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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 정치사로 알아보는 극우 미디어물

아이콘 윤하
댓글: 16 개
조회: 20635
추천: 20
2016-04-24 22:34:32


처음은 역시 최애캐로!


이 글에서는 일본의 현대 정치사를 통해, 
극우 미디어물(애니)가 양산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밀리마스 우익 논란이 터지고, 
최근 일본의 역사와 정치학에 대해 공부하다가 관심을 가져 이 주제로 글을 쓰고자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쓰게 되었네요..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주제라 최대한 편하게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글을 못 쓰는 편이고 편집도 조잡해 가독성이 떨어져 읽기 불편하셔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에 관한 문단은 경제학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지 않아
서적과 위키백과를 일부 참조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1. 근대민주정치의 기본 3원리

  근대 민주정치의 기본 3원리는 각각 국민주권, 권력분립, 법의 지배입니다. 
  첫째로 국민주권이란, 국민들이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원리로써, 국민들에게 권력이 있는 정치원리입니다. 국민주권을 통해 공동체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종직 지위와 권위인 주권이 국민에게 부여됩니다. 

  둘째로 권력분립이란, 권력을 분할하여 각각 다른 독립된 기관에 부담시켜 상호 억제와 균형을 꾀하며, 어떤 기관의 권력 남용을 막는 효과를 가져오는 조직원리입니다. 근현대의 민주정치는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3권분립을 토대로, 입법권을 의회, 집행권을 행정부, 사법권을 재판소가 담당하게 됩니다.

  셋째로 법의 지배란, 권력자를 법으로 구속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원리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에 의한 자의적 지배는 배제되어 모든 사람은 신분에 관계 없이 법 앞에 평등히 놓이게 됩니다. 




민주적 선거제도를 보여주는(??)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

  
2. 메이지 유신

  일본의 전근대 정권인 에도 막부는 18세기 중후반 이후 개혁의 실패, 자연재해의 빈발이 거듭되며 민중의 불만과 문제점이 쌓이고, 서양의 개항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개항하며 사실상 통제권을 잃습니다. 1868년에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왕정복고 세력에 의해 완전히 붕괴, 당시 덴노(천황, 일왕. 덴노로 통합해 부르겠습니다.)였던 메이지 덴노 중심의 국가로 복고됩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구미의 열강들과 비슷한 수준의 강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전근대적 봉건제를 버리고 일본에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정착을 도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통치를 위해 헌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일본의 첫 헌법인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작자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3. 메이지 헌법과 그 한계

  이토 히로부미는 헌법을 제헌하기 위해 당시 선진국이었던 유럽의 나라인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독일)의 헌법을 참고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입헌군주제로 왕권이 상당히 약해 덴노가 군림하는 일본에 들여오기는 어려웠고,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왕이 사라진 공화제로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반해 프로이센은 황제의 권한이 의회보다 많은 헌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프로이센은 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근대화. 즉 민중이 근대화의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이룩한 근대화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근대화, 즉 지배계급층과 일부 지식인의 의견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진 국가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실정에 알맞는 법이었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는 프로이센의 헌법을 참고해 메이지 헌법을 만듭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은 민주정치의 기본 3원리가 완전히 무시되고, 덴노의 지위만 높은 지극히 비민주적인 헌법이었습니다. 우선 덴노를 신으로 생각한 국가신도(國家神道)를 규정해, 국민은 덴노의 신민이며 일정한 자유권과 인권도 덴노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국민주권이 아닌 덴노주권을 주창했습니다. 물론 법률 하의 평등이라는 조항도 없어 법의 지배 또한 무시당해 덴노와 국민의 신분을 구분합니다. 이 덴노주권으로 육해군은 덴노의 군대가 되어 정부의 제약을 받지 않아, 덴노는 군 통수권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가장 심각히 왜곡된 부분은 권력분립인데, 제국의회는 입법권이 없고 덴노의 입법권을 보조하는 기관이 됩니다. 법은 덴노가 만들고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현재 일본의 중의원(상원)에 해당하는 귀족원은 황족 또는 귀족, 천황의 임명의원으로 이루어진 의회였으며 참의원(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은 덴노가 마음대로 해산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제한선거에 의해 선택된 의원으로 보통선거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거권을 가진 국민은 25세 이상의 직접세를 15엔 이상 납세하는 남성에 불과했습니다.
 
