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12년(1937년) 12월 13일자 도쿄일일신문의 기사. 목 베기 시합을 벌인 두 소위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연옥이 난징(南京)시가 함락당한 그날의 모습이며, 침략자 일본군은 피에 굶주린 지옥의 아수라떼였다."(존 머기), "남편이나 형제가 강간을 말리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욘 라베), "임신 6개월의 19세 리슈잉은 일본군에게 배를 찔려 유산하고 얼굴에 18차례 칼을 맞았으며 37곳을 봉합했다. 일본 사령관에게 항의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마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로버트 윌슨)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간 중국 강남의 고도(古都) 난징은 아비규환의 인간 도살장으로 변했다. 당시의 광기와 참상을 고발하는 사진과 증언 기록은 차고도 넘친다. 도쿄일일신문(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은 중국인 100명의 목을 누가 더 빨리 베는가를 겨루는 시합이 벌어져 젊은 두 소위가 각각 106명과 105명을 참수하는 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를 버젓이 실었다.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중국인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장작불에 밀어 넣어 몽둥이로 때렸다"는 일본군의 일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나치조차 난징대학살을 두고 '야수의 행위'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