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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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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히나 이야기 +6

아이콘 구미
댓글: 4 개
조회: 1762
추천: 3
2016-09-24 20: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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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다음날, 그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학생 모두들 그 비어있음을 확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역사 수업이 한창이었던 케이네도 이정도면 지겨워서 몸을 긁거나 잠에 들어 고개를 꾸벅이고 있을 그녀가 없으니 수업에 집중하기 편하면서도 학생들의 분위기를 보면 불편했다. 새삼 그녀가 교실에 차지하는 활력이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었다.


 히나도 역시 그랬다. 아침 조례 전 곰과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꿈을 실감나게 이야기하고, 쉬는 시간마다 돌머리 선생님은 좋아하지만 수업은 싫어한다고 투덜대고, 뒤에 있을 점심시간에 같이 나무 등걸 아래에 앉아 밥을 먹을 그녀가 안 보였다. 아무리 역사 수업이 싫어도 노는 건 좋아해서 서당은 나왔던 그녀였다. 불안해서 가슴에 손을 꼭 쥐었다.


 어른인 자기도 활력이 없어진 것 같아 케이네는 평소보다 빨리 수업을 마쳤다. 괜시리 몸이 굳은 것 같아 기지개를 크게 편 후 몇 마디 하려고 했던 말을 침과 함께 삼키며 두런두런 점심 도시락을 꺼내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래도 서당에서 즐거운 시간 중 하나라 그런지 조금이나마 활기가 살아나는 걸 보고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떠났다. 집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수업 끝났나보네.”


 문을 여는 하늘색 머리가 보이자 손님 중 한 명이 말했다. 케이네는 이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저번 주, 뜬금없이 자기 집을 오고가던 여유 넘치는 사신의 목소리였다. 편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저씨 같은 그녀가 오고 가면 늘 툭 던지는 한 마디가 머리에 남아서 답답한 기분이 들었었다.

   “오셨군요. 카미시라사와 씨.”


 몇 걸음 더 걸어가자 지장보살처럼 올곧은 자세로 앉아있던 손님 한 명이 고개를 돌리고 깍듯하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직책도 그녀가 말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환상향의 삶과 죽음의 순리’ 중 끝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보니 그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강했다. 생각이 닮아 몇 번은 서신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잘못하면 그 무거운 사명감이 그녀의 왜소한 몸을 짓누를 것 같아서 불안했다.

   “오오! 케이네! 어서와~.”

   “음? 아큐? 너는 왜...”



 마지막 손님은 같이 역사를 다루는 히에다 가의 당주였다. 당주라고 하면 근엄하게 가문을 유지하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녀를 호기심 넘치는 보랏빛 눈망울과 들뛰는 행동들을 보면 평범한 아이와 같았다. ‘아히히~’ 하고 웃는 웃음이 기억에 꼭 남는 귀여운 손님이었다.

   “아히히. 나도 이 분들이 뭔가 모르게 익숙하기도 하고. 케이네도 보고 싶어서 왔지.”


 심심한듯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세 명을 번갈아보던 아큐는 빙긋 웃었다. 책상에 팔을 괴고 있던 시키는 형식적으로 웃은 후 이내 숨길 수 없는 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습관적으로 쥐려고 했던 회오의 봉을 관두고 그녀가 말했다.

   “바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카미시라사와 씨?”

   “저도 시키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 서로 물어보도록 하죠.”


 코마치는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자 저 멀리 떨어져서 벽에 등을 기댔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자기 성격을 닮아 끝이 꼬불꼬불해진 낫을 들고 왔었다. 평소와 다르게 눈빛도 맑아 보여 오늘 교실의 분위기만큼 진지하게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시키는 그렇게 움직이는 코마치에게 아무 타격 없는 눈총을 쏜 후 그녀를 보며 말했다.

   “오늘, 사토 유우다치는 출석을 하지 못 했을 거에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일단 주기적으로 학생들의 상태를 알려주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아마 유우다치가 결석한 원인은 소풍 날 제대로 털지 않은 요정가루에 의한 요정 감기라고 생각중입니다. 가끔 요정과 놀고 난 후에는 꼭 손을 씻고 옷을 털으라는 지도를 안 듣는 아이들이 다음 날 결석을 하는 이유가 대개 그거라서요.”


