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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무능한 선조와 열세 가지 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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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개
조회: 1978
2024-11-05 11:58:36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4838

어느 왕조시대를 막론하고 임금에게 간언(諫言)을 마다않는 강직한 신하는 많았다. 선조 때 고응척(高應陟)은 대과문과에 급제해 함흥교수로 부임했으나 2년 재임 후 사직하고 도학에 심취했다. 그 후 다시 풍기군수, 회덕현감, 경주부윤 등의 외직을 잠시 역임했으나 곧은 성격 탓에 사직한 후 학문에만 정진한 강직한 선비였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603년(선조 36년)경북 선산에 낙향하여 살던 고응척은 선조 임금에게 열세 가지 병폐를 고하는 소(訴)를 올렸다. "신이 삼가 임금께서 분부하신 것을 읽어보건대 열세 가지 병폐를 드시며 깊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셨습니다. 대체로 모른다면 말할 것이 없겠으나 이미 잘못한 것임을 알았다면 시급히 고쳐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선조가 하달한 열세 가지 나라 병폐를 알고도 고치지 않고 있으니 빨리 고치라는 것이다. 고응척이 고한 열세 가지 고질적인 병폐를 살펴보자.

"1. 대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도 깊이 힘쓰는 의지가 모자라고,
2. 충현(忠賢)한 신하가 있는데도 진심으로 맡기는 일이 없고,
3. 검소를 숭상하기는 대포(大布, 비단이 아닌 올이 굵은 삼배 무명베)는 부끄럽게 여기고,
4. 나라를 풍족하게 한다는 것이 더러는 부를 축적하는 일에 어긋나고,
5. 기강이 추락해 세상이 쇠잔해질 조짐이 날로 커가고,
6. 상벌이 전도돼 허위의 풍습이 날로 커가고,
7. 궁금(宮禁, 궁에서 금하는 것)이 엄숙하지 못하여 청탁의 길이 여러 갈래이고,
8. 조정이 조용하지 않아 참소(讒訴, 남을 음해함)하는 간사한 무리가 틈을 노리고,
9. 언로(言路)가 막히어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아량이 좁고,
10. 뛰어난 인재들이 은둔하고 있는데도 우대하는 심의가 없고,
11. 뇌물꾸러미가 벌 떼 날듯이 하는데도 막을 줄 모르고,
12. 궁중의 하례(下隷, 하인)들이 범처럼 으르렁거려도 제재할 줄 모르고,
13. 남쪽의 왜적이 틈을 노리고 있는데도 방어할 줄 모르고, 북쪽의 도적(여진족)이 노리고 있는데도 제어할 줄 모르고 있으니 이런 고질들은 신이 보기에 이른바,

술에 몹시 취하고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해 고금의 성군과 충현한 신하의 사례를 들어가며 열세 가지 병폐에 대한 시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면관계상 그의 시정책 언급은 생략한다(조선 선조실록 참조). 이 상소를 입계(入啓, 접수)한 선조는 계자(啓字, 알았다는 확인)만 찍어서 바로 그날 도로 내려 보냈다. 이에 대해 `선조실록`의 사관(史官)은 "고응척의 사람됨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초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을 하여 간절하게 고질을 지적했으니 진실로 깊이 권장해주어 언로가 열리고, 두렵게 생각하며 수양하고 반성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임금이) 자만해하는 기색으로 (그런) 사람을 천 리 밖에서 거절해 버리고 (듣기) 좋은 말만 들어주고, 좋은 말(바른말)을 들으면(가상하게 여겨) 절을 하는 미덕은 볼 수 없으니 구언(求言, 임금이 신하의 바른말을 구함)한다는 것이 한 장의 겉 치례에 불과하게 됐다…중략…그러니 이른바 `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 오늘의 일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선조의 무능을 질타한 사관의 비평이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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