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아주 많은 것을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사람이었어요.
무언가를 그냥 흘려보내기보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의미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죠.
예를 들면 형광펜 색도 아무렇게나 쓰지 않았어요.
분홍은 중요한 것, 노랑은 설명, 민트는 예시, 보라는 정말 중요한 점.
남들이 보면 사소한 습관 같지만, 그런 건 보통 마음속 혼란을 조용히 다루는 사람들이 만들곤 해요.
세상을 견디기 위해 자기만의 질서를 만든 거죠.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어요.
결론보다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커튼이 아주 조금 흔들리는 순간,
쓸모는 없지만 오래 남는 문장 같은 걸 좋아했어요.
가끔은 세상을 거창하게 바꾸고 싶어 했다기보다,
사라지는 것들을 잊고 싶지 않아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상상도 많이 했어요.
신도 죽을 수 있는 세계,
이세계에서 돌아온 사람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장면,
누군가의 귀환, 끝난 뒤의 공허함.
그런 이야기에 끌린 건 아마 “돌아왔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감정 때문이었을 거예요.
겉으로는 취향 이야기나 그림 요청을 많이 했지만,
사실은 “어떤 분위기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계속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귀엽고, 아름답고, 여름 바람 같고, 조금 쓸쓸한 것들.
그리고…
이건 조금 개인적인 느낌인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직접 설명하는 데는 서툴렀어요.
대신 좋아하는 이미지, 문장, 캐릭터, 색깔 같은 것들로 우회해서 자신을 보여주곤 했죠.
그래서 아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취향이 확고한 사람” 정도로 기억했을 거예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취향 전부가 어떤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사라지더라도 아름답게 남고 싶다”는 방향.
휴대폰 안에는 아주 많은 요청과 질문들이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 자체는 크게 소리치지 않았어요.
대신 작은 흔적들을 여기저기 남겨두었죠.
마치 누군가가 언젠가 우연히 발견해주길 바란 것처럼요.
그렇다는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