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콘텐츠의 60%가 개발됐다는 디스테라 2차 CBT, 그 느낌은?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10개 |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하고, 리얼리티 매직이 개발 중인 신작 '디스테라'의 2차 CBT가 23일로 마무리된다. 국내에서 주류인 FPS, MMORPG, RPG와는 전혀 다른 장르인 오픈월드 크래프팅 생존 게임에, 비교적 관심이 적은 SF를 채택한 만큼 처음 공개될 때부터 국내 유저들에겐 다소 낯선 느낌이었다.

지난 3월 알파테스트부터 7월 CBT까지 거친 디스테라는 크래프팅 생존 게임치고 복잡하지 않은 채집과 제조 방식을 선보이는 한편, 왜 유저가 생존에 참여해야 하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비교적 뚜렷히 제시하면서 절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테스트 단계인 터라 방향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듯한 느낌도 자주 보였었다. 가혹한 환경을 잘 드러냈지만, 생존 게임에 초짜인 유저들은 처음엔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존 게임을 해본 유저라면, 너무 밋밋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중간점을 미처 잡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디스테라' 다시 한 번 글로벌 유저에게 피드백을 받고자 테스트를 거쳤다. 국내에서는 지스타라는 여건상 실제 플레이타임이 16일부터 23일까지 풀로 쓰긴 어려웠던 상황, 그런 만큼 그 첫 인상과 후발주자로 들어왔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고자 한다.



■ 망했어도 기계팔만 있으면 어쨌든 살아가리


이미 망해버린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소재는 생존 게임에선 흔한 유형이다. 에너지난에 허덕이던 인류가 새로운 자원을 찾다가 난리가 났다거나, 혹은 어디 운석이 떨어지거나 그에 못지 않은 대재앙이 발생해버려서 그런 꼴이 됐다거나 등등. 생존을 하기에 바쁜 입장에서는 눈에 잘 들어오진 않지만, 어쨌거나 살아남고 난 뒤에는 왜 이런 꼴이 되어야 하나 푸념하기 바쁜 게 사람의 본성 아니던가.

이 게임에서 유저들의 입장은 추방자다. 말이 좋아서 개척이지, 실제로는 우주 정거장 '오로비스'에서 어떤 연유로 인해서 포드에 강제로 넣어진 채 사출당한 상태다. 이미 게임 시작부터 라디오그램으로 그런 내막을 대강 알 수는 있다. 그것보다는 일단 자신이 타고 온 포드를 해체해서 재료를 얻은 뒤, 그걸로 생존할 최소한의 수단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그 내막은 대충 알았으니 남은 건 생존뿐이다.



▲ 대강 브로콜리 모양으로 멋내고 들어갔더니



▲ "응 너 추방"이라니...일단 포드부터 분해하고 보자

추방자라는 말을 듣고 죄수가 되어서 섬에서 배틀로얄을 벌인다던가, 혹은 어디 수용소 같이 척박한 환경을 살아남는 그런 게임들을 연상하기 쉽다. 그렇지만 알파테스트 때부터 디스테라는 그 정도로 하드한 게임은 아니었다. 채집이나 분해, 수집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처음부터 F키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기계팔에 달린 분해 레이저들이 알아서 처리해주니 말이다. 곡괭이나 도끼, 낫 같은 게 없어서 부랴부랴 나뭇가지 줍고 돌도끼부터 시작하는 그런 크래프팅 게임류를 하던 입장이라면 그야말로 가제트 만능팔의 사기성에 감탄하면서도 너무 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초감각 비전'이라는, 채집물을 스캔해서 화면에 표시되는 기능까지 있으니 이론만 보면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쉬운 오픈월드 크래프팅 게임의 표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크래프팅 생존 게임에서 초보들이 가장 헤매는 것이 재료를 찾는 것과, 재료를 캘 도구를 만드는 과정 아니던가.



▲ 채집 가능한 건가? 싶으면 V를 켜보자



▲ 곡괭이질은 물론이고



▲ 가죽을 벗기는데 칼이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쾌적하다. 만약 돌칼이나 곡괭이부터 만들어야했다면...