 코마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큐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둘을 번갈아보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시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다만, 지금 일어나는 일이 우리가 생각하기엔 순리를 비틀어버릴 만큼 비합리적인 일이라서 문제이구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시는 걸 보면, 이전에 서신으로 말씀하신 ‘서당 아이들의 역사를 잠시 없애달라’는 부탁과 가장 처음에 코마치를 통해 대신 전달하신 ‘액’이란 것과 관련이 있나 보군요. 제가 하고 싶었던 질문은 전자에 대한 궁금증이에요.”


 아큐는 이내 진지해지는 대화는 귀로만 듣고 코마치의 표정을 보았다. 벽에 기대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어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자세로 있었지만 표정은 그녀들의 대화에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순리’라는 말에 질린다는 듯 찌푸리다가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전해졌다는 걸 알자 깜짝 놀라 고개를 그녀들을 향해 돌렸다. 마치 마당극의 감초 같은 조연 같아 아큐는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시키가 말했다. 어느새 회오의 봉을 입에 갖다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후우... 우선 뒷 질문에 대답하자면, ‘그렇다’입니다. 어제 우연히 사토 유우다치를 만났을 때, 면식이 있는 코마치에게 자기가 ‘텅 비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추측컨대, 기생충처럼 자신의 생령 속에 자기 것이 아닌 액이 끼어들면서 생령을 휘저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인간의 살아옴을 비춰주는 정파리의 거울과 생령의 안에서 공과 액이 혼탁하게 섞여있는 것을 보고 합리적으로 생령에게 마지막 재판을 내리던 자신이 추측을 하고 있다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서 자신은 추측이란 걸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은 뒤로 미뤄두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서당 아이들의 역사를 잠시 없애달라고 부탁한건 아직 생령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영적인 것들에 약한 아이들을 숨겨두고, 문제를 해결하려고요.”


 케이네는 편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코마치는 영 불편하게 그걸 듣더니 일어서서 시키의 옆 자리에 앉아 말했다. 손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김 전병이 들려 있었다.

   “시키 님, 당신도 알겠지만 역사를 없앤다고 인간 사람들의 지금 저렇게 술 마시고, 물건을 사고팔고,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알 텐데. 아이들 개개인의 삶은 명분이고, 더 포괄적인 걸 보면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


 그리고는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달콤한 전병의 맛을 김의 쌉쌀한 맛이 잡아주면서 균형있는 독특한 맛을 풍겼다. 한 입만 더 먹으면 괜찮겠다는 중독성이 살살 올라오는 맛이었다. 시키는 본심이 들켰는지 뜨끔했고 그 반응을 본 코마치는 말을 이어갔다.

   “시키 님 자리가 중요한 자리이고 머리 위에 있는 그 이치가 무거운 건 잘 알아. 그러니 키도 안 자란 거겠지. 설교도 그래서 하는 거겠고. 하지만, 그 무거운 걸 남에게 짊어지게 하면서 자기의 부족한 판단을 합리화 시킬려고 하는거면, 실망스러워.”

   “저는 이 방법이 가장 옳은 것으로 제가 판단하고 말하는 겁니다.” 
 

 아큐는 그녀를 보았다. 저 무거운 걸 짊어진 신념이란 건 케이네와 자기가 다루는 역사의 무게랑 닮아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져 말을 삼가고 케이네의 옆에 붙었다. 조건반사적으로 케이네는 그녀의 말랑말랑한 뺨을 어루만졌다.

   “난 말이지. 누구든 죽기 전이면 한 권 소설책의 분량 정도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 그걸 듣는게 내 낙이고. 시키 님의 입장이 이해가 가고 어느정도 동의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해쳐버릴 것 같아서 영 동기부여가 안 되네.”


 시키는 침묵했다. 자기가 그 거대한 판결에 부담감을 느끼고 점점 그걸 ‘환상향의 순리’라는 거대한 무언가에 전가시켜 간편하게 부담감을 해소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세울만한게 합리적이어야 할 자신과는 정반대인 비합리적인 추측과 그것 뿐이어서 불편한 침묵을 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도 쉽게 설명이 불가능하단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코마치도 그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고 마루에 돌아앉았다. 

  길고 긴 정적이 한시라도 바삐 문제를 해결해야할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때,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케이네의 가슴을 배게 삼고 있던 아큐는 화제를 돌렸다. 
 
 “다른 이야기지만, 케이네는 무슨 이유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거야?”

 케이네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요 며칠 사이 늘 생각해온 것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으음.. 처음에 서당을 지을 때는 솔직히 이 세계를 모르고 팔자 좋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떤걸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모르겠어. 그 큰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다보니 아이들도 지치고.”


