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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작 라노벨] 겨울나기 - 2

나나나나난알
댓글: 1 개
조회: 3737
추천: 3
2017-03-27 14:01:15

(공의 경계 료우기 시키. 제 최애캐입니다. 빨간 기모노가 취향 ㅎ-ㅎ)


전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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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을 사냥하는 사냥감.


눈이 갠 건 정확히 5일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개머리판을 나이프로 긁어 새겨놓은 작대기가 4개 묶음 하고도 하나가 더 있었으니 대략 그 정도 시간이 지나간 것이리라.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버릇처럼 기록해 두었으니 거의 확실하다.
이 정보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시스템이 태진이 알던 기존의 것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가 일전에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 세계는 매 주기가 지나갈수록 눈보라가 내리는 날이 점차 길어졌다. 이는 다른 게임으로 치자면 서든데스 같은 것으로, 종국에는 눈보라가 영원히 그치지 않아 모두가 눈에 파묻혀 죽는 엔딩을 맞이한다.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유리한 위치에서 간만 보았다가는 게임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보는 입장에서나, 하는 입장에서나 재미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플레이어들은 더 많이 싸우고 부딪쳐야만 했다. 대기보다는 매복을, 매복보다는 음모를, 음모보다는 협잡을. 그게 바로 이 게임의 룰이자 궁극적인 컨텐츠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에선 그러한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 태진은 이번에 눈보라가 그친 날짜를 보고서 깨달을 수 있었다. 벌써 3번째 눈보라의 주기가 동일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서든데스 룰이 아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결국 이 ‘생존’ 서바이벌은 장기전으로 돌입할 확률이 높다. 자길 위험에 빠트려서라도 소울을 모으려 하는 이들은 훨씬도 전에 탈락하고,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이들만이 남아 최후의 농성을 벌이리라. 예상하건데 초반부가 가장 짧고 중반부는 거의 존재하지 않다시피 하며, 후반부가 가장 길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게 현실화되어 나타날 경우, 가장 먼저 발생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은 단연 자원의 고갈이다. 이 게임은 돌이나 나뭇가지 등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가 되는 것들이 필드에 다시 생성되지 않는다. 요컨대 자원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게임이 길어질수록 자원을 얻지 못한 이들이 스스로 유리한 고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이들이 끝내 선택할 수 있는 건 맵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그나마 남은 자원들을 쓸어 모으거나, 다소 불리하더라도 이판사판으로 싸움을 거는 것밖에 없다.
즉 최후반부, 게임의 거의 막바지가 되어서도 살아남으려면 필연적으로 자원을 충분히 모아두어야만 한다. 자원이 부족하지 않은 자는 구태여 불리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고, 끝까지 원하는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태진은 2번째로 주기가 겹쳤을 때부터 이러한 조짐을 느껴왔다. 따라서 그는 보다 광범위하게 맵을 휘젓고 다니며 자원을 수집했고, 자신의 은밀한 장소에 모아 두었다.
바로 그의 피난처였다.

