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나 영화 '듄'에서 보면 주인공 폴, 무앗딥, 퀴사츠 해더락은 우여곡절 끝에 프레멘족의 지도자에 오르지만 그 역시 고민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그를 따르는 프레멘들이 광신도가 되어 전 우주를 파괴로 몰고 가는 환영을 본다. 이것은 환영이자 예언이다. 베네 게세리트(일종의 초능력자집단)인 어머니의 혈통과 두뇌를 극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하는 물질 '스파이스'덕분에 그는 일종의 인간 슈퍼컴퓨터로 수 많은 가능성들을 계산해서 가장 가능성 있는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에 대해 비판 없는 추종자들은 광신도로 변한다. 우리의 리더는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프레멘들을 결속시키는 가장 큰 이유이면서 그들이 타 행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명분이 된다.
초인 혹은 메시아가 출현해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은 달콤하다. 우리의 두뇌가 아무런 비판의 과정 없이 그저 메시아를 지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 속 지도자나 영웅은 인간이다. 그들도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화정에서는, 심지어 왕정에서도 형식으로는, 지도자가 다수의 의견을 청취해 실수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위에서 리더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며 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이들을 본다. 예를 들어, 어느 종교의 사제와 그를 따르는 신도들, 정권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지지자들.
역사적으로도 귀족들이 평민이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서민들이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평민들이 메시아를 맹목적으로 따라 광신도로 변할 수 있는 프레멘들로 본 것이다.
1969년 듄을 저술한 프랭크 허버트는 여러 메체를 통해 카리스마 있는 메시아(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에 대해 경고했다. 2026년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지도자를 경계하고 있는가, 아니면 프레멘 추종자처럼 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