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해 진행한 전문·경력직(4~5급) 공개채용에서 목표 인원 60명 중 56명만 임용을 마쳤다. 변호사·회계사 자격을 갖춘 인력을 뽑는 자리가, 그것도 무경력 회계사까지 지원 문턱을 낮춘 상태에서 미달됐다. 숫자만 보면 4명이다. 그러나 이 4명은 통계적 잡음이 아니라 구조적 신호로 읽어야 한다. 지방 이전이 ’설(說)’인 단계에서 이미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시장은 발표보다 빨리 움직인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공론화를 거쳐 10~11월경 최종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고(김윤덕 국토부 장관, 8월 24일 국회 예결특위 발언), 8월 25일 국무회의에는 금융위원회 등 행정기관 이전 안건이 우선 상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예금보험공사와 함께 공공기관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단계다.
그런데 채용 시장은 확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전문직 노동시장에서 직장 선택은 향후 10~20년의 경력 경로를 거는 결정이다. “이전될지도 모르는 기관”과 “서울에 남는 로펌·회계법인” 사이에서, 이전 가능성이라는 불확실성 자체가 이미 할인 요인으로 작동한다. 금감원 관계자가 “임용은 완료됐으나 이전이 확정되면 일부가 근무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대목은 이 할인이 임용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뜻이다.
내부 인력의 태도는 더 분명하다. 금감원 노조가 조합원 15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5.6%가 이전 확정 시 이직을 고려하겠다고 답했고, 회계사는 90.6%, 변호사는 94.2%에 달했다(EBN, 8월 23일 보도). 설문이 노조 주도라는 점에서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을 수는 없더라도, 이전 리스크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 정확히 ‘기사가 채용에 실패한 그 직군’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전주 이전이라는 자연실험
이 우려가 기우인지 아닌지는 이미 한 번 실험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2017년 전주 이전이다.
이전 전 기금운용직 퇴사자는 연 10명을 넘지 않았다. 이전 후 2년간 퇴사자는 60명을 넘었고, 이전이 가시화된 2016년 이후 3년여간 누적 퇴사자는 120여 명에 달했다. 운용직 평균 경력은 2014년 9.7년에서 5년 만에 6.1년으로 3년 이상 짧아졌다. 베테랑이 떠나고 그 자리를 경력 짧은 인력이 메우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으로도 2018~2022년 연평균 입사 40.7명 대비 퇴사 26.5명, 2020년에는 퇴사자(30명)가 입사자(19명)를 앞질렀다.
기금운용본부는 그나마 ‘운용 성과’라는 계량 지표로 손익을 사후 검증할 수 있는 조직이다. 감독기구는 다르다. 감독 실패의 비용은 평시에 보이지 않다가 사모펀드 사태나 대규모 주가조작 같은 사건이 터진 뒤에야 청구서로 돌아온다. 인력 공동화가 감독 품질에 미치는 손상은 측정이 늦은 만큼 교정도 늦다.
감독 수요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급이 흔들리는 바로 그 시점에 수요는 늘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이중으로 만든다.
첫째, 정부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와 회계부정 엄단을 국정 기조로 내걸었고, 금감원은 주가조작 합동대응단에 조사국 인력 40명 가까이를 파견하며 일반 조사 라인이 얇아진 상태다. 이번 채용 인원 중 20명이 조사국에 배치된 것도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둘째, 오는 10월 2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검사의 특별사법경찰 수사지휘권이 폐지된다. 지금까지 금감원 자본시장 특사경은 검사 지휘 아래 수사의 법리적 완결성을 보완받아 왔다. 지휘권이 사라지면 압수수색 영장 신청부터 송치 품질까지 특사경이 자체 법률 역량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진다.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어느 쪽이 지휘를 맡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파이낸셜뉴스 4월 18일, 아주경제 8월 23일 보도), 법조·수사 경력자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됐다. 그 전제 조건을 흔드는 정책을 같은 해에 추진하는 것은 정책 간 정합성의 문제다.
금융은 집적 산업이다
금융감독은 책상 위 서류 심사가 아니다. 검사·조사 업무는 금융회사 본점과의 물리적 접촉을 전제로 하고, 그 본점의 절대다수는 서울·수도권에 있다. 검사 인력이 지방에서 서울로 출장을 반복하는 구조는 감독 밀도를 떨어뜨리는 비효율이라는 지적이 당국 내부에서도 나온다(뉴스토마토, 8월 20일 보도). 2026년 상반기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이 세계 8위에 오른 것은 기관·시장·인력이 한곳에 모여 만들어낸 집적 효과의 결과물이다. 감독기구만 그 생태계에서 떼어내는 것은 집적의 이익을 정부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균형발전의 목적어를 다시 묻는다
국가균형발전은 정당한 헌법적 가치다. 그러나 균형발전의 수단으로 어떤 기관을 옮길지는 기능 분석의 문제이지 상징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당국 안팎에서는 검사·조사 기능을 서울에 두고 기획·지원 기능만 이전하는 이원화 방안이 거론된다. 절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56명을 뽑으려다 4명을 못 채운 것이 아니다. 이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4명이 빠졌다. 확정되면 얼마가 빠질지는 국민연금이 이미 보여줬다. 정부가 10월 최종안을 내놓기 전에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 감독기구를 옮겨서 얻는 지역경제 효과가, 감독 역량 공동화로 치를 비용보다 큰가. 그 계산서 없이 내리는 결정은 정책이 아니라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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