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 불빛 환한 GS25 편의점 코너에서 정해진 위치에서 나를 기다리는 라면이 있습니다
붉고 강렬한 디자인,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용사 라면'.가격은 고작 1,800원.
이 시대의 가장 유혹적인 전투 장비입니다
이 라면은 단순히 맵다고 주장하는 어설픈 도전자들과는 격이 다릅니다
이 용기의 바닥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23,000 스코빌 (SHU). 출시일 기준, 이 나라에서 가장 매운맛의 왕좌를 차지한, 절대적인 폭력의 수치입니다
다른 라면들이 "매콤해요", "살짝 얼큰해요"라며 소비자의 상상력에 모든 걸 맡겨 버릴 때,
용사 라면은 팩트 폭행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네가 오늘 겪을 고통의 양은 정확히 23,000이다."
하지만 이 라면의 진정한 가치는 선택권에 있습니다
바로 [별첨 스프] 라는 판도라의 상자
이것을 통째로 쏟아부으면, 당신의 뇌는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정신이 아득해지는 향에 취해 오늘의 끔찍한 현실을 잠시 망각하게 될 겁니다.
혹은 용기가 나지 않는 날, 스프를 남겨두어 안전한 후퇴로를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조절할 권리를 소비자에게 위임한 것이죠
그리고 국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그 파란 버섯 모양의 후레이크. 붉은 지옥불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청량한 기호. 마치 메이플에서 피가 없는 극한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한 모금에 모든 에너지를 회복시켜 줄 것만 같은 묘한 위안을 던져줍니다
결국 GS 용사 라면이 우리에게 1,800원에 파는 것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극한의 경험입니다
꾹 닫힌 뚜껑 사이로 보이는 강렬한 붉은 국물. 우리는 이미 수십 번의 도전 경험을 통해, 저 라면을 입에 넣는 순간 혀끝에서 펼쳐질 불의 궤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오늘은 좀 덜 맵네" 라거나 "어제보다 싱겁네" 같은 불안정한 변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23,000 스코빌이라는 불변의 확실성 이야말로,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불안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뜨겁고 확실한 위안이 되는 것 아닐까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