 그 이야기를 듣던 코마치가 씹던 과자를 삼키고 말했다. 덜 씹어서 거친 식감이 식도를 통해 전해져 따가웠지만 대화의 시간을 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설화나 일화담, 전기 같이 이야기가 있는 걸로 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케이네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큐는 시키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번 보면 이 대화에 참여하고 말을 하게하는 초롱초롱한 보랏빛 눈빛을 쏘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아랫입술을 깨물고 회오의 봉을 힘껏 쥐어 불편하게 침묵을 지키던 시키는 그 표정을 보고 긴장이 풀리더니 잠시 생각을 하고 말했다.

   “..푸흡, 역시 서기관 님 성격은 어디 안 가시는군요. 저였다면 올바르게 덕을 쌓고 예를 익히는 역사를 가르쳤을 것 같습니다. 윤회의 고리라는 건 전생의 기억이 잊혀져서 잘 모르겠지만 고통스러우니까요.”

   “나는 사람들이 요괴에 대해 알고, 대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역사는 아니지만 글을 적고 있어. 히에다 가의 8대 당주인 아야도 그렇게 적으셨더라구.”


 이상하게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이전의 이야기와 겹쳐들리면서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침묵을 고수하던 시키는 자연스럽게 ‘유치하게 설화가 뭐냐. 한치동자냐.’ 하면서 가볍게 코마치를 타박했고 코마치는 표정이 다 풀리진 않았지만 역시나 능청스럽게 맞받아치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큐는 말똥말똥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케이네 역시도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고마워.”

   “이유는 모르겠지만, 케이네가 고맙다면 잘 된거지? 아히히.”


 코마치는 잡담들 사이에서 일어서더니 낫을 손에 들고 어깨에 기대게 한 채 말했다.

   “뭐..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할게. 가끔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살아와서 삼도천의 거리를 좁히게 하는 놈들도 있었으니까. 나는 유우다치의 집에 가 볼거야. 시키 님의 말과 케이네의 행동에 동의 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는 성큼성큼 큰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십 리를 한 걸음에 걷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 속을 채우고 있는 건 후회였다. 술기운에 시키 님에게 줄곧 설교를 듣다보니 자기도 배워버려 길을 걷는 동안 유우다치에게 말을 건넸다. 실수였다. 그거 말고도 유우다치는 참 인간다웠고 활기차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나보다. 정이 붙어버려 쉽게 떼어낼 수 없는 마음은 후회로 돌아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히나 역시 그녀의 맞은 편에 서 있던 그녀의 빈 자리가 마치 자기 마음 속 어딘가가 비어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조금 더 나쁜 생각을 했다가는 다시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들려올 것 같아 최대한 참았다. 마치고 나서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유우다치가 어제 골라준 인형을 보았다. 색을 덜 칠했다고 주인은 말하지만 까맣고 윤기나는 머릿결에 새하얀 복장을 보니 유우다치가 히나 같다고 해서 고른 히나인형이었다. 아이들이 자기를 보고 유우다치를 더 떠올리는 것 같아 히나인형을 안고 이어지는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하교 시간, 케이네도 그녀가 유우다치를 얼마나 걱정하는지는 사이만 봐도 알 수 있어서 급하게 가방을 싸고 뛰어가는 히나를 봐줬다. 그녀는 자기가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발로 뛰고 주변 사람들의 사이를 피해가며 점점 요괴가 오기 시작하는 인간 마을을 달렸다. 저 멀리에 익숙한 바구니 탑이 보였다. 


 바구니 탑이 쌓인 집을 보자 무리하게 뛰었던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 한 히나였다. 정신이 돌아오니 다리에 전기가 짜르르하고 올라오고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의식한다라는 건 무서웠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근처 우물 바가지를 끌어올려 물을 마신 후 그녀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바구니가 쌓여있고 각종 짚으로 만든 소도구가 매달린 집 앞에 예전에 본 듯한 풍채 좋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히나가 오는 걸 곁눈질로 보더니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잠겼어.”

   “네?”

   “안에서 애기 울음 소리가 들리다 그쳤던 걸 보면 분명 안에 있는데, 열리지가 않아.”


 히나는 바로 자기를 알아보는 그녀가 신기했다. 일단은 웃어른에게 인사하라는 케이네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서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깍듯하게 인사했다. 코마치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냐. 아냐. 인사 안해도 돼. 어짜피 둘 다 같은 목적이고.”

   “유우다치는, 많이 아픈가요?”


