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사 원문 :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81441?sid=162—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책임의 외주화’
6월 3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렸다. 투표용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투표소는 투표가 중단된 채 한 시간 넘게 재개되지 못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하러 간 시민이 종이가 없어서 투표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퇴했고, 진상규명위원회와 국정조사가 가동되고 있다.
그리고 6월 11일, 위원장 직무대행이 대국민 입장문을 냈다. 사과문의 형식을 갖춘 이 문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과의 수사가 아니라 경위 설명의 화법이다. 본투표용지 인쇄 비율 하한을 60%에서 50%로 낮춘 결정에 대해 입장문은 이렇게 말한다. “선관위는 2022년 한국행정연구원에 정책연구용역을 의뢰했고, 현장 직원들로 구성된 절차사무개선TF의 연구 결과에 따라” 하한을 조정했다고.
“연구 결과에 따라.” 이 다섯 글자가 이 글의 주제다.
보고서에는 50%가 없다
문제의 보고서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2022년 12월 완료된 「선거 절차사무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 결과보고서다. 투표용지 관련 대목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선거별 투표율, 사전투표율 등을 고려하여 선거일 투표에 사용하는 투표용지 인쇄량을 축소할 필요가 있으며, 선거일 투표에서도 사전투표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
축소를 권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장 어디에도 50%라는 숫자는 없다. 60%를 50%로 낮추라는 말도, 그 수치를 전국 모든 지역에 적용 가능한 하한선으로 삼으라는 말도 없다. 보고서가 제시한 것은 “투표율과 사전투표율 등을 고려하여” 줄이라는 방향이었다. 그 방향을 구체적인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를 운영 기준으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선관위 사무처의 결정이다.
방향을 가리킨 손가락과 절벽 끝까지 걸어간 발은 다른 것이다. “서쪽으로 가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해서, 서쪽 절벽에서 떨어진 책임이 조언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연구보고서의 방향성 권고를 구체적 수치 결정의 근거로 격상시키는 화법은, 손가락에게 발의 책임을 묻는 화법이다.
평소에는 “공식 견해가 아니다”라더니
더 곤혹스러운 대목이 있다. 이 보고서의 표지에는 선관위 스스로 박아 놓은 문구가 있다. “본 연구보고서는 2022년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연구용역 과제로서 연구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이 면책 문구는 모든 정책연구용역 보고서에 붙는 관행적 표현이고,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연구의 독립성을 위해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문제는 비대칭이다. 평소에 연구용역 보고서는 “참고자료일 뿐, 기관의 견해가 아니다”라는 위치에 놓인다. 보고서의 수많은 권고 중 무엇을 채택하고 무엇을 버릴지는 전적으로 기관의 재량이고, 실제로 대부분의 권고는 채택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자 이 보고서는 갑자기 “연구 결과에 따라” 결정했다는 문장 속에서 결정의 근거로 승격된다.
채택할 때는 재량이고, 해명할 때는 근거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책임의 외주화’의 전형적 문법이다. 의사결정의 권한은 기관이 행사하고, 의사결정의 책임은 외부 문서에 분산시키는 것이다.
결정은 누가 했는가
그렇다면 그 결정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50% 하향을 담은 종합관리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절차사무편람은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개정되었다. 중앙선관위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다. 그러나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직결되는 이 결정은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사무처의 결재선에서 끝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결정 과정도 빨랐다. 내부 인사로 구성된 TF가 꾸려진 뒤 사무총장 결재까지 넉 달 남짓이었고,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에게 자문을 구하지도 않았다. “연구 결과에 따라” 결정했다는 기관이, 정작 그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에게는 묻지 않은 것이다. 연구 결과가 결정의 실질적 근거였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연구 결과는 근거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정에 사후적으로 부착된 명분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황에 부합한다.
합의제 기구의 핵심 판단이 사무처 전결로 처리되고, 그 공백을 “연구 결과”라는 커튼이 가린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거버넌스적 본질이다.
보고서가 시킨 유일한 일
마지막으로, 가장 역설적인 대목이다. 보고서의 권고를 다시 읽어 보자. “선거별 투표율, 사전투표율 등을 고려하여” 축소하라. 권고의 핵심은 축소라는 결론이 아니라 ‘고려하라’는 단서에 있다. 데이터를 보라는 것이다.
데이터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나. 이번에 용지가 동난 송파구의 동들은 과거 지방선거에서도 본투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50%를 웃돌던 지역들이다. 동별 편차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관측된 패턴이었다. 투표율 데이터를 “고려”했다면, 본투표율이 50%를 넘나드는 지역에 50% 하한을 일률 적용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산수의 문제였다.
여기에 이 사태의 완성된 역설이 있다. 선관위는 보고서를 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고서가 요구한 유일한 실질적 작업 — 지역별 투표 데이터를 고려하라 — 은 이행하지 않았다. 결론(축소)은 가져가고 조건(고려)은 버린 것이다. 따랐다는 주장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같은 문장 안에 공존한다.
연구와 결정 사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해마다 수천 건의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연구는 선택지와 방향을 제시하고, 결정은 권한을 가진 기관이 내린다. 이 분업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한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결정의 책임은 결정한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연구보고서가 결정의 알리바이로 동원되기 시작하면, 이 분업은 양쪽 모두를 망가뜨린다. 기관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법을 배우고, 연구는 면책의 재료로 소비될 것을 예감하며 무난한 권고 뒤로 숨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라”라는 말이 “그러므로 우리 잘못만은 아니다”의 동의어가 되는 순간, 정책연구라는 제도 자체의 신뢰가 잠식된다.
송파구에서 발길을 돌린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위 설명이 아니라 책임의 소재다. 그 소재는 분명하다. 방향을 수치로 바꾼 것도, 수치를 전결로 확정한 것도, 데이터가 보내는 경고를 지나친 것도 선관위다. 보고서는 그 어느 단계에도 결재 도장을 찍지 않았다.
연구는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은 외주를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