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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재선거가 안되는 이유: 2단계가 진짜 관문

아이콘 전승지기초
댓글: 7 개
조회: 1996
추천: 4
2026-06-09 20:01:59


# 투표용지가 모자랐는데, 왜 재선거는 안 될까

6·3 지방선거 당일 서울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떨어졌다. 줄을 섰는데 용지가 없어 발길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부실 선거를 어떻게 인정하나, 다시 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실제로 선거 무효 소청까지 접수됐다.

그런데 법률가들 다수는 “재선거로 가긴 어렵다”고 말한다. 유권자의 권리가 침해된 건 분명한데 왜 재선거는 막힐까. 답은 우리 법이 선거 무효의 문턱을 일부러 아주 높게 세워뒀기 때문이다. 그 문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분노와 별개로 왜 이 결론이 나오는지 이해가 된다.

## 문턱은 두 단계로 되어 있다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를 무효로 하려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정한다.

**1단계 — 선거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있을 것.**
선거를 관리하는 쪽이 지켜야 할 규칙을 어겼느냐다. 충분한 용지를 준비하는 건 선관위의 당연한 의무이니, 이 단계는 통과할 여지가 있다.

**2단계 — 그 위반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것.**
여기가 진짜 관문이다. 법 조문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무효로 한다고 못 박는다. ‘한하여’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위반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위반이 없었다면 당락이 바뀌었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축구로 비유하면 이렇다. 심판이 오심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경기를 다시 치르지는 않는다. 그 오심이 **승패를 뒤집었을 만한 것일 때만** 재경기를 검토한다. 1대 5로 진 팀이 “심판이 우리 코너킥 하나를 놓쳤다”고 재경기를 요구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선거 무효도 같은 논리다.

## 왜 2단계에서 막히나 — 숫자가 안 맞는다

이번 사태의 규모를 보자. 부족했던 투표용지는 전국 50개 투표소에서 모두 약 4,700장, 그중 서울이 약 3,900장이었다. 가장 심했던 송파구 한 투표소가 436장 부족했다.

한편 서울시장 선거의 표차는 0.1%포인트 안팎, 표로는 대략 8,000표에서 2만여 표 사이였다. 박빙이긴 했다.

여기서 함정이 있다. **“용지가 모자랐다”는 게 곧 “그만큼이 투표를 못 했다”는 뜻이 아니다.** 용지가 떨어지자 추가 물량이 긴급 투입됐고 마감 시간도 늦춰져서, 기다렸던 사람 상당수는 결국 표를 던졌다. 끝내 못 찍고 돌아간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선관위도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가장 후하게 잡아 부족분 전부(약 4,000장)가 미투표로 날아갔다고 쳐도, 이 표가 결과를 뒤집으려면 **그 표가 거의 전부 패배한 후보에게 쏠렸어야** 한다. 현실에서 유권자는 한쪽으로만 몰리지 않고 양 후보로 갈린다. 4,000명이 갈라지면 두 후보 간 순차이는 그보다 훨씬 작아진다. 8,000표 이상 벌어진 격차를 메우기엔 산수가 닿지 않는다. 법원이 쓰는 기준이 “확실히 바뀌었다”가 아니라 “바뀌었을 **가능성**“이라는 다소 너그러운 잣대인데도, 이 규모로는 그 가능성조차 세우기가 빠듯하다.

## “독일은 다시 했다는데?”

무효를 주장하는 쪽은 다른 길을 연다. 득표수 계산은 따지지 말고, “선거의 공정에 대한 신뢰가 근본부터 무너졌으니 그 자체로 무효”라는 논리다. 실제로 2021년 독일 베를린에서 비슷한 용지 부족·관리 부실이 있었을 때, 독일 헌법재판소는 표차를 따지기 전에 재선거를 명령한 사례가 있다.

매력적인 주장이지만 한국에선 벽이 높다. 우리 법 조문은 앞서 봤듯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라고 적혀 있다. 독일식으로 “영향은 묻지 않고 다시 한다”고 하려면, 우리 법이 명문으로 정해둔 그 한정 문구를 무시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 대법원은 그동안 선거 무효에 매우 인색했다. 없는 법리를 새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가까운 셈이다.

## 그렇다고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한다. **재선거 여부**와 **선관위 책임**은 다른 문제다.

재선거가 어렵다는 건 “그 정도 실수는 봐줘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선거 무효의 문턱이 높은 건, 행정상 실수 하나하나로 선거를 뒤엎을 수 있게 하면 어떤 선거도 안정될 수 없고, 패자가 늘 결과에 시비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의 안정성을 지키려는 장치다.

동시에,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을 정작 선거관리기관이 스스로 침해한 건 가볍지 않은 사건이다. 진상규명위 조사와 수사가 진행 중이고, 책임을 묻는 건 이 트랙에서 이뤄져야 한다. “선관위의 무능을 응징하는 일”과 “선거 결과를 뒤집는 일”을 같은 것으로 묶으면, 정작 따져야 할 책임 문제까지 정치 공방에 묻혀버린다.

## 정리

- 선거 무효에는 **①규정 위반 + ②결과에 영향**이라는 두 관문이 있고, 둘 다 넘어야 한다.
- 이번 사태는 ①은 다툴 여지가 있어도, **②(결과 영향)에서 막힌다.** 부족한 용지 규모가 표차를 뒤집기엔 너무 작고, 대부분은 결국 투표했기 때문이다.
- “영향을 묻지 말자”는 독일식 논리는 우리 법 문언과 판례 앞에서 승산이 낮다.
- 그래도 유권자 권리 침해라는 문제 자체는 별도로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화가 나는 것과 법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번 일이 우리에게 남기는 진짜 질문은 “왜 재선거를 안 하나”가 아니라,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어쩌다 유권자를 줄 세워 돌려보내게 됐고,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나”여야 한다.

Lv80 전승지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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