 코마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품고 천천히 뒷문으로 가 보았다. 아까는 잠겨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잘못하면 다시 나쁜 생각을 하고 소리들이 들릴 것 같았다. 습관처럼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유우다치네 뒤에는 작지만 윤기있는 초록 벼들이 자라는 논과 산길을 죽 올려다보면 한 가족이 먹을 정도의 채소가 나올만한 텃밭이 있었다. 그리고 뒷문은 코마치가 들렀던 때와 달리 살짝 열려있었다. 둘은 긴장하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유우다치가 있었다. 겉으로 봐도 어제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정상적인 거동이 불가능한지 온 몸에 찰과상이 있고 뺨은 말라있었다. 액이 그녀를 갉아먹어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밖의 의자에 기대어있던 그녀가 말라있던 입을 열었다.

   “아빠. 자고있어요. 코마치 언니, 히나.”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히나는 급하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풍날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꼭 잡으니 손을 돌고있는 맥박의 감촉이 느껴졌다. 불안하고 무서워서 히나는 말했다.

   “다찌.. 아파?”

   “응. 아파. 그래도, 약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꾹 참았다. 코마치는 낫을 벽에 기대어 놓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직도 속이 텅 빈 것 같니?”

   “네. 마치 몸 안에 하늘이 있는 것 같아요.”


 히나는 입술을 꼭 깨무면서 케이네 선생님이 가져다 달라고 한 자료를 집어들었다. 피곤한 것도 아닌데 부들거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를 구기고 있었다. 억지로 억지로 그걸 유우다치의 무릎에 올려주려는 그때, 무언가가 종이 사이에서 떨어졌다.  프릴이 달린 새빨간 리본이었다. 아마도 소풍 날 넣어둔 리본이 풀렸었는가 그녀는 생각했다. 유우다치도 그걸 확인했는지 몸을 숙여 끈을 집어들었다. 천천히 그걸 바라보더니 그녀는 말했다. 

   “히나나, 그때처럼 머리를 앞으로 모아봐.”


 히나는 말하는 대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앞으로 모았다. 목덜미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진 머리카락의 끝을 앞으로 모으던 그녀는 그때처럼 리본을 묶어주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느렸고 움직이기 버거웠는지 사이사이 멈추고 있었다. 그리고 기침을 할 때 마다 그 과정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히나는 고개를 숙이고 끅끅 울고 있었고, 코마치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마음을 두면 자기도 죽은 사람을 업으로 삼는 것에 회의를 느낄 것 같았다.

   “어라? 어라.. 잘 안묶이네.”


 그러기를 대여섯 번, 히나가 소리내어 울기 직전에 리본은 마무리로 천끼리 묶이는 말끔한 소리를 내면서 히나의 머리를 묶어주었다. 독특한 머리였다.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던 히나가 말했다.

   “꼭, 약 잘 먹고 나아야 해? 다찌는, 다찌는 거짓말 안 할 거지?”

   “안 해...”


 그렇게 둘은 꼭 나아서 만나자는 말과 알겠다는 말을 몇 번씩 번갈아가며 하다가 헤어졌다. 히나는 눈물 콧물을 옷섶으로 닦아내며 반대쪽 손에 유우다치가 자기 같다고 말한 새하얀 인형을 쥐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뒷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나서 기침을 한 번 연달아 한 후 그녀는 말했다.

   “코마치 언니.”

   “...왜?”

   “언니가..  저를.. 데리러 올 건가요?”


 절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나니 유우다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기 싫었다. 차라리 사람의 수명이 보여서 매번 인간 마을에 올 때 마다 피안화 꽃물로 멀게 만들었던 자신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숨을 돌리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말했다.

   “아니..” 

   “그런가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언니.”


 문이 다시 닫혔다. 그리고 지금쯤 치안 관리를 하고 있을 사신, 아이카에게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을 사용해 냅다 달려갔다. 거리를 늘리던 좁히던 자기가 걸어야하는 거리는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뛰어가고 싶었다. 기억이 물과 같은 내용물이라면 달려가면서 길바닥에 뿌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붓이 역사서 한 줄에 그어졌다.

   “... 이걸로 모든 서당 아이들의 역사는 잠시 없애두었어요. 백택이 되는 보름달이 뜨는 날 까진 이틀이 남았으니까요.”


 시키는 서재 옆에서 산처럼 쌓인 역사서의 가죽으로 된 겉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술병을 흔들었다. 아큐는 잠이 많은지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 누워 코 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카미시라사와 씨. 남은 건.. 저희의 일일 것 같네요.”

