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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오늘은 검사가 수사하던 시대의 마지막 날이다

아이콘 전승지기초
댓글: 6 개
조회: 1928
추천: 24
2026-10-01 17:38:03


오늘 밤 자정이 지나면 검찰청법은 효력을 잃는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는 이미 한 줄만 남아 있다. "검찰청법은 폐지한다." 1949년 12월 20일 법률 제81호로 태어난 법이 일흔여섯 해 아홉 달 만에 문을 닫는다.

검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일부터 검사는 공소청에서 기소하고 재판을 맡는다. 공소청의 장도 여전히 검찰총장이라 불린다. 없어지는 것은 검사의 수사다. 1949년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무 맨 앞에 "범죄수사"를 적었다. 내일 시행되는 공소청법의 직무 목록에는 그 단어가 없다. 형사소송법은 이렇게 바뀐다. "검사는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를 책임지고, 사법경찰관은 수사를 책임진다." 오늘은 검사가 수사하던 시대의 마지막 날이다.

왜 이날이 왔는가. 수사하고, 기소하고, 그 잘못까지 스스로 심판하는 권한을 한 손에 쥔 조직이 지난 40년 동안 그 권한을 어떻게 썼는지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1986년 부천경찰서에서 경찰관이 조사받던 여성을 성고문했다. 검찰은 가해 경찰관을 기소유예로 풀어주고 피해자 권인숙 씨를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이1988년 그 처분을 받아들인 하급심 결정을 깨뜨린 뒤에야 가해자는 법정에 섰고 징역 5년을 받았다.

1987년 1월에는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졌다. 고문한 것은 경찰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고문 경찰관이 셋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천주교 사제단이 폭로할 때까지 수사하지 않았다. 31년 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이 정권의 안정을 먼저 생각해 사건을 축소할 기회를 줬다고 결론 내렸다.

1995년 7월 검찰은 5·18 책임자들을 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담당 검사의 말은 이랬다. "사법적 판단대상이 결코 아니다." 세상은 이것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라고 불렀다. 넉 달 뒤 대통령이 특별법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검찰은 일주일 만에 특별수사본부를 차리고 같은 사람들을 다시 수사했다. 바뀐 것은 법이 아니라 권력의 뜻이었다. 2007년에는 대선을 2주 앞두고 유력 후보의 다스 실소유 의혹에 무혐의를 발표했다. 그 후보는 대통령이 됐고, 13년 뒤 대법원은 다스가 그의 것이라고 인정하며 징역 17년을 확정했다.

권력 앞에서 무디던 칼은 권력이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 날카로웠다.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은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 정연주 KBS 사장,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차례로 기소했다. 셋 다 무죄였다. 미네르바는 백 일 넘게 갇혀 있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몬 사건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위조한 증거를 검사가 법정에 냈다. 그 검사들이 받은 징계는 정직 1개월이었다. 검찰은 오히려 4년 전 스스로 기소를 유예했던 일을 끄집어내 유 씨를 다시 재판에 넘겼고, 대법원은 2021년 이것을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기각을 확정한 첫 사례였다.

제 식구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2005년 삼성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렸다는 대화가 담긴 도청 테이프가 공개됐을 때 검찰은 삼성도 검사도 기소하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를 보도한 기자였고,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은 두 차례 무혐의로 끝냈다가 6년 뒤에야 재수사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총체적인 부실 수사 및 봐주기 수사"라고 불렀다. 그 위원회가 다시 들여다본 사건이 열일곱 건인데, 활동을 마칠 때까지 그 일로 처벌받거나 징계받은 검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2009년 봄이 있다. 검찰은 퇴임한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정례 브리핑으로 수사 내용을 알렸다. 4월 22일 KBS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명품 시계를 받았다고 보도했고, 5월 13일 SBS가 노 전 대통령이 그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열흘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보도에 대해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이렇다. 조서에는 논두렁이라는 말이 없다.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 스스로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는 2017년, 국정원 간부가 KBS 보도 하루 전 이인규 부장을 찾아가 시계 건을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주는 선에서 활용"하라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이 실제로 흘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보도한 SBS 기자는 그 말을 검찰에서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인규 전 부장은 국정원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논두렁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밝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서에 없는 말이 수사기관 언저리에서 흘러나와 전직 대통령을 조롱거리로 만들었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검찰은 서거 뒤에야 피의사실 공표라는 지적이 많다는 이유로 브리핑을 멈췄다. 수사팀은 피의사실 공표로 고발됐다. 이듬해 1월 검찰은 일부 브리핑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죄가 안 된다며 불기소했다. 수사한 조직이 자기 수사를 심판한 것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눈 때도 있기는 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와 2016년 국정농단 수사가 그렇다. 그러나 예외 몇 번이 40년의 규칙을 바꾸지는 못한다.
고치려는 시도는 번번이 꺾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마주 앉았을 때 한 검사는 대통령에게 취임 전 청탁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대통령은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되물었다. 그가 추진한 고위공직자 수사기구 법안은 국회에서 폐기됐다.