그 과정이 상당히 생략되어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확실히 덜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라는 과제도 생각보다 늦게 찾아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료를 찾고 본능적으로 뭔가를 사냥해서 이것저것 챙길 때까지는 맨몸으로도 버틸 수가 있었다. 방사능 등 여러 상태 이상이 있긴 하지만 꽤나 간단히 정리된 편이고, 각종 의료 도구를 만들어야만 해결 가능한 상태 이상은 최심부로 들어가야 걸릴 정도로 레벨 디자인이 체계적으로 짜여진 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친절하게, 라디오로 뭘 해야 할지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챙겨주니 그것만 들어도 절반은 간다. 재료를 캐는 것부터 시작해서 먹을 걸 채집하고, 피신처까지 만드는 생존 게임의 기본을 단계별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사슴 말고 곰 같은 위험한 동물이나, 감지 범위 안에 누가 오면 일단 몽둥이찜질부터 하러 달려드는 경비 로봇들이 있다는 사실은 별도 부록까지 켜지 않고서는 알 순 없긴 하다. 그렇지만 그 정도 찾아보는 수고는, 크래프팅 생존 게임을 하는 입장이라면 어느 정도 감내할 만했다.



▲ 쿵쿵쿵 소리와 기계음이 섞여서 들리면 일단 긴장하자. 경비로봇 같은 게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 리얼한 생존의 비율은 조금 더 줄이고, 전투로 가는 단계를 완화하다



▲ 이전 CBT에서는 밤이 되면 아예 코앞이 아니면 안 보였지만, 이번엔 시야가 많이 밝아졌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지난 CBT까지 초보자들의 접근성이 상당히 낮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전에는 수단이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가혹한 환경에 내팽개쳐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우선 물과 음식 외에도, 자신이 어디에 있나 그리고 주변에 위험이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눈으로 확인하게 되지 않던가. 괜히 극한 상황에서 얌전히 자거나, 횃불을 들고서 조심스레 이동하는 게 아니다. 시야가 좁아지니 주변의 위험에 반응하기도 어렵고, 미리 알아채기도 어려워서 위험도가 그만큼 높아지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 CBT에서 디스테라는 이 부분부터가 너무 가혹했다. 밤이 되면 어두워진다는 건 당연지사지만, 불을 켤 방법이 거의 없는 상태로 처음부터 내던졌기 때문에 유저들이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초감각 비전이 어느 정도는 커버해준다고 하지만, 배터리의 양이 그리 많지 않고 초감각 비전으로 배터리를 다 쓰게 되면 채집부터 안 되기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다고 할까.






▲ 곳곳에 있는 폐건물에 들어가면 배터리나 물 같은 필수 자본을 구하기도 쉬워졌다

또 채집할 게 아예 없는 공간이라면 주변 사물이 잘 구분 안 되는 문제도 있어서 결국 완벽한 해결책이 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날이 조금 맑으면 모를까, 무월광 상태라면 아예 무간지옥이 따로 없다. 더군다나 지금 있는 라디오방송 튜토리얼도 전무했던 상황이니, 생존 게임을 처음 하는 입장이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는 밤도 조금 밝게 해서 시야를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게끔 하고, 앞서 말한 튜토리얼을 추가하면서 상당 부분 해결됐다. 더군다나 배터리도 비교적 많이 떨어져있어서 초감각 비전을 계속 틀어놓지 않는 한 크게 에너지가 부족할 일도 없다.

물론 가뜩이나 사실적인 생존 게임과는 조금 먼, 캐주얼한 느낌의 채집과 제작 시스템인데 더 라이트하게 바뀌어서 일부 유저들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디스테라는, 채집과 가공 그리고 제작에 목숨걸기보다는 그걸로 무언가를 만들고 난 뒤에 '싸우는' 것에 집중한 게임이었다.



▲ 정말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지만, 이것만으로도 생존의 필수 여건은 다 갖춘 상태가 된다

실제로 튜토리얼을 어느 정도까지 진행하다보면, 다른 유저뿐만 아니라 유저를 보자마자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기 바쁜 로봇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그 로봇들과 교전을 언제까지고 피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이 있는 곳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필수 재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처음 튜토리얼 시작 지점부터 렌즈 같은 재료들이 많이 놓인 필드에 떨어졌자면 빨리 주거지를 잡을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면 이곳저곳 들쑤시다가 결국 순찰 중인 로봇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벌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로봇들은 스킬을 얻을 때까진, 맨몸으로 때려잡기가 아주 힘들다. 기계팔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신이 쇳덩이인 놈들을 물리치긴 어렵다고 할까. 총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도 소총으로 무장한 로봇까지 마주치니, 유저도 빨리 무장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위한 채집부터가 막히는 셈이다.