  행정부에 해당하는 내각은 천황을 보필하는 역할을 담당해, 현재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와는 크게 다른 형태였습니다. 심지어 메이지 헌법에는 내각이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정확히 정혀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잘것없는 국민들의 민형사재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지 사법부에 해당하는 재판소는 헌법에 의해 사법권의 독립이 어느정도는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덴노가 언제든지 특별재판소(군법회의, 황실재판소 등)를 열어 자신의 측근들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던 메이지헌법을 바탕으로,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고 후일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4. 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은 점점 성장해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외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강대국이 되어갑니다. 영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은 대외 정세 또한 안정을 되찾습니다. 순조롭게 성장해가던 일본에서 쑨원의 활동이 시작되는데, 쑨원은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중국혁명동맹회를 결성해 반청 혁명운동을 전개하고, 결국 1911년 신해혁명을 성공시켜 2000년 이상 존속한 중국의 군주정을 소멸시키고 공화정(중화민국)을 성립시킵니다. 청 왕조가 무너져 중국이 공화국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동아시아 전체에 큰 충격을 주고, 쑨원이 혁명 이후 일본으로 망명해 활동한 영향도 받으며 일본에서도 1910년대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됩니다. 

  영일동맹을 바탕으로 세계 1차대전에 참전해 승전국이 된 일본은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등 세계의 손꼽히는 강대국이 됩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국제 협조의 흐름이 강화되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자유로운 사회흐름을 바탕으로 1925년에는 결국 보통선거(25세 이상 모든 남성에게 선거권 부여)가 이루어져,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수준높은 국가가 됩니다. 

  이렇듯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부터 보통선거법을 제정한 가토 다카아키 총리가 죽은 1925년까지의 시기를 당시 덴노였던 다이쇼 덴노에서 따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일컫습니다. 
  상기했듯이 다이쇼 시대는 일본 기준으로 전쟁도 없고-1차대전에 참전했다지만 태평양에 있던 독일의 작은 식민지들을 공격한 정도로, 미미했습니다.-평화로웠으며, 국제적 지위도 하늘을 찌르던 말 그대로 일본의 리즈시절이자 태평성대였습니다. 또한 서양 문물의 많은 전파로 일본과 서구 문물이 뒤섞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의 사람이듯 그 나라가 가장 부강했던 때를 그리워하고 기리듯, 일본인들 중에는 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좋아하고 추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논란을 빚은 밀리마스 '다이쇼 로망' 시리즈의 카드들

  이 다이쇼 시대를 '로망'으로 여겨 출시된 아이돌마스터 밀리언 라이브의 '다이쇼 로망' 시리즈가 한국 팬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일본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던 키쿠치 마코토의 카드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이쇼 로망' 시리즈와 같이 제국주의 전성기의 평화와 번영을 회상하는 것을 프랑스어로 벨 에포크라고 일컫고,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 됩니다.(다이쇼 로망은 벨 에포크의 일본판 단어입니다.) 확실히 제국주의 국가 입장에서 보면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식민지는 강압과 치욕으로 점철된 최악의 암흑기인 시기입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일본제국이 전범국이었던 것은 아니고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조선은 억압적인 통치를 받으며 3.1운동과 관동 대지진 학살 사건이 발생했던 때입니다. 이러한 요인으로 한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5. 일본국헌법(평화헌법) 제정

  끝없는 영토확장의 야욕으로 2차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의 일본은, 무조건항복후 연합군에 점령당하며 차례차례 개조되갑니다. 큰 문제를 안고 있던 메이지 헌법 또한 폐기되어 일본국헌법(평화헌법)이 1946년 제정됩니다.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일본의 헌법에 필요한 3가지 요소를 제시하는데, 이를 맥아더 3원칙이라 합니다. 맥아더 3원칙은 '덴노제의 민주화', '전쟁 포기와 군비 철폐', '봉건적 제도의 폐지' 입니다. 
  이 중 봉건적 제도의 폐지를 따라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에 기인한 기본적 인권을 확보하게 되며, 행복추구권, 평등권, 사회권 등 각종 인권과 자유권이 인정됩니다.

  또한 덴노제의 민주화를 통해 국민주권이 실현됩니다. 일본국헌법의 제 1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찬찬히 1조를 뜯어보면, 주권이 국민에게 부여되었고, 덴노는 일본의 상징으로 전락했습니다. 또한 덴노의 지위를 일본 국민의 총의(總意, 공동체 구성원의 공통된 의견)에 부여해 일본 국민이 원한다면 덴노제를 없앨 수도 있는 엄청난 권리를 국민들에게 부여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상징천황제가 시작되어, 덴노는 국정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2번째 원칙을 따른 헌법 제 9조로 일본국헌법은 평화헌법이라는 이명을 얻게 됩니다. 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방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 달성을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과 교전권을 부정하게 됩니다. 즉, 전쟁과 무력을 거부하고 침략전쟁을 포기하며,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됩니다. 지금 일본이 군대 대신 나라의 방위를 담당하는 준군사조직인 자위대만을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헌법 제 9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 의회가 2015년 집단적 자위권을 통과시키며,
일본은 다시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숨차게 달려오며 메이지 헌법과 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국헌법을 알아보며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밀리마스 사태가 왜 논란이 되었는지 알아보았다면 지금부터는 왜 일본은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있으며 끝없는 극우 미디어물이 생산되는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6. 55년 자민당 체제와 고도성장 & 버블경제 붕괴