그 자리에 민정수석으로 배석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어 다시 개혁에 나섰다.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
검찰의 대답은 한 달 남짓 뒤에 왔다. 검찰개혁을 맡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조국이 지명되자 검찰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청문회 당일 밤에는 후보자의 부인을 한 번도 불러 조사하지 않은 채 재판에 넘겼다. 9월 23일에는 현직 법무부 장관의 집을 11시간 동안 뒤졌다. 민주당은 압수수색한 곳이 70여 곳이라고 했다. 석 달 뒤 법원은 청문회 날 밤 서둘러 쓴 공소장을 고치겠다는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범도, 일시도, 장소도, 방법도, 목적도 처음 공소장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조국은 취임 35일 만에 물러났다.
법원은 정경심 교수와 조국 전 장관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그 판결은 판결대로 남는다. 그러나 이 글이 묻는 것은 칼을 쓴 방식이다. 같은 검찰이 대통령 부인 앞에서 어떻게 했는지 보면 된다. 2024년 7월 검찰은 김건희를 검찰청이 아닌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조사했고, 검찰총장은 조사가 끝나갈 무렵에야 보고를 받았다. 석 달 뒤 검찰은 4년 6개월을 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무혐의를 내렸다. 그런데 특검이 기소한 뒤 2026년 4월 항소심은 이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지금 대법원에 있다. 장관 후보자 가족에게는 수십 곳을 뒤진 칼이 주가조작 앞에서는 청사 밖으로 찾아갔다. 조국 전 장관은 202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됐다.

그 수사를 지휘한 검찰총장은 2021년 3월 사퇴하고 그해 6월 대선에 나서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5년 인터뷰에서 그를 총장에 앉힌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조국에게는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시대에 검찰은 숨기지 않았다. 국회가 법률로 줄여놓은 수사 범위를 시행령으로 되돌렸다. 야당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그를 겨눈 압수수색은 대검이 스스로 밝힌 것만 36회이고 야권은 376회라고 센다. 대선을 앞둔 2025년 4월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전 정부 안보 책임자들을 겨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1심과 2심 모두 무죄였다.

그 끝이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군을 국회로 보냈다. 2025년 3월 법원이 그의 구속을 취소하자 검찰은 다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접고 석방을 지휘했다. 그 결정을 내린 심우정 전 검찰총장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혐의를 부인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6년 2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청 폐지는 어느 정권의 변덕이 아니다. 권인숙, 박종철, 유우성, 노무현, 그리고 조국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쌓인 기록의 결론이다. 한국갤럽 2025년 3월 조사에서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6%,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4%였다. 같은 해 9월 검찰청 폐지에 찬성한 사람은 51%, 반대한 사람은 37%였다. 국민이 먼저 결론을 내렸고 법이 뒤따랐다.

내일부터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과 경찰이 맡는다. 새 칼이 옛 칼을 닮지 않게 하는 일은 이제 개혁을 밀어붙인 쪽의 숙제다. 그 숙제는 내일 시작하면 된다. 오늘은 검사가 수사하던 시대의 마지막 날이고, 이날을 보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축하해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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