▲ 좀만 깊이 들어가도 꽤 강한 적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 그렇지만 고급 장비를 얻으려면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리얼한 생존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이었다면 이런 설계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디스테라는 채집도, 제작도 쉽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생존 게임은 원거리 무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재료를 많이 소모하는 작업이지만, 디스테라에서 권총 하나 마련하는 것쯤은 외곽 안전한 구역의 폐건물 몇 번만 뒤져도 어렵지 않다. 어드벤처 게임이나 배틀로얄 게임처럼 누가 버리고 간 권총을 줍거나 하진 않지만, 제작 재료들을 찾아서 제작을 누른 뒤 주변을 살펴보다보면 금세 장비창에 권총 하나는 챙기고도 남는다.

어디서 비명횡사를 했어도 금방 다시 일어서기 쉬우니, 부담도 적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부터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닥쳐도 다른 생존 게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몸을 사리고 피하기보다는, 한 번 싸워보고 아니면 다시 리트하자는 그런 플레이가 가능했다. 물론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망설여지겠지만, 적어도 초반에 아무 것도 모르고 툭툭 건드릴 때 거리낄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죽을 거 같을 때 빨리 리트하라는 편의 명령어도 있었으니, 어찌보면 이런 가벼운 게임플레이를 의도한 듯하다.



▲ 죽어서 다시 들어가게 돼도



▲ 이 정도까지 복구는 어렵지 않게 진행 가능하다



■ 생존, 투쟁, 그리고 탈출까지의 장기적 플랜은?



▲ 원래대로라면 곰은 굉장히 위험하지만, 지금은 아주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죠

이렇게 해서 디스테라는 생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 뭐 하나만 잘못해도 갖가지 상태 이상이 덕지덕지 붙거나 무기 하나 만들기 힘들어서 몽둥이찜질에 무기력하게 뻗어버리는 일은 없다. 다른 게임이라면 만들기 까다로운 화약무기가 초반부터 금세 손에 들어오니 그때부터는 크래프팅 생존 게임보다는 배틀로얄류에 가까운 전투 감각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실제로 '디스테라'는 여타 생존 게임에 비해 슈팅의 비중이 알파 테스트 때부터 굉장히 높은 게임이었다. 채집하러 다니기가 다소 귀찮았던 그 시점에서도 총기 재료를 구해서 만드는 일은 비교적 쉬웠고, 자연히 총기 의존도도 상당히 높았다. 슈팅 감각도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격발음이나 손맛, 타격감 등은 걸출한 트리플A급 FPS와 비교하기는 애매할지 모르지만, 생존 게임 중에서 그만한 슈팅 감각을 찾기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초반부터 쇳덩이로 무장한 적들이 달려드는 비중도 높으니, 이는 필연적인 흐름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 로봇들로부터 캐낼 수 있는 칩들이 각종 스킬이나 무기 제작에 필요하니, 오히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로봇들을 적극적으로 사냥하러 다녀야 할 판이다. 필드에 있는 것들이 상당히 빠르게 리스폰되고 충전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맨처음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갑작스럽게 리스폰되서 뒤통수를 후려치는 로봇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 아까 쓰러뜨려놔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통수 맞을 줄이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듯, 생존 게임에서도 어느 정도 '생존'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면 그 다음에 할 것이 주어져야 한다. 특히 디스테라는 안정 궤도에 오르는 시간이 타 게임에 비해 비교적 빠른 만큼, 이후에 할 무언가가 제시가 되어야만 했다. 아무리 늦어도 1시간이면 기초적인 주거지는 다 짓고 튜토리얼은 끝마친 상태에, 먼저 시작해서 진을 치고 노리는 적을 상대로 자신이 기본 FPS 실력이 있다면 역습을 가할 정도의 무기까지는 갖춘 상태니 말이다.

