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청년최고위원 분리 선출안이 부결됐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선출직 최고위원 5석 중 1석을 청년 몫으로 정해 올린 안이었다. 안건은 전준위로 되돌아갔지만, 사정이 무엇이었든 결과는 하나다. 이 당은 청년에게 자리 하나 내주는 문제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나는 부결이 아쉽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저 안이 통과됐어도 청년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년 한 사람을 최고위 테이블에 앉히는 것과, 청년의 목소리가 당에 반영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체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뽑는 청년최고위원은 결국 조직표를 받아 당선된다. 표를 준 쪽에 빚을 지는 게 정치다. 그 자리는 '청년 대표'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뿐, 청년이 아니라 자신을 밀어준 조직을 바라보게 된다. 청년들이 지금까지의 청년 정치를 냉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 방식의 끝을 우리는 이미 봤다. 2020년 당대표가 지명한 청년최고위원이 이듬해 25세 나이로 청와대 1급 상당 청년비서관에 임명됐다. 청년을 발탁했다는 명분은 당과 청와대의 것이었고, 박탈감은 청년들의 몫이었다. "9급 하나 달려고 몇 년을 준비하는데"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나는 그것이 그 개인의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도 검증도 없이 위에서 사람을 꽂아 넣는 발탁 구조의 필연적 결과였다. 청년 정치를 살리겠다는 발탁이 청년들의 공정 감각을 정면으로 때린 것이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전체 40%, 20대에서는 21%였다. 이 숫자는 그 시절부터 쌓여 온 청구서다. 청년들은 시혜를 바라는 게 아니다. 같은 규칙을 바라는 것이다.
전국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자.
많은 사람이 모르지만,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은 이미 선출직이다. 2024년 10월 전국위원장 경선에서 대의원 20%, 권리당원 80%를 반영해 뽑았다. 경쟁하고, 공약을 내고, 표로 선출되는 자리가 이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뽑힌 청년 대표에게 최고위 의석은 없다. 새 제도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이미 있는 제도에 권한을 연결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만 보태면 된다. 청년위원장 선거인단을 청년 당원 중심으로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차기 청년위원장 선거부터 적용하는 것이다.
당권 주자들도 청년 몫 지명직이니 경선 후 지명이니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명직은 결국 당대표의 선물이다. 대표가 바뀌면 사라지고, 받은 사람은 대표에게 빚을 진다. 그 선물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앞에서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일회성 자리가 아니라 상설 제도다. 차이는 세 가지다.
첫째, 대표성의 원천이 다르다. 청년들이 뽑은 위원장은 청년에게 빚을 진다. 재선하려면 청년의 요구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표의 논리가 청년의 목소리를 최고위로 밀어 올리는 구조다.
둘째, 개인이 아니라 조직에 대표성이 귀속된다. 최고위 의석이 걸리면 청년위원장 선거의 무게가 달라진다. 후보들은 청년 당원을 조직하고, 공약을 내고, 토론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청년 정치인의 훈련장이자 충원 경로가 된다. 한 명을 발탁하는 게 아니라 뽑히는 경쟁의 판을 키우는 것이다.
셋째, 특혜가 아니라 경쟁이다. 누가 봐도 열려 있는 선거로 올라온 사람에게는 낙하산이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물론 반론이 있을 것이다. 그 선거도 결국 조직 동원판이 되지 않겠냐고. 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를 보자. 2023년 당원 통계에서 2030세대는 17.5%, 4050세대는 51.6%다. 전체 당원 선거에서 청년 표는 구조적으로 묻힌다. 청년이 중심이 되는 선거에서만 청년 한 표 한 표의 값이 달라진다. 적어도 표를 얻으려는 쪽이 청년의 언어로 경쟁하게는 만든다. 그것이 시작이다.
민주당은 8년 만에 청년최고위원을 되살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싸우고 있다. 질문이 틀렸다. 청년 한 명을 어디에 앉힐 것인가가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대표를 세우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사람은 바뀌고 떠나지만, 시스템은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