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한 여름 밤의 카라잔이 성황리에 개최된지도 벌써 2년을 앞두고 있었다.2년. 오리지널 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들이 정규전에 있을 수 있는 시간.
그 2년은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날라가듯,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고대 신의 속삭임과 한여름 밤의 카라잔이 야생으로 가는 것도 단 하루 남게 되었다.
반즈는 카라잔 탑의 오페라 무대에서 여전히 서 있었다.
오페라 무대로 올라온 사람들에게 3개의 공연을 소개시켜주고
세 공연을 훌륭하게 감상한 자들을 축하하며 오페라 카드들을 주는 것.
그것이 반즈의 역할이였다.
하지만 오페라의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당연하다.
카라잔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는 다른 모험처럼 강했다. 반즈는 충분히 사랑받았다.
최소 아무 재평가도 받지 못한채 영웅카드가 되어버린 모로스를 생각하면, 충분히 나은 처지였다.
하지만 크라켄의 해는 곧 야생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유저들은 알기에
그 누구도 카라잔의 탑을 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반즈가 이 무대를 떠나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상점에서 카라잔도 내려가게 될테니까.
하지만 반즈는 카라잔 탑의 오페라 무대에서 서 있었다.
한 명이라도. 단 한명. 아니, 설령 지금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이곳에 오게 될 모험가들에게 오페라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반즈는 무대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모험가가 오지 않은 건 벌써 1개월이 지났다.
2017년 5월 공개된 새로운 모험모드 "정령왕의 강림" 과
2018년 1월에 공개된 모험모드 "킬제덴의 역습" 은 강력한 카드는 물론이였고,
최근에 나온 모험모드인만큼 재밌는 컨텐츠와 높은 원작재현도로 사랑받았다.
그것들이 사랑받은 만큼 카라잔의 탑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반즈는 카라잔 탑의 오페라 무대에서 서 있었다.
자신들이 야생으로 떠나기까지 앞으로 2시간.
그러던 중, 누군가가 오페라 입구로 올라왔다.
로밀로와 줄리엔, 빨간 망토와 커다란 나쁜 늑대, 그리고 도로시와 마녀 모두
숨을 죽인채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탑을 올라온 사람.. 아니 오크였다.
반즈를 제외한 모든 배우는 놀라서 잠깐 몸이 얼어버렸다.
새로운 관객이 온 건 너무나 오랜만이였기에 그들은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반즈는 침착했다.
그 말과 함께 붉은 커튼이 쳐져 오페라 무대를 가렸다.
커튼이 쳐지고 3분 뒤, 반즈는 렉사르의 옆으로 걸어가 첫번째 무대를 소개했다.
가슴아픈 비극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서로 사랑했으나, 가문의 분쟁으로 인해 이루지 못했던 슬픈 사랑이야기를 지금 시작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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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끝나고 반즈는 오페라 무대의 카드들을 렉사르에게 주었다.
렉사르는 반즈의 말을 들은채 만채 카드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한 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들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렉사르는 곧장 떠나버렸다.
늑대 배우가 슬프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도로시는 반즈가 있는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반즈는 없었다.
반즈님? 결국 떠나셨군요..반즈는 그때 봤던 렉사르의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돌잔치때고정사격#4062"
"그 모험가 분은 지금 등급전을 진행하고 계십니다만.."
"관전을 위해 왔습니다."
이 말 덕분에 고대신의 속삭임 속에서도 여유가 넘쳤던 여관주인이 당황헀다.
"태어나서 배우가 되고 관람하신건 자신이 관련된 무대뿐이라는 반즈님이?"
"뭐, 그런건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관주인은 '그' 렉사르가 있는 곳으로 반즈를 안내했다.
반즈가 렉사르를 찾았을때 그는 가로쉬 헬스크림과 치열한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마냥 좋아보이진 않았다.
