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언은 실언이다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이런 말을 했다.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이어서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도에 1조 1000억을 잡아먹게 되고, 사업비만 5000억가량"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성명을 냈다. 전국 7만 소방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한 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경기도는 "국가직 전환에도 관련 재정을 지자체가 대부분 부담하는 현실을 강조하려던 취지"라고 해명했다.
먼저 분명히 해 두자. 이 말은 실언이다. 문장의 주어가 '소방'이다. 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빨대', '잡아먹는다'는 말을 쓰면, 듣는 쪽은 자기 월급이 낭비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기도가 해명한 취지가 사실이라 해도 그 취지는 문장 안에 없었다. 노조가 화를 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실언이라는 판정으로 이야기를 끝내면, 추 지사가 왜 소방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묻히고 만다. 추 지사가 국감장에서 설명하려 한 것은 소방관이 아니라 장부였다. 그 장부에는 2020년부터 풀리지 않은 문제가 적혀 있다.
소방관은 국가 공무원인데, 월급은 경기도가 준다
2020년 4월, 소방공무원은 지방공무원에서 국가공무원으로 바뀌었다. 세월호 이후 "소방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모였고, 대형 재난 때 지휘체계를 하나로 묶자는 명분도 있었다. 그런데 신분만 바뀌고 돈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소방관 봉급과 장비 값을 내는 쪽은 지금도 각 시·도다.
국가가 보태는 돈이 아예 없지는 않다. 담배 한 갑에 붙는 개별소비세의 45%를 '소방안전교부세'라는 이름으로 시·도에 내려보낸다. 국가직 전환 전에는 20%였으니 두 배 넘게 늘린 셈이다. 올해 전국에 내려간 소방안전교부세는 1조 503억 원이다. 2025년부터는 이 돈의 40% 이상을 소방에 쓰도록 법에 못 박기도 했다. 이 부분은 추 지사가 말하지 않은 대목이다.
문제는 이 돈이 전체 비용에 비해 너무 작다는 점이다. 추 지사가 지난 8월 공개한 경기도 수치를 보자. 경기도 소방관 약 1만 1000명의 인건비는 연 1조 1000억 원쯤인데, 이 가운데 국가가 보태는 돈은 800억 원 정도다. 장비·시설 등 사업비 약 4000억 원 중에서도 국가 몫은 300억 원이다. 나머지 1조 원이 넘는 돈은 해마다 경기도 금고에서 나간다.
추 지사가 9월 충북도지사를 만나 한 말이 이 불만의 핵심이다. "국가직화했으면 국가가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하고, 지방의 인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것도 아니고, 직무를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돈은 내는데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17개 시·도 전체의 문제다. 다만 경기도는 소방관이 가장 많으니 액수가 가장 크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소방인가
이 구조는 6년 전부터 있었다. 추 지사가 올해 유독 소방을 들고나온 것은 경기도 금고 사정 때문이다.
추 지사는 8월 5일 '경기도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들어오는 돈은 줄고 나가는 돈은 늘었다는 것이 요지다. 경기도 세입의 큰 기둥은 집을 사고팔 때 내는 취득세인데, 부동산 거래가 줄면서 이 수입이 줄었다. 반면 복지예산은 2018년 7조 원에서 올해 18조 8000억 원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출생아 열 명 중 세 명이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최근 5년간 경기도 65세 이상 인구는 60만 명이 늘었다. 여기에 전임 도정에서 쌓인 채무가 약 7조 5000억 원이고, 2028년부터는 원금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경기도가 정부 기준으로 재정위기 단체가 아닌데 왜 위기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맞는 지적이다. 경기도의 예산 대비 채무비율은 13.7%로, 행정안전부가 '주의'를 주는 기준 25%에 한참 못 미친다. 추 지사의 반론은 다른 데 있었다. 다른 시·도는 형편이 어려우면 중앙정부가 보통교부세로 부족분을 메워 주지만, 경기도는 교부세를 받지 않는 '불교부단체'라 기댈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년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올해 3조 5000억 원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이 처지에서 소방 인건비 1조 원은 어떤 돈인가. 줄일 수도, 미룰 수도, 깎을 수도 없는 돈이다. 경기도가 세입 구조를 바꿔 달라고 요구할 때 소방이 늘 첫 번째 예시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다만 인건비는 애초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가용재원이 줄었다는 말과 소방 인건비를 한 저울에 올리면 부담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그 말은 어쩌다 나왔나
경기도는 해법도 내놓은 상태였다. 담배소비세에 붙는 지방교육세 가운데 43.99%를 소방 목적의 지역자원시설세로 돌리자는 안이다. 올해 말 일몰될 세목을 소방 재원으로 바꿔 4년간 1조 5000억 원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고, 이 내용을 담은 법안이 10월 초 국회에 발의됐다.
국감에서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이 이 안을 문제 삼았다. 권 의원의 말은 이랬다. "소방 예산 중에 국비를 전체적으로 높여달라는 요구를 해야지, 이것을 세원을 조절하면 또 다른 충돌이 온다." 교육에 쓰던 세금을 소방으로 돌리면 이번엔 교육 쪽에서 반발이 나올 테니, 그런 우회로 말고 국가더러 돈을 더 내라고 정면으로 요구하라는 취지다.
추 지사는 이 지적에 동의하면서 답을 시작했다. "위원님 말씀처럼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이어서 2027년 인건비 1조 1000억 원과 사업비 5000억 원을 들었고, 국비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당장 모자란 돈 때문에 담배 관련 지방세를 쓰는 방안도 단기 대책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빨대'는 권 의원의 "국비 비중을 넓혀야 한다"는 말을 받아 "맞다, 이게 제일 큰 구멍이다"라고 맞장구친 대목에서 나왔다. 머릿속에는 경기도 금고에서 매년 1조 원씩 빠져나가는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온 문장에서는 그 돈이 빠져나가는 '곳'이 아니라 그 돈을 받는 '사람'이 주어가 됐다. 겨냥한 것은 중앙정부의 분담 구조였지만 맞은 것은 소방관이었다.
실언이 가린 것
노조 성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불완전한 현실이 문제라면 국비 지원 비중을 높여 달라고 정부에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도지사의 책무"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추 지사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같은 곳을 가리킨다. 소방관도, 경기도도, 국가직 전환 이후 비용을 누가 내야 하는지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본다. 한 문장의 주어 선택이 같은 편을 적으로 만든 셈이다.
추 지사의 숫자에도 과장은 있다. 국가가 담배세에서 소방으로 보내는 몫을 두 배 넘게 올린 것은 사실이고, 2025년부터 그 배분 비율을 법으로 고정한 것도 사실이다. "국가가 전혀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은 그래서 틀렸다. 또 소방 인건비 부담은 전국 시·도가 함께 지고 있는데, 경기도만 겪는 일처럼 들리게 한 것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질문 자체는 남는다. 2020년에 소방관을 국가 공무원으로 만들면서, 그 월급을 누가 낼지는 왜 6년째 정하지 않았는가. 담배 판매량에 따라 오르내리는 세금 하나에 소방 재정을 걸어 둔 채로 괜찮은가. 추 지사는 소방관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 뒤에 이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한다. 그때는 주어를 제대로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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