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수막은 대법관을 임명하지 못한다
지난 8월 1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후보 두 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종이 한 장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정치권은 뒤집어졌다. 역대 대법원장들은 청와대와 물밑에서 후보를 조율한 뒤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제청해왔기 때문이다. 여당 대표는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전국에 걸라고 지시했고, 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소동에서 정작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애초에 왜 ‘관행’이 이 나라 최고 법원의 인사를 지탱하고 있었는가.
관행은 헌법의 침묵에서 태어났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이렇게 정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청, 동의, 임명 — 세 기관이 한 단계씩 나눠 갖는 구조다. 어느 한 기관도 혼자서는 대법관을 만들 수 없다. 사법부 인사를 특정 권력이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는, 그 자체로는 훌륭한 설계다.
문제는 헌법이 여기서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제청을 미루면? 대통령이 제청받은 후보의 임명을 거부하면? 헌법에는 답이 없다. 시한도, 절차도, 교착이 생겼을 때의 출구도 없다. 그 빈칸을 메운 것이 관행이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미리 만나 양쪽 다 받아들일 후보를 추리고, 합의가 끝나면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예방해 제청하는 것. 대면 제청은 예우가 아니라 “합의됐다”는 신호였다. 2011년에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법원조직법이 개정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제41조의2), 후보군을 넓히는 장치였을 뿐 청와대와의 최종 조율은 여전히 밀실의 몫이었다.
이 방식은 수십 년간 그럭저럭 굴러갔다. 그러나 밀실 협의에는 치명적 전제가 있다. 두 기관이 서로를 신뢰하고, 합의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관행은 법이 아니라 신뢰 위에 서 있었고, 신뢰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졌다
올해 그 전제가 깨졌다. 지난 3월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했다. 추천위원회는 이미 1월에 후보 네 명을 추천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제청은 8월에야 이뤄졌다. 다섯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청와대와 대법원장이 서로 다른 후보를 원했고,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 사이 국민은 누가, 왜 버티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연의 책임 소재가 안개 속이었으니 여론이 압박할 대상도 없었다. 대법원 재판은 밀렸고, 피해는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대법원장은 협의 없는 서면 제청이라는 강수를 뒀고, 여당은 사퇴 현수막으로 응수했다. 양쪽 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서면 제청은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 대면과 사전 협의는 순수하게 관례였다. 그러니 탄핵의 요건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헌법 제65조)에 닿기 어렵다. 반대로 현수막은 대법원장을 물러나게 할 수 없다 — 임기는 헌법이 보장한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서로를 어쩌지 못하는 두 권력의 소모전이고, 그 비용은 계속 국민이 치른다.
관행이 깨진 자리를 비난으로 채울 수는 없다. 법으로 채워야 한다.
현수막 대신 필요한 세 가지 입법
물론 완전한 해법은 개헌이다. 교착 자체를 강제로 푸는 장치는 헌법 권한의 재설계라 법률로는 만들 수 없다. 그러나 개헌이 요원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을 일도 아니다. 법률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핵심 원리는 하나다. 밀실 협의가 하던 일을 공개 절차로 대체하고, 버티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첫째, 법원조직법을 고쳐 절차에 시동장치와 시계를 달아야 한다. 현행 제41조의2는 추천위원회를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구성한다고 정한다. 절차의 시작 자체가 대법원장의 의사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를 “결원 발생이 확정되면 자동으로 구성”으로 바꾸고, 추천 이후 제청까지의 시한을 두자. 시한을 어겨도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어긴 기관이 지연 사유를 서면으로 국회에 보고하고 공개하게만 하면 된다. 이번 사태가 다섯 달을 끌 수 있었던 건 책임의 소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공이 어디서 멈춰 있는지”가 매 단계 문서로 남으면, 버티기는 전혀 다른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둘째, 인사청문회법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 놀랍게도 법은 이미 시한을 알고 있다. 인사청문회법 제6조 제2항은 임명동의안이 제출되면 20일 안에 심사를 마치라고 정하고, 제3항과 제4항은 국회가 움직이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관·국무위원·검찰총장 등은 임명권자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우회로까지 마련해뒀다. 그런데 그 명단에 대법관이 없다. 대법관은 헌법상 국회 ‘동의’가 필수라 임명 강행이 불가능하고 — 그건 옳다 — 대신 국회가 표결 자체를 안 하고 뭉개면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 부결은 국회의 정당한 권한이지만, 무기한 방치는 권한이 아니라 회피다. 시한이 지나면 동의안을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면, 부결의 자유는 그대로 두면서 회피만 차단할 수 있다. 국회가 스스로를 묶는 규정이니 위헌 시비도 없다.
셋째, 추천위원회를 협의의 진짜 대체물로 키워야 한다. 밀실 협의가 수행하던 기능 — 여러 기관이 수용할 후보 찾기 — 을 없앨 게 아니라 공개 무대로 옮기자는 것이다. 위원 구성에서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줄이고, 심사 기준과 결과를 공개하면, 청와대의 선호도 밀실 전화가 아니라 공개 절차를 통해 반영된다. 대법원장의 최종 선택은 공개된 후보군 안에서의 재량으로 남으니 헌법상 제청권 침해 시비도 피한다.
한 가지 유의점. 이런 법을 지금 당장 시행하면 ‘대법원 길들이기’로 읽힐 것이다. 그래서 적용 시점을 차기 대법원장 임기부터로 미루는 게 좋다. 자기 임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칙이라야, 여야 모두 이것을 특정인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될 일반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관행의 시대를 끝낼 기회
이번 충돌이 남긴 유일한 소득이 있다면, 관행이 가려온 헌법의 빈칸을 전 국민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밀실 협의는 신뢰가 있을 때만 작동하는 절차였고, 우리는 신뢰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신뢰 없이도 굴러가는 절차다. 누가 미루는지 보이게 하고, 표결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조율을 공개 무대에 올리는 것 — 전부 법률로 가능한 일이다.
현수막을 걸고 탄핵이 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론전에 돈과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OR
명확한 출구전략을 설정해서 움직일것인가?
민주당은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