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지난달 경기 오산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큰 불이나 주민 1명이 숨졌습니다.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불이 커진 또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청년이 혼자 살던 집에 생활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여기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삽시간에 번졌던 겁니다.
심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현장 도착 조에서 상황 판단해 본 바 건물 2층에서 다량의 연기가 분출하고 있고…]
지난달 20일 새벽, 사이렌소리가 오산 주민들의 잠을 깨웠습니다.
다세대주택 2층에 있는 한 호실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낸 불은 삽시간에 번져 건물을 뒤덮었습니다.
연기를 피하던 윗집 이웃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불 탄 흔적을 없애는 공사가 한창, 작업자들은 처음 방문을 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사 현장 작업자 : 필요 이상으로 딴 사람보다 쓰레기가 그렇게 많더라고. 발 디딜 틈이 없었어. 여기만 남고, 이 안에 꽉 찼었어.]
20대 여성이 혼자 살던 다섯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 쓰레기만 두 트럭이 나왔습니다.
화재 당시를 보니 창문이 안 보일 만큼 쌓인 까만 잿더미가 현관 바로 앞까지 밀려나와 있습니다.
타다 만 맥주캔과 박스들, 모두 생활 쓰레기입니다.
다리 뻗을 곳도 없는 이 방에서 살던 여성을 이웃들은 기억했습니다.
끼니는 편의점에서 겨우 해결했고,
[인근 편의점 직원 : 아침에는 음료수 사 가시고. 거의 아침에 오시고 저녁 시간 (되면) 저녁에도 오시고…]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건물주 : 앉아 가지고 스트레스받고 이러니까 도시가스값도 못 내고. 내가 전화하면 문도 안 열어줘.]
여성은 경찰조사에서 일하던 편의점에서 가져온 폐기된 식품을 먹고 쓰레기를 집에 뒀다고 진술했습니다.
최근엔 아르바이트마저도 그만뒀는데, 무기력증이 심해지면서 불필요한 물건을 과도하게 쌓아 두는 '저장강박'을 앓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쌓아 둔 쓰레기 더미에 불이 붙으며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오산시는 지난 2023년 저장강박 가구를 보호하기 위한 지원 조례를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지원대상은 단 한 가구도 없습니다.
이 여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장강박 가구는 주로 이웃이나 지인의 제보로 발견되기 때문에 신고가 없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은둔하는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이유입니다.
결국 이곳엔 쓰레기 더미 만큼이나 거대한 우울이 오랜시간 방치돼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