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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아동학대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수도몬
댓글: 39 개
조회: 10058
2014-12-28 21:19:49

 

 

분홍 꽃봉오리 피더니

연한 푸른 빛 제비꽃이 되네

부드러운 산들 바람에

계곡의 백합 풀 위에 눕고

짙푸른 하늘에서 종달새 노래하며

 

-아침-

 

 

지은이는 드래그 >>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

 

 

 

 

 

 

 

 

 

 

 

 

 

 

 

 

 

 

 

 

 

 

 

 

 

 

 

 

 

 

 

 

 

 

 

 

 

 

스탈린은 1879년 12월 18일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이던 조지아(그루지야)고리에서 구두 제화공과 신기료 장사를 하던 아버지 베사리온 주가슈빌리(조지아어: ბესარიონ ჯუღაშვილი)와 재봉사이던 어머니 에카테리네 겔라제(조지아어: ეკატერინე გელაძ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콜중독자에 술주정꾼인 아버지 베사리온은 어린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 폭행하였다.

 

아버지 베사리온는 불같은 성격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였다. 베사리온은 구두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알콜중독에 걸려 계속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머니 에카테리네는 아버지 베사리온에게 수시로 폭행당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분개한 스탈린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칼을 던졌다고 딸 스베틀라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기억력이 좋고 영민했던 그는 독서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체력이 강했다 하나 약체에 발육부진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엄청난 의지력을 가졌던 그는 일찍부터 본심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법을 터득했다. 또한 피의 복수를 하는 캅카스인의 전통대로 자기를 모욕한 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복수를 꾀하는 데 있어 아무에게도 꺾이지 않을 집념을 키워 나갔다.

 

아버지를 경멸하고 증오했던 그는 주변의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했다. 오직 독서만이 그의 외로움을 달래는 길이었는데, 독실한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신앙심 깊고 영리한 스탈린은 어머니의 기대와 바람대로 10살(1889) 때 교회 소학교에 입학했다.

 

일찍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였다. 1888년(9살) 그는 교회 소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구두공장에 취직한 아버지가 어린 스탈린을 강제로 구두공장에 취직시켜 돈을 벌게 하였다. 어머니는 지역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여 구두 공장에 찾아가 아들을 되찾아왔다. 어머니의 기대와 노력 덕에 스탈린은 성직자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1894년 15살에 그는 장학금을 받고 조지아트빌리시에 소재한 트빌리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트빌리시 신학교조지아(그루지야) 정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였다. 트빌리시 신학교에서 스탈린은 성직자 교과목 외에 문학역사, 라틴어, 수학, 그리스어 등 폭넓은 교육을 받았고, 성적은 우수하였다. 트빌리시 신학교 1학년 재학 중 스탈린은 지역 신문에 시를 발표했는데, 그루지아 문인들과 지역 유지들을 감동시켜 격찬을 받았다. 그가 시에서 다룬 주제는 대지와 자연, 민족정신 등이었다.

 

 

 

 

 

 

스탈린이 최악의 독재자 중 하나가 된 이유가 무조건 아동폭력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노조절장애와 복수욕이 어린 시절 형성 되었다고 학자들은 예상하였다.

 

지금 맞고 있는 아이 중에 제2의 박정희, 전두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는 답이 아님

 

 

 

 

 

 

 

6.25 전쟁 전 남침에 반대하던 스탈린이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 할 능력이 절대 안 된다며 만약에 적화통일하면 어머니의 직업을 바꾸겠다며 멋쩍게 엄O을 찍고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Lv41 수도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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