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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국전쟁 이야기 몇개.

아이콘 Nemo
댓글: 9 개
조회: 8995
추천: 5
2021-10-13 00:24:05
1. 한국전쟁에 파병하지 않으려 했던 프랑스.
사실 프랑스는 유엔 상임이사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NATO, 인도차이나 파병문제를 핑계로 파병대신 군사고문단
10명남짓 파견으로 실리를 챙기려 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엄청나게 극대노하면서
("상임이사국이랍시고 파병은 커녕 고작 군사고문단 몇 명 보내서 꿀을 빠시겠다?!" "군사고문단은 일본에만 머물고 한국 들어올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프랑스 측도 상당히 난감해졌고 고심끝에 파병을 결정하게 된다.

파병에 적극적이었던 라울 마그랭 베느르레 중장(1,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각종 훈포장 수여만 60여회)이 중령으로 스스로 강등까지 자처하면서 대대장이 되었고 이로서 프랑스군이 우여곡절끝에 파병되게 된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외인부대가 주축이 되었던 프랑스군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던 지평리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쳤으며 휴전까지 3000여명 파병, 전사자 비율 7%로서 유엔군 중 전사자 비율이 높았던 국가로 남게되었다.

2. 의료지원국 독일?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 분단 시절 서독에서 한국 전쟁당시 의료진 파견을 결의하게 된다.
당시 유엔미가입에 전범국 상태라 승인절차가 길어지게 되는데 이런 와중에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맺어져버린다.
하지만 서독 측에서는 의료진파견 결의를 번복하지 않았고 1954년부터 의료지원 활동을 벌인다.

-약 30만명의 한국인 의료지원 
-한국인 의료인 양성 사업 
-한국 주둔 유엔군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1959년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공로에도 불구하고 
정전이후 입국이라는 문제 때문에 공식적인 의료지원국에서 빠져있었으나 2018년 정부 및 국방부에서 여러의견을 수렴,  공로를 인정하여 공식적으로 한국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로써 한국 전쟁 의료지원국은 공식적으로 6개 국가가 되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독일)

3. 노르웨이인 전사자, 인도인 순직자
노르웨이와 인도는 의료진만 파견했는데 어떻게 희생자가 나왔는가? 라고 반문하겠지만
노르웨이는 야전병원 운영 중 중공군의 포격으로 3분의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이중 2분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
1분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으며 공식적으로 의료지원국중 유일하게 전사자가 발생한 국가다.

인도인 순직자 우니 나야 대령은 유엔 산하 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한국에 입국하여 경북 왜관에서 전선시찰 중 지뢰폭발사고로 순직하였고 이밖에 인도 측에서 군사작전 협업도 했다는 기록도 있어 인도 정부 측과의 합의와 절차를 거쳐 공식인정될경우 추가로 전사자로 인정될 희생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우니 나야 대령 기념비, 대구광역시 수성구 소재>



4. 월튼워커 중장의 사망

월튼 워커 중장은 제1,2차 세계대전을 모두 참전한 베테랑이었으며 한국전쟁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1950년 12월 국군소속 민간정비사 박경래가 정비를 마치고 시운전하던 트럭이 워커 장군이 타고 있던 지프를 들이받아 지프가 전복되었고 워커 장군은 차에서 튕겨나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박경래는 당시 무면허였고 일부 기록에는 음주운전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이승만이 노발대발하여 박경래를 처형해버리라고 하였으나 워커장군의 유족들이 선처를 바랬고 박경래는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망한 사례였고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는 리지웨이 장군이 임명되게 된다.



Lv90 N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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