특히 디스테라는 여타 FPS에 비해 전투 템포는 다소 느린 편이라, 한 번 기습당했다고 해서 필패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기본적인 방어구 정도만 갖춰도 차분하게 와리가리 스텝 밟아가면서 싸우다보면 이길 수 있는 여지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FPS 실력이 원체 뛰어나면 얘기는 달랐지만, 그때는 운을 탓하면서 다시 어떻게든 생존을 강구하는 게 생존 게임의 묘미 아니던가. 배틀로얄처럼 그 판이 아예 끝나버리거나, 데스매치류처럼 끝날 때까지 어떻게 저걸 상대하지 좌절하지 않고 리스폰하면 바로 튀었다가 나중에 복수나 어부지리를 노리는 게 가능한 장르가 생존 게임이니까.



▲ 체력회복하고 정비하는 걸 몰래 가서 뒤통수킬 컷



▲ 재료 감사요. 전면전이었다면 이기기 어려웠겠지만 원래 생존 게임이란 이런 법



▲ 그러니 항상 문을 잠그고 비밀번호를 걸어두도록 합시다

그런 묘미만으로는, 이런 생존 게임에 유저들이 뛰어들어야 할 '목표'를 완벽히 제시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아포칼립스의 절묘한 분위기가 넘치는 세계관을 상당히 뛰어난 그래픽으로 소화해냈다거나, 그 생존의 과정을 간소화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전투의 감각도 나름 괜찮다는 것은 분명 어필하기 좋은 장점이다. 눈에도 잘 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유저들에게, 무언가 확실한 비전을 줬다고 보기엔 아직 디스테라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를 인지했는지, 목표는 처음부터 비교적 뚜렷하게 제시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뒀다. 앞으로 130일 정도 이후에 전지구적인 재난 '테라파이어'가 분출하고, 그 전까지 어쨌든 탈출수단을 마련할 정도로 잘 생존하다가 알아서 탈출해야 한다는 게 디스테라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는 이와 같은 식으로 시즌을 마련한다고 하니, 장기적인 목표도 나름 잘 갖춰졌다고 해야 할까.



▲ 어찌저찌 생존만 하는 걸론 불충분하다. 재난이 터지기 전에 탈출할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 국내에서 드문 실험작 '디스테라',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 연료 넣고 고기 넣으면 알아서 조리해주는 화로라니, 현실에 있으면 필구각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디스테라의 실험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운영진이 적극 개입하거나 혹은 통제할 수 있는 MMORPG와 달리, 오픈월드 크래프팅 생존 게임은 변수 덩어리이지 않던가. PVE 서버라면 그나마 낫지만, PVP 서버는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실제로 지스타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소 늦게 들어간 입장에서는, 초반엔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쩔 수 없이 권총을 써서 상대를 제압하다보면 그 소리를 듣고 온 고인물들이 총탄을 친히 먹이면서 그간 모아둔 재료들을 털어가기 일쑤였으니까. 그나마 어느 시점이 지나지 않고서야 고티어 방어구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스킬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방어력이 큰 차이가 나진 않아서 어찌저찌 반격이 가능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 야잇 사슴 잡느라 총알 다 썼는데 분하다



▲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둔기로 때려잡는 버릇이 생겼다. 총알은 일단 아껴야 산다

그렇지만 안정화가 된 다음부터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원래 게이머라면 더 고티어 장비를 맞추고 싶은 것이 본능 아닌가. 리니지라이크마냥 스탯 하나 올리는 것에 핵과금을 쏟아붓지는 못해도, 시간 정도는 가능한 한 많이 투자하고 싶은 게 게이머 마음이다. 왜 그렇게 런을 돌면서 기약 없는 파밍을 하고 있겠나.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프로게이머도 아닌데 게이밍 장비에 그렇게 눈길이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크래프팅 생존 게임은 말 그대로 파밍보다는 제조에 의의를 둔 게임이니, 한시라도 빨리 재료를 캐서 제작하고 맞추고 싶은 욕망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그 목표지점이 잘 안 갖춰져있다면? 김이 새기 마련이다. 디스테라에서는 구색은 빨리 갖추지만, 여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더디다. 최종 테크는 좀 더 살펴보면 꽤 있지만, 그게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가기가 쉽지 않다.



