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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악마의 딸 리뷰 - 홈즈의 섹시함이 사라졌다

안선
댓글: 1 개
조회: 3611
2017-05-24 17:29:45
2016년 10월, 셜록 홈즈 게임의 차기작 <셜록 홈즈 : 악마의 딸>이 출시되었다.

이는 본 게임의 세 번째 시리즈로, 스토리는 전작 <셜록홈즈 죄와 벌>이 아닌 초기작 <셜록 홈즈의 유언>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셜록 홈즈의 유언> 마지막에 홈즈가 입양한 천적 모리아티의 딸 케이틀린이 게임 줄거리의 큰 줄기를 이룬다.


즉 작품에서 플레이어들은 아주 이례적인 홈즈인 '아버지로서의 홈즈'를 플레이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분명히 신선한 소재이기는 했지만, 필자가 아는 홈즈와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 역력했다.

줄여서 말해 인간적이긴 했지만, 홈즈적이지는 않은 홈즈였다.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작품의 진행 방식 또한 홈즈를 홈즈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

그럼 게임의 어떤 부분들이 홈즈의 홈즈다움을 빼았았는지 살펴보자. 



과도한 액션성 - 홈즈는 이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셜록 홈즈 : 악마의 딸>은 시작부터 홈즈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사건의 범죄자를 쫓던 홈즈가 자신에게 총격을 가하는 괴한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으로 게임은 시작된다. 이후 게임은 48시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추리를 시작하는데, 플레이어가 일련의 추리를 끝내면 다시 도망치는 홈즈를 조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괴한으로부터 홈즈를 생존시키는 것에 전작들에는 없던 과도한 액션성이 부여되었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들은 곳곳에 놓인 엄폐물에 적절히 몸을 숨겨야 하며, 괴한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기 위해 양손을 쉼없이 움직여야 한다. 

당신의 섬세함과 순발력이 홈즈의 생사를 좌우한다

이와 같은 특징은 다음 에피소드들에서도 드러난다. [녹색 연구] 에피소드에서 홈즈는 상상력을 동원해 '마야 유적'을 탐험하는데, 플레이어들은 유적에 놓인 여러가지 함정들을 피해 단서를 줄 공간까지 도달해야 한다. 흡사 모바일 게임 <템플 런>을 연상시키는 연출 아래 플레이어들은 홈즈가 죽지 않기 위해 컨트롤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악명]에서 또한 홈즈의 방에 던져진 시한 폭탄을 제 시간에 처리하지 못할 경우 폭발과 함께 홈즈는 숨을 거둔다. 

본래 셜록 홈즈 시리즈는 소위 '간식을 먹으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굳이 양손을 사용할 필요 없이 머리를 활용해 게임을 진행시키면 되었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플레이어의 순발력에 홈즈의 생사가 걸려있으며, 컨트롤에 자신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불멸의 탐정 홈즈가 맥빠지게 사망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원작의 홈즈를 생각했을 때도 아쉬움이 남는 연출이다. 홈즈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본인이 의도적으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은 만들어도, 자신이 예기치 못한 함정에 말려드는 일은 극히 드문 사람이었다. 이렇듯 사건의 기승전결을 본인의 수중에서 갖고 노는 듯한 홈즈의 수완은 그의 섹시함을 대변하는 매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본작에서의 홈즈는 위기가 지나치게 많으며, 이로인해 빼았기는 그의 여유는 원작의 팬들이 아쉬움을 가질 만한 모습이었다.



목소리 큰 주변 인물들 - 홈즈는 이렇게 휘둘리지 않는다

​본작에서는 홈즈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조연들이 많아졌다. 말괄량이 수양딸 케이틀린이 그렇고, [악명] 에피소드에서 돌발행동을 일삼으며 수사를 끈임없이 방해하는 와일드가 그러하며, 작품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앨리스가 그렇다.