반즈도 카드를 만들면서 하스스톤을 대략 알고 있었기에, 상황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렉사르는 여유있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런 상황은 수백번 겪어봤다는 것처럼.
그는 썩은 미소를 진 가로쉬를 슬쩍 보고는 무시하듯이 카드를 뽑았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카드 한장을 냈다.
자신이였다.
그의 덱에 도발카드는 없었다. 나오지 않은 하수인은
하나뿐. 라그나로스가 만일 가로쉬의 본체에 닿는다면 렉사르의 승리지만
만일 다른 하수인에게 적중된다면 렉사르의 패배.
어찌됐든 결과는 50:50이다. 렉사르는 조용히 반즈를 필드에 올려놓았다.
오늘 밤, 영광스러운 구원의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2년간 들어 익숙한 대사와 함께 반즈와 1/1의 라그나로스가 등장했다.
렉사르는 고정 사격으로 가로쉬에게 2의 피해를 주고
모든 걸 건다는 마음으로 차례를 종료했다.
죽어라. 벌레같은 놈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로쉬도, 렉사르도, 반즈도 모두가 긴장하던 순간이였다.
불덩이는 렉사르의 필드를 지나가며 필드 위를 날아올랐다.
"하수인...인가?" 누군가가 말했다.
누군가의 말에도 렉사르는 눈을 감지않았다. 반즈 역시 눈을 감지 않았다.
불덩이는 필드를 지나 가로쉬의 본체에 떨어졌다.
8-8=0 정확하게 명중했다. 가로쉬의 초상화는 산산조각났고
나팔소리와 함성소리가 렉사르를 축하했다.
렉사르는 숨을 한번 몰아 쉰 뒤, 관객석에 있던 반즈를 보자 반즈의 자리로 걸어갔다.
반즈는 렉사르를 반쯤 뜬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군요.. 연극에도 반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네가 만든 반전일세. 누가 말했던가? 스포츠는 각본이 없는 드라마라고."
렉사르의 말에 반즈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걸 지금 (e)스포츠라고 하는겁니까?"
렉사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이 반즈는 다시 렉사르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카라잔의 탑에 오게된 겁니까?"
"가루."
너무나도 빠른 렉사르의 즉답에 반즈는 허무하기까지 했다.
"가루가 필요하면, 즉시 갈아버려도 되지 않았소?"
"그냥, 한번 써보게."
이번에도 허무할정도로 빠른 대답이였다.
2018년 메타에서는 돌진냥이 다시 부활했고, 미드냥 역시 1티어를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사냥꾼이 받은 카드들은 고신속의 스랄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호화로웠고
요그냥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유물 정도로만 기억되는, 그런 덱이였다.
반즈의 자리 역시 메타가 점점 진행되면서 좁아졌다.
그런데 이 사냥꾼은 정말로 독특했다.
메타에 구애받지 않은 채, 여전히 자신만의 덱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반즈는 머리에 무언가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킬제덴의 역습" 확장팩 이후로 카라잔이 야생에 가는건 초읽기로 다가왔기 때문에
반즈는 언제나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야생에 대한 두려움이, 버려진다는 절망감이 다가왔던 것이였다.
반즈는 눈을 잠시 감은 뒤, 방을 나가려던 렉사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렉사르씨, 혹시 계속 정규전을 하실겁니까?"
그 말에 렉사르는 차갑게 말했다.
"요그사론은 죽었다. 이제 이곳에 남을 이유는 없어.
뭐. 야생이나 한번 가볼까..?"
"그러면, 가봅시다."
"어딜?"
그 순간 조명은 야생전을 향해 밝혀졌다.
"2년이 끝나면 완전히 끝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개...아니 늙은 하수인이여도 새로 배울 재주는 있나 보군요."
"흥.. 넌 멀리건에서 나와도 뺄 생각이다."
"웃기는 소리 마십시오. 또 요상한 실력으로 라그나로스를 뽑으실 것 아니십니까?"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야생전을 향해 함께 걸어갔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