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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성군 세종대왕을 분노하게 만든 신하 "정창손"

드루버프좀
댓글: 15 개
조회: 2641
추천: 3
2022-05-23 19:05:56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


할아버지는 한성부윤 정정부 아버지는 중추원사 정흠지 


사마시 식년문과 급제로 관직 생활을 한 나름 엘리트 인재.
(TMI로 과거에 급제 한다는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 이다.)



(이게 과거 급제자의 답안지)



아무튼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려고 했을때 박팽년 김문 등과 함께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 말했지만 조선은 신권과 왕권의 조화를 추구 했지만... 신하들과 왕은 서로 선을 지키면서 싸웠다.


즉 왕 역시 신하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할 수 없었다 ..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관들이 이를 역사에 박제를 해버리는데
왕은 이런 치욕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었다.

신하들 역시 선을 함부로 넘으면 가족들은 야밤에 신나는 의금부 투어를 하고 본인은 이승에서 강제 로그아웃을 당한다.




최만리의 경우 6가지의 정치적이며 구체적인 과학적 이유로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기에 세종 역시 함부로 하지 못했다 , 중국의 경우 표의문자를 사용하고 몽골등 오랑캐들이 표음문자를 사용한다 등 중국을 언급했다.


세종 역시 왕인 자기에게 태클을 걸었지만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했기에 최만리의 경우 그냥 의금부에 하루 투옥되었다 풀려나는 조치만 취했다.


김문의 경우 원래 찬성했는데 후에 반대했다 그래서 세종이 " 저새끼 왜 저런지 직접 알아봐" 라고 의금부에 조사를 명했기에 추국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정찬손의 경우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람의 자질은 타고났기에 이를 고칠 수 없다 라는 내용이다.


세종은 이를 듣고는 용속한 선비 라고 했는데 , 실제 실록은 정중한 표현만 기록하기에 이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아마 뿌리깊은나무 처럼 욕을 존나게 했을 수 있다.


성리학은 누구나 수양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이 있기에 군주 역시 수양을 게을리 하면 안되는데 
정창손의 발언은 유학의 근본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애초에 공자께서도 건달과 거지 조차 학문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는거 입증을 했다.)


상대가 만약 태종 이었다면 이승에서 강제 로그아웃은 물론이고 가족들 역시 야밤에 의금부 투어를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세종은 의금부에 투옥 후 파직 시키는거로 끝냈다.




Lv48 드루버프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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