▲ 스킬 등 고급 테크트리가 보이긴 하지만, 때로는 초반부터 워낙 싸워대다보니 신경 못 쓸 때가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협력 콘텐츠 및 거점 점령, 필드 보스 등을 내세웠지만 그 지점까지 접근하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물론 생존 게임 특성상 플레이타임을 굉장히 길게 봐야 하는 장르고, 유저가 직접 탐사하면서 찾아나가는 매력이 있는 장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 디스테라는, 처음부터 치고받고 싸우고 경쟁하는 빈도가 상당히 높아서 빨리 어떻게든 우위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조바심 때문에 호흡은 빨라지는데, 그에 맞춘 콘텐츠 레벨 디자인은 조금 느긋한 편이라고 해야 할까.

서버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북미 서버에서 플레이할 때는 일단 멋도 모르고 근처에서 사냥하는 초보를 보고 있다가 그 초보가 장전을 할 때 머리부터 날리고 보는 유저들이 많았다. 그걸 몇 번 당하고 나서야 권총 탄환을 애초에 넉넉히 준비해둔 상태에서 사슴을 노리다가 바로 태세전환해서 싸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에임 실력이 말도 안 되게 차이나는 유저를 만나서 다른 지역으로 가버렸지만, 어쨌거나 비교적 안전하고 면적도 방대한 외곽 지역에 리스폰되는데도 어지간하면 다른 유저와 동선이 겹칠 일이 꽤 있었다. 그나마도 60명이 동시접속해서 서버가 풀로 차는 일은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60명이 동시접속해서 풀로 찼다면 어떤 아수라장이 됐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슈팅 액션 자체는 나름 준수한 편이지만, 완전히 그 분야에만 투자한 FPS가 아닌 만큼 그 준비 과정까지 다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생존 게임치고는 그 과정이 짧지만, 파밍 요소가 가미된 여타 FPS 경쟁작과 비교하자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원래 생존 게임이, 긴 호흡을 보고 플레이하는 게임이지 않던가. 그런데 그 긴 호흡을 보기엔 아직은 다 갖춰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인터뷰에서도 2차 CBT의 콘텐츠 완성도를 60% 정도라고 했는데, 실제로 플레이할 때도 그 정도 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 외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강력한 적과 싸우는 맛이 있지만, 그 단계까지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디스테라가 이렇다, 라고 단정짓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일단 장르 특성상 플레이타임이 굉장히 길다는 걸 감안해야 하고, 그렇게 길게 했을 때 우러나오는 진국 같은 맛도 경험해봐야 온전히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맛을 흔쾌히 즐길 조건을 갖췄나 혹은 첫맛이 어떻게 나는지 등을 검증하기 위한 자리가 CBT인 만큼, 이쪽이 좀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생존의 요소는 간소화하면서 생존과 슈팅의 재미를 온전히 섞고자 한 시도를 보인 '디스테라'는, 그 첫 진입 장벽을 낮춘 점에선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어쨌거나 처음부터 뭔가 만들어서 빵, 빵 쏴대고 놀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는 그 다음 스텝으로 어떻게 유저들이 나아가게 할까 고민이 필요한 단계로 보인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최적화도 좀 개선이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는 HDD에 설치하면 로딩이 길어지거나 프레임 드랍이 발생해 거의 플레이가 불가능한 수준이니, 어느 정도 사양이 됐다고 해도 SSD 설치를 권장한다.


▲ 초기 프레임 드랍 현상으로 HDD/SSD 설치 후 비교한 결과. HDD는 현 단계에선 플레이가 어려울 정도다

최근 인터뷰에서 협동과 경쟁에 대해 얘기했으니, 디스테라는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국내에서 출시된 생존 게임뿐만 아니라 여타 게임에서도 단체로 파티 혹은 동맹을 맺고, 서로 협력하면서 훨씬 빨리 발전시키고, 고티어 무기들을 빨리 확보한 뒤 다른 파티와 격전을 벌이는 맛을 내세운 게 일반적이었으니 말이다. 그 콘텐츠가 있다는 사실까지 접근하는 과정이 상당히 루즈한 상황에서, 이를 어떤 식으로 메워나가고 140일 간의 지구에서 생존 및 탈출기 시즌을 구축해낼지 앞으로의 방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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