“피난처로 가는 길은 두 개야. 숲을 거쳐서 가든가, 아니면 우회해서 가든가. 사실 후자가 훨씬 안전하고 편한 길이 될 거야. 그렇지만 그만큼 시간이 더 걸려. 어쩌면 다시 눈보라가 치기 전까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어.”
태진은 지도를 꺼내 피난처와 둘이 현재 있는 곳 사이에 위치한 숲을 가리켰다. 지도상으로 봤을 땐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매우 작았으나, 이는 설산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진입하면 하루를 꼬박 걸어야 빠져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숲은 넓었다. 그리고 또 위험했다. 사실 후자가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숲을 통해서 가려고 해. 넌 어때?”
“네 마음대로 하든가.”
“그럼 그렇게 하자. 미리 말하지만, 숲에 들어간 뒤에는 절대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어디에 플레이어가 매복해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내 옆에 있으면 안전할 거야.”
“자신감 넘치네.”
“이미 몇 번 들어갔다 나왔으니까.”
“그런데도 아무 일 없었으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거 아냐?”
예린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태진은 도로 지도 창을 닫고서 덧붙였다.
“아무 일이 없지는 않았어.”
둘은 본격적으로 숲에 진입했다.
매뉴얼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이전에는 이런 숲 하나하나에도 고유 명칭이 붙어 있었다. 태진의 기억 상으론 아마 이 숲은 철암목鐵巖木이었을 것이다.
지역의 이름은 유용한 단서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그 예로서 이 숲 깊숙한 곳에는 채집 가능한 철광석들이 많았다. 또한 파괴 가능한 바위 오브젝트들도 널려 있어서 돌멩이 수급에도 효율적이었다. 또한 숲인 만큼 나뭇가지도 얻기 쉬웠다. 이름 그대로 철과 바위, 나무의 터전인 셈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태진이 이곳을 여러 번 들린 이유도 이곳이 북쪽에서는 자원이 가장 풍부한 편에 속해서였다. 바뀐 건 오로지 지명이 사라진 점 하나 뿐이었다.
왜 없앴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추측을 하자면 아마 형평성의 문제가 있겠다. 지역의 이름을 통해 자원을 유추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ㅡ게임의 특성 상 이런 꼼수가 퍼져 나가는 건 일순간이니 말이다.ㅡ당연히 자원이 다양하고 풍부한 곳에 플레이어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원이 적은 필드는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도태된다. 아마 그 때문에 필드의 디자이너들은 아예 단서 자체를 없애 플레이어들이 모든 필드를 고루고루 돌아다니도록 유도한 것이리라.
또 다른 이유로는 지명의 유연성이다. 정해진 이름이 없다면 결국 누군가는 자기 입맛에 맞는 고유 명칭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쓰기에 따라 팀을 짰을 때 암호로 사용하거나 몰래 엿듣는 자가 있더라도 알 수 없게끔 할 수 있다. 조금 더 전략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길을 열어 주게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사실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에는 틀을 깨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 다만 자유롭게 살라고 강요받아서 자유롭게 사는 거라면,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변칙적인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숲은 입구가 좁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였다.
당연하게도 설산에 위치해 있는 만큼 꽃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나무들이 빼곡하고 하나하나가 전부 아득할 정도로 솟아올라 있어 시야는 푸른 숲 못지않게 어지럽고 가려져 있는 편이다.
숲의 풍경은 꽤 볼만했다. 눈이 그치고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 나무의 가지마다 눈꽃이 만개해 있었던 것이다. 갈색의 가지들이 수없이 솟아나 있음에도 숲의 지붕은 맑게 갠 하늘 이상으로 순백이었다. 그야 말로 하얀 눈이 만들어낸 또 다른 천상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하늘을 쳐다 본 것도 잠시, 태진은 곧바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인간은 하늘이 아닌 땅을 걷는다. 경치를 감상하는 데에 빠져 있으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법이었다.
둘이 지나쳐 오며 눈 위에 남긴 발자국 외에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자연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나뭇가지가 가림막이 된 탓에 숲의 땅에는 눈이 별로 쌓이지 않았고, 따라서 며칠 새에 난 흔적이 사라질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그래서 이 길이 안전하다는 건 또 아니었다.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자신이 죽게 될 가능성 말이다.
플레이어가 이 숲에서 아예 피난처를 만들고 생활하고 있거나, 눈보라가 몰아치기 전에 지나간 다음 지금까지도 매복하고 있을 확률도 있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자급자족의 문제라든가ㅡ눈보라가 치기 시작하면 몬스터들도 근처 동굴이나 숨을 만한 곳으로 이동하기에ㅡ여러 애로사항이 존재하지만 결코 불가능하거나 일어날 리 없는 일은 아니기에, 무시했다가는 역으로 큰코다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태진은 눈 위를 살피며 선두에서 나아갔다. 그러던 중 문뜩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발자국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큰. 게다가 선명했다. 비교적 최근에 난 것 같았다. 태진은 쭈그려 앉아 발자국이 난 곳을 손으로 쓸었다. 손바닥에 무언가 붉은 광채를 띤 것이 묻어났다.
피였다.
“다량의 혈흔. 인간이었다면 과다 출혈로 죽었을 거야. 근처에 시신이 있을지도.”
태진은 작게 혼잣말했다.
“왜 가만히 서있는 거야?”
등 뒤에서 예린이 답답하다는 듯 물어왔다. 태진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이 앞에 몬스터가 있어. 상당히 큰 개체야.”
태진의 말에 예린이 저도 모르게 심각해져서 되물었다.
“...동굴에서의 그 몬스터보다 더 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도망쳐야 돼! 우리 기척을 깨닫고 쫓아올지 몰라.”
예린이 거의 패닉에 빠지다시피 한 목소리로 서둘러 말했다. 이미 한 번 사마귀 괴물에게 습격을 당해 동료를 잃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했던 예린이었다. 몬스터라는 말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는 끔찍한 공포가 정신에 새겨졌을 것이다. 따라서 납득이 가는 반응이긴 하나.
“아니, 우린 전진해야 해.”
“뭐? 너, 너 미쳤어?”
“이제 와서 다른 길로 간다면 제때에 도착할 수 없어.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면 몬스터에게 쫓기는 것 이상으로 고역일 거야.”
무엇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해 시야에 장애가 생긴 상태에서는 예린을 제대로 지켜 줄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그 이상의 최악은 없을 것이다.
“만약 마주치면 어쩌게?”
태진은 등에 맨 샷건을 양손으로 들면서 대답했다.
“저녁거리가 풍성해지겠지.”

