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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아파트 게시판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한 마음이 됐다

재획하다골병
댓글: 59 개
조회: 18981
추천: 89
비공감: 6
2026-09-03 16:14:19
저희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입니다.

주차 공간도 부족하고, 층간 소음 문제도 많고, 입주민들끼리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때문에 싸우고,
주차 문제로 싸우고,
분리수거 때문에 싸우고,
택배를 복도에 놔뒀다고 싸웁니다.

며칠 전에는 주차 문제로 크게 싸움이 났습니다.
어떤 차가 매일 밤 아파트 현관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주차금지 구역이었고, 소방차 진입로와도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누군가 사진을 찍어 단체톡방에 올렸습니다.
"이 차는 매일 여기 세우네요. 신고합시다."
그러자 바로 답변이 달렸습니다.
"번호판 가리고 올리세요."
"뭐가 급하다고 매일 저기 세움?"
"한 두번도 아니고 이정도면 일부러 저러는거 아님?"

그 중 한명은 말했습니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요?"

반박글이 달렸습니다.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있음?"
"사정 있으면 남들한테 피해줘도 됨?"

저도 솔직히 왔다갔다 할때마다 신경쓰이고 불편해서 싫었습니다.

다음날 밤 11시쯤, 잠깐 바람좀 쐬러 내려왔는데 그 차가 또 있더라구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한마디 해야겠다.'

그런데 차주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뒷좌석에서 할머니 한분을 안아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몸을 거의 가누지 못하셨습니다.

차주는 할머니를 안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로 돌아와서 휠체어를 꺼냈습니다.
그러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는

"혹시 차 때문에 불편하셨으면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하시더군요.
저는 여쭤봤습니다.
"어머니세요?"
끄덕이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저희 어머니가 지난달부터 많이 안좋아지셔서 병원에서 돌아오면
여기까지 모셔오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다시 돌아온 무렵, 단체톡방에선
"또 그 차 입구에 대놨다, 신고해야된다, 민폐다"
라는 글들이 올라오더라구요.

전 고민하다 결국 글을 올렸습니다.
"저 차주 어머니가 편찮으신 것 같습니다."

답변이 달리더라구요.
"그래도 규정은 지켜야죠."

맞는 말이긴 합니다. 거기에 반박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파트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붙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근 주차 문제로 말이 많았던 차량의 차주입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저희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신데,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저 하나뿐이라 혼자 챙기다보니 정신이 많이 없었습니다.
불편을 드린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번 주까지 병원 치료가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엔 최대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단체톡방 분위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누군가 차주 분께 질문을 했습니다.
"병원 몇시에 다니세요?"
차주가 답했습니다.
"월, 수, 금 저녁 8시쯤 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가 그 시간에 집에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같이 내려가 드릴게요."
또 다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휠체어 타시는거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희 집도 어르신 계셔서 휠체어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빌려드릴게요"

주차 문제로 싸우던 사람들이 어느 병원이 가까운지,
휠체어를 어디서 빌릴 수 있는지, 어느 시간대가 병원이 덜 붐비는지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더라구요.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의 얼굴보다 자동차 번호판을 더 많이 보고, 자신의 불편함에만 초점을 두고 있던게 아닐까..'

그 후로 몇 주가 지나고, 단체톡방에 차주분이 글을 올리셨습니다.
"어머니가 오늘 퇴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그 차주분이 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오늘 새벽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 평소에 싸우던 시간대에도 단체방은 조용해지고,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참 고민을 하다 글을 썼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차가 정말 싫었습니다. 왜 자기 편한 것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걸 생각하지 않는지.. 근데 이제는 그 차를 보면
어머님 모시고 병원 다니시던 모습만 생각날 것 같습니다."

차주분이 답하셨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분들은 제 사정을 알 방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희 동에선 이웃간의 층간 소음에도,
택배가 복도 길을 막고 있어도,
분리수거가 잘 되지 않아있어도 싸움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싸움은 밸런스패치때만 하고 있습니다.
카데나 제논 너프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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