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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불교는 왜 흡연을 금지하지 않았을까?

아이콘 치킨엔와
댓글: 43 개
조회: 14587
추천: 34
2024-04-20 10:13:09



1. 부처는 왜 제자들에게 담배피우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2500년 전에는 담배가 없었음.

대신 술은 있었고, 그래서 부처는 제자들에게 음주를 금하는 계율을 내림

불음주는 불살생에 준하는 계율임


2. 부처는 몇 살에 출가했을까?

29세에 출가함

그 전부터 출가하길 원했으나

아빠가 출가할거면 대를 이을 아들은 하나 낳고 가라고 해서

아들을 낳고 출가함.


부처는 지금으로 치면

꽤 큰 규모의 부족 족장의 아들이었음.

부족 이름이 샤키아였고, 샤키아 족의 족장 아들이 부처였고

샤키아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 석가임, 

석가모니는 샤키아무니의 한문 번역이고

샤키아 족의 현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음.


즉 부처는 샤키아 부족 족장의 아들이었고

그래서 태자가 아닌 세자라고 번역했던거임.


참고로 부처는 29세에 출가해 5년만인 34세에 깨달음을 얻음

그래서 초기에 얻은 제자들 상당수가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음

초기 불교 교단의 살림을 주도했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역시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고

부처 생전에 죽음


한국불교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반야심경의 구조가

목갈라나가 사리뿟따에게 얘기하는 형식임

사리뿟따를 한자로는 사리자로 번역함

마하반야바라밀타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타 시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사리자 <-요 사리자가 사리뿟따임


3. 부처의 아들은 어떻게 됐는가?

출가하기 전 부처의 성명은

고타마 시타르타

고타마가 성이고, 시타르타가 이름이었음

시타르타는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고

라훌라는 장애라는 뜻이었음..

아들을 두고 출가하는 시타르타의 마음이 아들의 이름에서 드러나는거임..

갗난 아들을 두고 출가하는 아빠의 마음....


그렇게 라훌라를 두고 출가했고

부처가 되어 돌아오자

라훌라의 엄마, 즉 부처의 와이프 야소다라가

라훌라를 아빠에게 보내면서 유산을 받아오라고 시킴


그러자 부처는 라훌라를 사리뿟따의 제자로 출가시켜버림

라훌라는 최초의 사미(정식 출가수행자인 비구가 되기에는 어린 수행자)가 됨

즉 아들이 손주제자가 된거임


이에 부처의 아빠(슈도나다)는 부족의 족장을 이어야 한다고 결사반대함

이때 대를 이을 장자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만 출가할 수 있다는 계율이 생김

하지만 라훌라의 아빠는 부처였고, 부처의 아빠는 할아버지였기에

라훌라는 출가함

결국 부족장은 부처의 사촌 마하나마(?이름이 잘 기억이 안남)에게 이어졌고,

부처 생존 당시, 코살라(당시 인도의 대국은 마갈타와 코살라로 양분되어 있었음)의 침략에 샤키아족은 멸족당함... 


라훌라는 출가했지만 어렸고

1일 1식을 하던 불교 교단의 계율 때문에 항상 배고프다고 칭얼댔음

그래서 부처는 어린 제자들에게 1일 1식을 하지 않도록 함

부처는 계율 그 자체를 강요하진 않았음을 보여주는 많은 대목 중 하나임

10세 전후였던 라훌라를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조치였음


사춘기가 된 라훌라는 교단이 따분했고

아빠는 자주 만날 수도 없었고

맨날 수행만 하는 삼촌들하고도 영 재미가 없었던지 

누군가 찾아와서 부처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엉뚱한 곳에 있다고 거짓말 놀이에 심취함


이걸 안 부처는

아들에게 큰 그릇에 물을 받아오라고 시킨 후에

아빠 발을 씻기라고 함

참고로 부처는 맨발로 다녔음.. 