몬스터의 발자국을 쫓아가 도착한 곳은 숲 사이에 생겨난 벌판이었다.
마치 벌목지를 연상케 하는 장소였다. 거대한 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고 원래 그것이 우뚝 서있던 자리에는 예리한 그루터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광경의 중심에는 주변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리라 예상되는 장본인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쓰러져 있었다.
두 개의 큰 뿔이 달린 거대한 황소의 형상을 한 몬스터는 멧돼지처럼 생긴 또 다른 거대한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조금의 저항하는 기색도 없는 걸 보면 한쪽은 이미 시체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흉흉한 풍경은 둘이 싸우면서 생겨난 것일까? 대형 괴물 둘이서 치고받은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위화감이 있다.
“어, 엄청 크잖아. 정말로 저걸 상대할 생각이야?”
예린의 말에 태진의 주의가 잠시 그쪽으로 향했다.
“괜찮아. 이미 여러 번 상대해 봤으니까.”
그리고 그 바람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위화감의 정체를 뒤로 한 채, 태진은 신경을 오로지 눈앞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판단을 내렸다.
때마침 몬스터는 죽은 다른 몬스터를 먹어 치우느라 바빠 무방비한 상태였다. 잘만 노린다면 한두 방 만에 해치울 수도 있으리라.
대형 몬스터는 몸집이 큰 만큼 어마어마한 체력을 자랑한다. 허나, 태진이 현재 갖춘 주 무장이 샷건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이는 새발의 피였다.
샷건은 이런 대형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효율을 지니는 무기였다. 이 파괴적인 위력을 지닌 총기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탄의 퍼짐이 심하다는 것이고, 대형 몬스터의 거대한 체구가 이러한 단점을 아예 상쇄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봐도 샷건의 풀 데미지는 일반적인 대형 몬스터의 체력 절반을 넘기는 수준이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서 이 절대 수치에 도달할 만한 공격을 안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초근거리 전이라면 모를까, 중거리에선 웬만하면 산탄 몇 개는 빗나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모두 무의미한 말이다. 표적은 완전히 멈추어 있는 상태고, 이쪽은 정조준을 해서 쏠 정도의 여유가 있다. 실수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빗나갈 리가 없다.
집중해서 한 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첫 발에 어느 정도의 데미지를 입히느냐가 사냥꾼이 되느냐, 사냥감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태진은 등지고 선 나무에서 몸을 살짝 빼 몬스터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태진과 몬스터 사이의 간격은 약 50M 정도. 무기가 샷건임을 감안한다면 부담이 없잖아 있는 거리였다. 허나 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간 들킬 위험이 있고, 무엇보다 앞쪽에는 몸을 숨길만한 오브젝트가 없다.
일정시간 이상 조준 상태를 지속하자 갑작스레 시야가 확대되었다. 사격 기술의 특수 효과 중 하나였다. 태진은 향상된 시야를 통해 조준을 보다 정확하게 맞춰 나갔다.
목표는 머리. 그러나 일부러 조금 더 뒤쪽으로 잡는다. 빗나간 탄알이 몸의 일부라도 맞출 수 있도록. 마침내 일련의 수정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는 태진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때, 한계까지 늘어난 시력으로 태진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죽은 몬스터의 몸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자 그것이 볼트Bolt임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저게 저기에?
그 순간, 태진은 생각했다. 닫혔던 사고 회로가 다시금 활짝 열려 이질감을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생각이 떠오르고 이어지고 연결되기 시작했다.

왜 피는 발자국 아래에 파묻혀 있었는가?
왜 몬스터의 발자국은 두 개체가 아닌, 한 개체의 것밖에 나있지 않았는가?
왜 포식하는 몬스터의 몸에는 전투의 흔적이 없는가? 주변이 쑥대밭이 될 정도의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면, 당연히 살아남은 쪽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어야 할 터.
왜. 왜. 왜. 어째서.
죽은 괴물의 시체에는 화살이 박혔는가?

답.
자신과 몬스터, 어느 쪽도 사냥꾼이 아니었다.

순간 오한이 몸을 내달렸다. 태진은 황급히 뒤를 향해 돌아보았다. 머리 위, 솟아오른 나무의 저 위쪽에서 매달려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석궁을 든 남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만연하고, 이윽고 활시위가 놓아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석궁 화살이 사냥감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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