케이틀린을 대하는 홈즈는 그저 어린 딸아이를 둔 평범한 아버지다. 홈즈는 그녀의 고집에 차갑게 대응하지 못하며 그녀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이는 작중 전체적으로 홈즈의 인간미를 보이려는 작품의 의도를 볼 때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의 홈즈가 타인에게 접고 들어가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 어떤 이들에겐 고압적인 인물로까지 인식되는 것을 생각하면 영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홈즈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인물 케이틀린


와일드의 존재는 이보다 더 홈즈의 본 모습에 타격을 준다. 본래 홈즈는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인물을 극히 꺼려하는 사람이다. 사건의 해결에 방해가 될만한 인물은 되도록 배척하려고 하며, 이는 경우에 따라 홈즈가 경감인 레스트레이드에게까지 권위적으로 대하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원작이라면 와일드같은 인물은 홈즈가 일찌깜치 사건의 중심에서 떨어트려 놓았을 인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본작에서 홈즈는 자신의 컨트롤을 크게 벗어나는 와일드를 쉽게 내치지 못하며 결국 그로 인해 위기에 빠지게 된다.


시종일관 홈즈를 가지고 노는 듯한 앨리스는 홈즈를 그야말로 '일반인'으로 전락시켰다. 케이틀린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는 앨리스에게 홈즈는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끝내 그녀가 케이틀린을 납치할 때까지 끙끙 앓는 모습만을 보인다. 이 일로 마차 안에서 왓슨에게 상담받던 홈즈의 모습은 영락없는 타인이 필요한 평범한 남자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평소 분위기에서부터 뿜어내는 원작의 홈즈는 온데간데 없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 홈즈가 마지막 장에서 감정을 주체 못하고 앨리스의 뺨을 때릴 때 원작의 캐릭터성은 산산조각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렇듯 <셜록 홈즈 : 악마의 딸>에서는 홈즈의 본 매력을 깎아내리는 인물이 많이 등장했다. 이 또한 홈즈의 인간미를 위해 캐릭터성이 희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작 홈즈는 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인물별 대응 방법의 달인임과 동시에 초인적인 자기 컨트롤 능력을 보유한 탐정이었다. 하지만 본 게임 안에서 홈즈는 경우에 따라 타인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이는 분명히 원작 팬들이 알던 홈즈가 아니었다.



섹시한 홈즈, 시시한 남자가 되다


​처음 본 사람의 인상착의를 보고 그 사람의 직업 및 성격을 유추하는 것이 '홈즈'란 인물의 전부가 아니다. 게임 <셜록 홈즈 시리즈>는 단순히 사건의 추리를 넘어, 플레이어들이 셜록 홈즈라는 브랜드를 체험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이렇듯 중요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모습과 차이가 큰 본 작품의 홈즈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홈즈란 인물을 떠올려보자. 그는 자신이 관심이 없는 일은 그야말로 1도 모르고, 사건이 없을 때는 절망적인 지루함에 빠지고, 왠만한 일로는 평정심을 절대 잃지 않으며 타인에게 휘둘리는 경우는 정말 눈꼽만큼도 찾기 힘든 인물이다. 이러한 철저한 마이 웨이와 거기서 비롯되는 본인만의 확고한 삶의 철학 및 사건 해결 능력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탐정'이라 불리게 만들었다.


​근래의 셜록 홈즈 컨텐츠 중 큰 호평을 받았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홈즈


하지만 본작에서 홈즈는 수양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열중하며, 사건이 없을 때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에 빠지고, 화가 났을 때는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는 남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장치들은 홈즈에게 인간미는 부여했을 지언정 정작 그가 홈즈로 보이기에는 방해가 되었다. 엄밀히 말해 이 홈즈는 '인간미가 넘치는 홈즈'라기보단 '홈즈처럼 보이는 인간'에 불과했다. 아니 어쩌면 홈즈에게 인간미를 부여하려는 순간 이미 우리가 아는 홈즈는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게임의 마지막, 홈즈는 결국 앨리스에게 납치되었던 케이틀린을 구출한 후 조각배를 타고 돌아왔다. 자신의 딸을 꼭 안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는 영락없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추리를 위해 태어난 듯한 탐정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한 자식의 아버지로서 화도 내고 슬픔에 잠기기도 했던 홈즈의 모습에 신선함과 감동을 느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전세계의 적잖은 셜로키언들에게, 홈즈의 인간미를 위해 상실되어야 했던 몇 가지 매력들은 썩 달갑지 못한 교환이었음이 분명하다.


<셜록 홈즈>의 마지막 장면은 담배에 손을 뻗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Lv23 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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