   “그. 술병은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인간이 보기에는 평범한 흙탕물이겠지만, 삼도천의 물입니다. 생령들이 피안에서 알게 모르게 마시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미련을 씻고 마지막에 배에서 순수한 한 잔을 마셔 영혼을 재판받기 쉽게..  순수하게 만들죠.”

   “그렇다는건...”

   “액을 그렇게 모은 것이 자기 형태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죠.. 만난다면 이치에 어긋나더라도. 이 물과 저 낫으로 영멸할 생각입니다... 삶과 죽음의 순리를 위해서요.”


 그 말을 듣고 케이네는 유우다치를 만나기 전에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공포와 닮아있었다. 달아나듯이 서재의 문을 닫고 내려간 케이네를 보며 시키는 미안하다고 혼잣말을 했다. 





*


 그 날 저녁, 히나는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검붉은 무언가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익숙하지만 다시 만나기는 싫은 느낌이었다. 배경도 밤하늘인듯 아니듯 새카맣게 굳어있어서 그녀와 그 것 뿐이었다. 붉은 기운이 호흡에 따라 도는 모양에서 인간의 형태인 걸 추측 가능했다. 꿀렁이는 소리가 났다. 조심스럽게 그것에 다가가 보았다.

   “...”


 작지만 음성이 들렸다 입이 아니라 온 몸이 입인 것처럼 소리의 방향을 가늠잡을 수 없었다. 자기가 걸어가는 방향과 붉은 기운이 움직이면서 형태를 보이는 저것을 제외하면 상하좌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꿈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다가 가보았다.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었다. 하지만 잡음이 낀 듯 목소리가 갈라져서 들렸다. 무서웠지만 꿈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더 다가갔다.

 “미안.. 무서워.. 엄마..”


 목소리는 확실히 두 개였다. 하나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유우다치였다. 유우다치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점점 자기들끼리 겹치고 높아지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엄마를 찾는 말이 겹치는 괴성처럼 들렸다. 인간의 형태는 사라지고 소리만이 남아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가슴을 누군가 짓밟고 있는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고통스러웠다. 숨쉬기 힘들었다.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고통을 주면 꿈에서 깰 것 같아서 자기가 서 있던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보았지만 꿈 속 유체의 공간에서 그 타격은 마치 파묻히듯 잠겨들었고 소리가 점점 커졌다. 숨이 막혔다.



   “허억!”

숨을 몰아쉬며 히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숨을 고르다보니 다시 꿈의 답답함과 무서움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손으로 양 눈을 비벼서 참았다. 여파인지 유우다치의 소리가 마음 속에서도 계속 울리고 있었다. 시간은 아직 해가 기지개를 펴지 않아 연보랏빛 하늘이 밝게 빛나는 새벽이었다. 흘린 땀을 닦았다.


 새벽 공기는 여름과는 달리 차가웠다. 옆 방에서 코를 고는 아빠의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고 밖에서는 달구지가 달달거리며 농기구를 들고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하루가 시작되지만 아빠는 그것보다 더 늦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언제까지 술을 먹었는지 모를 먹깨비 요괴가 거대한 아가리로 술 냄새를 풍기며 안주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히나는 꿈 자리도 뒤숭숭한 겸 옷을 입고 조금 일찍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어디 두어도 눈에 띄일 것 같은 붉은 색의 드레스를 엉거주춤 어색하게 입고 걸어나가 보았다.


 옷은 드레스에 신발은 게다인 급하게 입은 복장으로 따각따각거리며 나온 새벽 길은 몇몇 부지런한 농부들을 빼면 귀뚜라미도 아직까지 소리를 내는 게 정말 조용했다. 밤에 켜두었던 등불 아래에 촛농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연보랏빛 하늘은 햇볕이 떠오르자 탁한 하늘빛으로 변했다. 유우다치의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마을의 중심지가 보였다. 몇몇 상인들은 자기 가게 앞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빗질로 쓱싹쓱싹 치우거나 한 밤의 흙먼지들을 탈탈 털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형 가게 털보 아저씨는 아직 나와있지 않았다.


 마을 중심을 벗어나자 어제 마셨던 우물이 보였다. 개구리 소리도 들리는게 설마 자기가 개구리가 목욕한 물을 마시는게 아닌가 의심을 해보았다. 짧은 간격으로 이어져있는 등불은 어떤 것은 꺼져있고 다른 건 꺼져있지 않아 불규칙적이었다. 가까이에 유우다치네 가게가 있었다.


