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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배불뚝이 과장님 2편

깨먹이
댓글: 1 개
조회: 1085
추천: 3
2026-09-17 1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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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정적을 깨고 사무실을 울린 소음은 분노를 넘어선 묵직한 체념에 가까웠다.

수많은 연계와 고통스러운 손가락의 한계를 대가로 쥐어짜 내던 그 화려한 몸짓의 향연이,

날개가 꺾인 채 마치 고요함이 가득한 심해 속으로 미동도 없이 아득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뒷자리에서 한 사내가 슬쩍 과장님의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물어온 그 동료의 상태 또한 어딘가 기묘해 보였다.

언제나 잘 다려진 셔츠에 말끔한 신사처럼 여유가 넘치던 그였건만,

오늘따라 그의 손에 들린 세련된 만년필이 

마치 주인의 손을 떠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타인의 장점을 슬쩍 훔쳐와 제것인 양 능숙하게 뽐내던 그 영리하고 고결한 풍모는 온데간데 없고,

마치 전 재산이 든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자처럼 망연자실한 빛이 눈동자에 역력했다.

그의 질문에 과장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한숨조차 아깝다는 듯, 거칠게 달아오른 얼굴로 묵묵히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러, 과장님은 휑한 눈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쩍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최대리는?"

그 순간, 최대리의 모습은 마치 화려한 마술 무대 위에서 트릭을 모두 들켜버린 마술사처럼 아찔해하며 온몸이 굳어보였다.

그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세련되게 빗어 넘어간 앞머리 사이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단어들이 그의 목구멍을 턱턱 막아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과장님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면에 가려진 채 어둠 속에서 화려하던 그의 영웅 역시, 

영원한 밤으로 추락해 버렸다는 것을.

두 남자가 메마른 눈빛을 교환하는 사무실 한 구석으로, 깊고 무거운 탄식만이 장막처럼 흘러내렸다.

과장님은 이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책상 한편을 더듬거렸다.

손끝에 걸린 것은 아까 타놓은 종이컵이었다.

그 안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맥심 커피가 담겨 있었으며,

채 녹지 못한 하얀 설탕 알갱이들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한입 머금자 혀끝을 찌르는 지나친 달콤함과, 

그 뒤를 기어이 따라오는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미지근한 액체 속에서 엉망으로 뒤엉켰다.

마치 그의 복잡한 속내를 그대로 들이붓기라도 한 듯한 맛이었다.

과장님은 두툼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 눅눅한 절망을 없애고 싶은듯이 목구멍 뒤로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먼 창밖의 풍경을 내다볼 뿐이었다.

그 순간,

흐릿한 유리창 너머 빌딩 숲 사이 작은 화단가에, 웬 낯선 토끼 한마리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든 말든 그 무성한 풀숲 사이에 춤을 추듯,

경쾌하게 귀를 쫑긋거리며 풀을 뜯고 있는 토끼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몸짓은 감히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 어떤 칼바람 속에서도 홀로 온전하게 밥그릇을 지켜낸 무해하고도 질긴 생명력.

세상의 풍파에서 비켜선 채 유유자적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묘하게 아려왔다.

"............... 용케도 살아남았구먼"

과장님이 웅얼거리듯 내뱉은 한마디에 최대리 역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두 남자의 눈길이 닿은 곳에서, 토끼는 마지막 풀잎 하나를 오물거리며 둘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도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수풀 너머로 사라져 갔다.

아련한 침묵 속에서, 토끼가 사라진 수풀만 우두커니 바라보던 과장님은 조용히 빈 종이컵을 구겨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유난히 시리게 퍼져가던 순간,

책상 위 전화기가 날카로운 기계음을 뱉어내며 정적을 깼다.

그랬다.

영웅들의 비극적인 추락과 상관없이, 이 지독한 밥벌이의 시간은 잔인하도록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과장님은 메마른 커피 자국이 남은 입술을 담담하게 훔쳐내며,

가슴 깊이 고여있던 탄식을 한 호흡에 뱉어내고

수화기를 향해 느리게 손을 뻗었다.

참으로 묘하고도, 눈물겹게 평화로운 오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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