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인벤 사제 게시판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잡담] [괴담?]동양역사 속 기인 - 구처기(장춘진인)

아이콘 꿈꾸는돼지
댓글: 2 개
조회: 2934
2011-10-07 15:10:16

구처기(구겸지,장춘진인)

 

 

================================================================================

 

내킨 김에 하나더 끄적거리오. 요번에 소개할 인물은 중국 도교의 전설적 존재 중 하나인

장춘진인 구처기요. 이 이름을 들은 사람은 필경 99% 김용씨의 영웅문 시리즈에서 이름을

들었을 것이오. 헌데 영웅문에서는 간신히 일류고수될까 말까하는 그럭저럭 무림고수정도로

나오지만, 그의 도교에서의 위상은 대단하오.

물론 도교는 종교계의 기록이니만치 재미는 있겠지만 그 내용을 소인은 옮기지 않쏘.

도교라면 위 구처기(일설에는 구겸지라고도 전해지오)나 마옥도 있고, 최초의 도교교주라는

장릉(장천사)나 삼국지에 나오는 황건적의 장각(장각도 장천사의 후예라고 했쏘. 즉 황건난은

도교반란이었던 거요), 황건난 이후에도 오두미도로 이름을 바꿔 도교세력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장천사의 후예 장로(한중 주인), 나중에 수호지에 송강의 적으로 등장하는 강남교주 방랍 등이

사실은 모두 도교의 비조 비스무리 되는 인물이오. 도교사를 조사하면 별 희안한 뻥이 다 나오지만,

(가령 중국집 이름으로 많은 팔선(여동빈, 장과로, 조국구 등등...) 같은 신선 이야기 말요)

소인은 그런 비과학적이고 입증 불가능한 것은 그냥 재미거리로 남겨두고, 입증 가능한 사료에

등장한 사실 하나만 소개해보리다. 이것은 동*대 출신 어느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들은 이야기로

원사(?)인가 그 비슷한 곳에 나온다고 하는데, 직접 찾아보지는 못했으니 양해 바라오.



- 장춘진인 구처기(구겸지)는 누구인가?

이 사람은 마옥이라는 신선에게서 도술을 배워(영웅문에서는 마옥이 사형으로 나오지만, 이 마옥은

실은 거의 전설의 인물이오) 도를 얻은 후, 도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단신으로 북으로 올라가

당시 금나라를 쳐부수고 기세를 올리던 테무진(징기스칸)을 만나 그에게 설법하여 몽골에 도교의 기반을

쌓소. (영웅문에서는 곽정이 초빙한 것으로 나오지만 당연히 소설적 상상이오)

징기스칸은 구처기를 아주 잘 대해주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쏘.

징기스칸이 죽고 난 다음 몽케의 대를 거쳐 쿠빌라이 때 중국이 원에 넘어가는데, 몽골 사람들은

원래 자체의 샤머니즘에 가까운 천신신앙(텐그리 신을 믿쏘)을 믿었쏘.

그런데 큰 제국을 건설하고 보니 뭔가 종교적인 거대상징물이 필요하기도 하고 하여, 종교를 골랐쏘.

원은 원칙적으론 로마처럼 다종교주의를 인정했으나, 원 황실이 밀어주는 종교를 선택해야 했다 하오

그런데 이 때의 비사가 재미있소. 당시 서장 쪽에서는 밀교의 지파인 라마교가 융성했고,

중국 내에서는 일종의 민족종교로서 도교가 있었쏘. 이 두개가 거의 최종 경합을 벌이게 되었는데

몽골 귀족은 알다시피 글자나 문에는 관심조차 없었으니 설법을 백날 해봐야 소용이 없었쏘.

그래서 마침내 내려진 결단이 (과연 힘으로 모든 국가를 쓸어버린 몽골답게)

'제일 쎈 신을 가린다.'는 시험이었쏘. 즉 가장 강한 법력, 초능력이 제일 센 종교를 믿겠다!라는

쿠빌라이의 결정이 있었다하오. 그래서 라마교에서도 술법자가 나오고, 도교 대표로 구처기가 나왓다는데

실제 나이가 좀 많았고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그렇다고 하오.

여기서 별 기기묘묘한 법술- 초능력의 시험이 이어졌는데, 최종적으로 구처기가 염력(싸이코 키네시스)

로 황실 내에 있던 범종 (무게가 거의 톤단위!! 이설에 의하면 발 셋 달린 거대 청동향로 -

중국 향로는 엄청나게 크오)을 들어 올리는 가공할 법력을 보여서 최종적으로 도교가

승리했다하오.

이는 원 황실 기록에 있고, 당대의 석학이나 귀족들이 모두 열람한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며,

구처기가 미리 황실 내의 물건을 조작할 수 없었으므로 이를 믿는다면 대단히 놀라운 능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 약간의 후일담을 뱀꼬리로 붙이오.

이때 도교가 실제로 승리는 했으되, 라마교의 화려한 의식과 행사들은 원 황실 여자들의

혼을 빼놓아, 실제로 절이 세워지고 영화를 누린 것은 패자인 라마교였쏘

도교는 벽곡이나 하고 단이나 쌓고 수련이나 하라고 하니, 여자들이 좋아할 리 없었던 거요

그래서 라마교가 실권을 잡자, 도교 도사들은 열이 받아서 (이겼는데도 밀리니까)그때까지의

수양중심의 태도를 버리고 온갖 제신을 잡스럽게 세우며 (도교 신체계는 불교, 특히 라마교의

형식을 빌려서 억지스레 세운 것이 많쏘. 가령 삼세제불의 본딴 3존 이나, 기타 등등) 이상한

길로 접어 들게 되오. 오히려 구처기가 그때 패했다면, 도교는 이상한 예법으로  떡칠하고 부적 휘두르는

모산파 같은 문파가 나오는 길 대신, 조용히 산에 들어가 수도에 전념하는 문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볼 때, 구처기의 존재와 그의 엄청난 법력은 아이러니 한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쏘


황당한 이야기 빼고 하려니 몇 명 남질 않는구랴. 그래도 애써보겠쏘 ^^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