 주술사가 있었다. 동네 어르신이 있었다. 처음 보는 검은 보자기를 쓴 붉은 머리의 서슬퍼런 낫을 든 사신이 있었다. 옆에는 이전에 본 초록 머리 언니가 있었고, 코마치라고 하던 빨간 머리의 언니는 두 귀를 막고 있었다. 케이네 선생님이 있었다. 유우다치의 아버지가 문을 부여잡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새하얀 천에 덮인 무언가가 청년들에 의해 들려왔다. 

 



 길을 돌아왔다.


 등불이 꺼지고 있었다. 우물이 있었다.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털보 아저씨는 인형에 기름칠을 하고 있었다. 바닥을 쓸어둔 아저씨들은 가판을 다시 꺼내놓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농부들은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달구지 소리는 너무 멀었는지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먹깨비의 아가리는 아직 열려있었다. 엄마의 그릇 닦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에 누워봤지만, 깬 꿈을 다시 꿀 수는 없었다.


가방을 메고, 마을은 평소대로 였으니, 
일상처럼 서당에 갔다.



 케이네 선생님은 수업 시작에 늦었다. 유우다치는 여전히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늦어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미없는 역사 수업 시간이 줄어든다고 좋아했다. 도착한 케이네 선생님의 눈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10분을 누가 더 잘 노는가 경쟁하듯이 소리지르며 놀고 있었다. 유우다치는 교실에 없었다. 아픈 아이를 위로하는 것과 지금을 즐기는 건 다를 것이다. 화장실로 가 오늘 하지 못한 세수를 간단히 했다.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은 새까만 눈에 초점이 없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케이네 선생님이 급한 약속이라는 짧은 안내를 전한 후 자습으로 수업을 바꾸고 갔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자습은 노는 것과 같았다. 10분을 가치있게 놀던 아이들이 추가 시간을 얻고 나니 노는 것의 탄력이 느슨해졌다. 의미없이 역사책 페이지를 넘겼다. 


 점심 시간이다. 이전 시간을 쉬다 보니 밥도 즐겁게 먹지 못하고 있었다. 눈치 좋은 아이들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찾아다니기에 환상향은 드넓고 위험했기에 생각에 그쳤다. 도시락을 들고 뒷산의 꽃줄기 매듭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에 유우다치는 없었다. 요정에게 도시락의 대부분을 주었다. 옷을 털고 내려오며 꽃줄기 매듭을 보았다. 벌써 영양분이 없어 말라가는 매듭이 있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진행되었고. 쉬었고. 진행되었다. 유우다치는 없었다. 


 수업의 마무리 시간이었다. 기운이 남아도는 아이들이 이미 가방을 메고 다리를 한 쪽 밖으로 꺼내놓은 걸 케이네는 보았다. 눈이 떨리고 있었다. 짧게 헛기침을 한 후 케이네는 말했다.


 “아쉬운 소식이지만, 유우다치는 급하게...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친구들과 인사도.. 인사도 못한 체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 전해달래요.. 수업 마칠게요.”

 
 거짓말이었다.

 그건 유우다치다.

 하지만 마음은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하고 있었다. 

 하굣길이었다.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다 요정에게 맞기도 했고, 케이네 선생님의 박치기에 개울에 넘어져 펑펑 울었던 곳에 유우다치가 없는 것도 유우다치가 전학을 가서였다. 같이 점심을 먹던 나무 등걸에 유우다치가 없는 것도 전학을 가서였다. 집 앞에 있는 강둑에 물풀의 요정만이 심심해서 자기 물풀을 퉁기며 물결을 만드는 것도. 중심부 마을 사람들이 뭔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낀 것도. 모두.


 집에 돌아왔다. 유우다치가 없었지만, 마을은 그대로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해는 지고 있었고 노을진 주홍빛 하늘은 마치 새벽에 본 하늘같은 연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혹시 까먹은 숙제나 알림장이 있는지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쏟아냈다. 와르르 소리가나고 붓이나 종이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소리에 대한 큰 감흥이 없었다. 대충 뒤져서 종이의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머리에 묶던 리본이 다시 풀려서 하나의 끈으로 종이 사이에 끼어있었다. 


 그걸 보니 유우다치가 떠올랐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 끈을 든 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손님들을 받기 시작한 엄마와 술과 시간을 싸우는 아빠는 그녀가 나가는 걸 몰랐다. 히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스스로 묶는 방법을 다찌에게서 배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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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 편집은 한계가 있네요.
 집에 도착해서 편집하거나 내일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일찍 쉬기위해 한시간 빨리 올렸습니다.

 
 

Lv79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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