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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수나라를 물리친 영류왕 고건무 그의 정치는 옳았나!!

온리유12 | 댓글: 7 개 | 조회: 2409 |




훗날 연개소문한테 시해당하는 고건무..

영류왕이 친당 저자세 외교를 펼친 이유 ??

여수전쟁 시 청야전술로 인한 국력의 약화: 우선 여수전쟁이 대규모로 4차에 걸쳐 무려 16년동안 지속되었다. 특히 최대 격전이었던 2차 여수 전쟁에서는 그야말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군대를 맞아 국운을 걸고 싸웠다. 비록 고구려가 승리했다고는 하나 고구려의 기본 전략인 청야전술은  전후 기반을 닦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제 살 깎아서 적들을 말려죽이는 전략은 고구려로서는 막아내도 국력 손실이 클 수 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고구려의 주요 인구 +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 중 하나인 요동 일대에서의 격전은 분명히 고구려의 경제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대등한 외교관계 가능성: 당은 내부적으로 태종 이세민의 반란과 돌궐의 침략으로 초기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당나라와 화친 입장을 보인건 결국 상대적으로 여수전쟁에 대한 승리로,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진 고구려가 대등한 입장에서의 외교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돌궐의 성장: 여수전쟁으로 약화된 국력에 비해, 돌궐 세력의 성장은 고구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즉, 고구려는 당을 이용하여 돌궐을 견제하기를 바랬 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돌궐은 평원왕 시절인 555년 유연을 복속시키고, 고구려로 쳐들어왔고 이에 장수 고흘(高紇)을 보내어 격퇴하였다. 게다가 여수전쟁 때에는 돌궐이 수나라를 도와서, 고구려의 예속집단인 거란을 공격하기 까지 했다. 그런 일 때문에, 돌궐과 당태종의 전쟁 중 힐리가한의 원조 요청을 거부하였다. 이런 전례가 있었기에 ‘고구려와 돌궐’이 대당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영류왕의 실책였다 그이유는?

1) 당의 사신인 낭중하급(중하위 관리)에게,고구려의 수상인 대대로가 쩔쩔맸고, 당 사신은 영류왕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안하여, 외교적인 결레에 대해 범했으나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여, 국내에서 불 만이 고조됨
2) 고구려 쪽 대표로 태자가 임명되어, 당사신과 지위가 맞지 않았음
3)고구려의 대 수나라 승전 기념물인, 경관을 당사신이 무단으로 철거함
4) 당나라 사신이 군사 기밀 정탐을 방조
5) 이러한 굴욕적 외교가 거란과, 말갈의 이탈동기를 만듬
6) 당나라와 전쟁 준비를 할 시기에,칠중성 싸움 등 신라와 소모적인 전쟁을 하여, 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게 함
7) 당은 당시, 고구려의 핵심지역이었던 요동일대가, 과거 한사군 지역이었다 라고 주장하며, 영유권을 주장함.


영류왕이 만약 연개소문에게 살해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

과연 고구려는?? 오이겔 역사학자분들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고건무 그는 영웅이였나 아님 나라를 팔아먹은 쓰레기 왕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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