렇게 좋아했던 게임을 이제는 증오하게 됐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다.
2주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오래 함께했다.
이젠 추억으로만 남겨둘게.
다시는 스마일게이트 게임 쳐다보지 않겠다.
내 20대의 끝자락부터 30대까지 함께했던 게임아.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결국 다시는 보지 말자는 말밖에 안 남았네.
잘 있어라.
다시는 만나지 말자.
내가 사랑했던 로스트아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