라훌라가 발을 씻기고 나자

그 물을 마시고, 앞으로 그 그릇에 밥을 먹으라고 함

그러자 라훌라가 더러운 물을 어떻게 마시고, 발씻은 그릇에 어떻게 밥을 먹냐고 개김

그러자 부처가 말하길

거 바라 깨끗한 그릇에 발 한 번 씻은걸 알면 그 그릇에는 물 조차 떠 마시지 않는다.

네가 거짓말 하고 다니는걸 사람들이 알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냐?

너는 어리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타고 났지만

그 몸과 마음에 거짓말을 담고 살면 발씻은 그릇만도 못한 것임을 말해줌

라훌라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생각을 바꿔먹고 열심히 수행함


부처는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았던 거임

여튼 라훌라는 열심히 수행했지만

아빠처럼 설법을 잘하진 못했음

말주변이 없었던 거임 그래서 놀림도 받음

그래서인지 사교성 좋진 않았던 듯함

주로 혼자 다녔고, 홀로 수행하길 즐겼음

훗날 깨달음을 얻은 후에 라훌라에겐 밀행이라는 별호가 생김..

불멸(부처의 죽음)후 불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 라훌라의 제자들이 만든 부파가 밀교로 이어지고, 티베트로 전해지고, 중국으로 전해지고, 한국까지 전파됨...

밀교에서 모시는 부처가 비로자나불이고

합천 해인사의 대적광전 주불이 비로자나불임


밀교는 불경을 주문처럼 외우고, 그 주문을 종이에 적어 부적으로 지니며, 수인(손모양)으로 주술을 행하는 쪽으로도 발전함

그래서 밀교에 대한 논란이 불교에선 항상 있어왔음...


불교 수행자를 지금도 "중"이라 부르는데

중은 무리 중(衆)으로 인도말로 여러명을 뜻하는 샹가를 뜻번역 한 것임

샹가라는 발음이 중국으로 전해지자 한자로 승가(僧架)로 번역했고, 훗날 뒷글자 가가 떨어져 나가 승으로 번역했음

이것이 한국으로 와서 님과 결합하며 ㅇ이 탈락하고 스님이라 부르기 시작함

스님, 중 모두 샹가, 즉 여러사람, 무리를 뜻하는 말인데


밀교의 밀은 홀로의 뜻이 있음

부처는 뜻이 옳고 맞아 함께 할 만한 친구가 있으면 같이 가되,

그렇지 않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도 말씀하셨기에

밀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밀하게 되자 홀로 지키기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이것이 홀로 지키기 위해 주문, 부적, 주술등으로 이어지게 됨

훗날 밀의 의미는 사라지고

주문과 부적, 주술등만 남아

현재까지 이어짐


라훌라의 밀행이 현재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음


4. 부처의 아내 야소다라는 어떻게 됐는가?

야소다라는 부처의 둘째 부인임

첫째 부인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자 야소다라를 둘째 부인으로 들였고, 

그래도 자식이 없자 셋째 부인도 들임

하지만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라훌라임

야소다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음

부처와 결혼식에 전통대로라면 신부는 베일을 써야 하는데

이쁜 얼굴 가릴게 뭐 있냐며 베일 안 쓰고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음

한성격 하신듯...


5. 부처의 엄마는?

부처의 엄마는 마야임(마야부인이라고 꼭 대접해드림)

아빠 슈도나다에게 시집온 네팔 쪽 사람이고

임신하고 산달이 다가오자, 출산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다가(그당시 풍습에 따라)

난산으로 부처를 낳고, 이레만에 죽음...


그 당시에는 시집간 언니가 죽었을 때, 여동생이 있으면 여동생이 대신 시집을 갔는데

그렇게 마야언니 대신 상처한 슈도나다에게 시집간 사람이 마하파자파티.

즉 부처는 이모의 손에 자랐음.

훗날 부처가 깨달음을 얻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들에게 부탁해서 불교에 출가했으니

불교 최초의 비구니였음.


불교 상식 이상 끗

고수 인벤러

Lv81 치킨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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