  2차대전 종결 후 맥아더에 의해 민주주의 정당정치가 일본에서 부활하고, 일본에서도 혁신세력(진보세력의 일본 명칭)과 보수세력의 대립이 생겨납니다. 혁신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는 사회당이 있었고,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는 협동당, 진보당(?!), 자유당 등이 있었습니다. 
  1951년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를 둘러싸고 혁신과 보수의 세력다툼이 일어납니다. 혁신세력은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와도 전면강화를 맺자는 주장을 했고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만 단독강화를 맺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다툼에서 결국 보수파가 승리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미국 점령 하의 일본에서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 세력다툼의 승패가 전후 일본 정치도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1955년 선거부터 일본의 보수정당들은 연합해 자유민주당(자민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합당해 사회당과 양당체제를 이룹니다. 그리고 자민당은 1955년 이후 1993년까지 38년간 단 한번도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으며 독재체제를 만듭니다. 이 체제를 자민당의 독주가 시작된 1955년에서 이름을 따와 55년 체제라 일컫습니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상자료라고 평가받는
1987년 제작된 코카콜라 광고

  자민당이 선거 불패신화를 써내려간것은 일본이 당시 고도경제성장기였기 때문입니다. 현대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연간 7%라면 10년 후 그 국가의 경제규모는 2배가 된다고 하는데, 일본은 55년부터 73년까지 18년간 평균 경제 성장률을 10%대로 유지합니다. 이후도 오일 쇼크로 주춤하지만 끊임없는 성장을 이어가며, 성공적인 경제부양정책을 펼치던 자민당의 지지율은 높을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은 1980년대에 정점을 찍습니다. 기업의 투자는 끝도없이 이어져 은행들의 대출또한 끝도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돈들이 각종 자산들에 쏟아져,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 또다른 황금기를 열게 됩니다. 기업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니, 사람들은 기업에 돈을 투자하면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주식 투기에 몰두했고, 주가도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주식의 폭등과 거품은 부동산 거품으로 묻히게 됩니다. 고도성장기에 돈을 번 장년층들이 돈을 묻어두기에 가장 좋은 곳은 안정적인 부동산이었고, 일본은 1960년대부터 1970년까지 토지가격이 50배 오르는 등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부동산을 믿고 또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게 됩니다. 1988년의 도쿄 지가는 1987년 대비 3배가 폭등하는 등,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거품경제로 88년 일본은 초강대국인 소련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 타이틀을 달성하였습니다.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
90년부터 시작된 일본경제 붕괴

  결국 이런 불안정하고 말도 안되는 일본경제는 1990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연초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일본경제는 90년 연말 정확히 연초의 절반수준으로 급감, 끊임없는 하락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연히 경제가 잘못되어가고있음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자민당의 비판으로 이어지고, 자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3년 야당이었던 일본신당의 호소가와 모리히로가 승리하여 55년체제가 붕괴되고 비자민당 내각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야당의 승리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호소가와의 부인이 1억엔의 뇌물을 수수한 것이 발각되어 1994년 1년만에 다시 자민당이 정권을 가져가게 되고, 그 자민당 체제가 또 2009년까지 이어집니다.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여러 구설수에 시달린 아소 다로 총리가 실각하고, 다시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가 정권을 잡았으나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경제가 회복되지 않아 2012년 3년만에 다시 자민당(아베)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즉, 1955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0여년간 단 4년만을 제외하고 
일본에서는 우파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7. 우경화와 극우 미디어물
 

바케모노가타리 4화 중 독도 왜곡


명탐정코난 중 욱일기



도라에몽 만화책 중 욱일기(국내판도 미수정)



슈퍼소니코 중 야스쿠니 참배 장려
(2, 3 = '~에 참배하자'의 고로아와세)

  우파 보수 세력의 득세는 자연히 우경화된 사회를 불러일으키고, 우경화된 역사 교육을 뜻합니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라난 어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욱일기, 야스쿠니 찬양, 독도 문제 등 
역사&진실 왜곡을 미디어물 속에 자연스럽게 삽입하게 되었고, 
그것을 소비하는 청소년층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보수정권 하에서 자란 일본의 기득권층인 성인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성인들이 무의식적에 자신의 극우 사상을 담아 역사 왜곡 & 진실 왜곡 요소를 미디어물에 삽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 예들에서 보실 수 있듯이 유명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역사 & 진실 왜곡을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조사한 결과 80개가 넘어갑니다.
  현재 일본에서 인기몰이중인 마고열, 칸코레, 게이트 등 각종 극우 미디어물들이 별 비판 없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이러한 일본 보수 정치의 고착화가 미디어물의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게서 국치를 맞았던 한국인의 입장으로써, 이런 우경화의 산물로 만들어진 극우 미디어물을 볼 때에는 최대한 주의하고, 그 정도가 심한 것은 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판에 또 두서없어졌네요.. 사두사미..


Lv73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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