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어떤 가느다란 상흔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과 닮아 있었다. 정당의 전략가들은 청년이라는 거대한 단어 속에 개인들의 열망을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젊은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가기를 원한다. 단지 번듯한 대기업의 명함이나 강남의 아파트를 탐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자신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동이 배반당하지 않으리라는 최소한의 믿음, 즉 스스로의 삶을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도착한 정책의 문장들은 차가웠다. 가난을 증명해야만, 부양해야 할 가족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비로소 겨우 내밀어지는 손길들. 청약 제도의 촘촘한 가점들이나, 1인 가구의 건강보험료가 13만 원을 넘었다는 이유로 차단되어 버린 고유가 지원금의 선들이 그랬다.
스스로의 힘으로 간신히 한 계단 위로 발을 디딘 청년들에게 돌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제외라는 채찍이었다. 멈춰 서서 가난을 앓아야만 당근을 쥐여주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딛고 선 자리가 얼마나 위태롭고 외로운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복지라는 이름의 온기가 도리어 그들이 품은 성취의 열망을 꺾는 정교한 덫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결핍은 자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층 더 깊은 얼룩을 남겼다. 코스피 지수가 수배로 도약하며 축제의 불꽃을 쏘아 올릴 때, 쥐어볼 시드머니조차 갖지 못한 청년들의 손바닥은 텅 비어 있었다. 숫자는 올라갔으나 그들의 삶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 상승의 과실을 고스란히 거두어 간 이들은 이미 단단한 성을 구축한 40대와 50대의 기성세대였다. 부를 독점해 가는 기성세대의 뒷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마음에 단단한 바위를 품게 되었다. "그들이 모든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분노가, 기성세대가 지탱하는 정당을 향한 거부감으로 번져나간 것이었는지 모른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편향된 언론의 시선과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유령들은 청년들의 눈과 귀를 감싸 쥐었다. 그들이 마주하는 화면 속에는 오직 타오르는 적개심과 뒤틀린 정보만이 가득했다. 내가 보고 싶은 절망만을 비추는 거울 속에서, 청년들은 모든 정책을 불신과 증오의 렌즈로 바라보도록 길들여졌다.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파놓은 차가운 방에 갇혀 끊임없이 같은 목소리의 메아리만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상향을 향한 갈망을 부정하는 주거 및 금융 정책, 기성세대의 성벽 앞에서 느낀 박탈감, 그리고 그 틈새를 정교하게 파고든 미디어의 소음들. 이번 선거는 그 삼중의 사슬이 마침내 청년들의 마음을 진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주 멀리, 차갑게 돌려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한강버스의 헛발질, 받들어총의 흉칙함, 삼성역의 부실공사와 같은 개별적인 행정의 실책들은 이미 고갈된 희망의 잔해 위에서 그저 의미 없는 소음으로 치부될 뿐, 더 이상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