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일한 경험이라는 이름의 함정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34개 |



"동일한 경험"

서브컬쳐 게임 커뮤니티에서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단어다. 그 발단은 블루 아카이브 인터뷰 때 나왔던 발언부터 시작됐다. 당시에 '동일한 경험'이라는 말은 일본 서버와 다소 다르게 픽업과 총력전 순서가 이어지고 업데이트 주기도 빠른 것에 대해 기자들이 앞으로의 한국 및 글로벌 서버의 방향성을 묻는 자리에서 더 자주 나온 말이었다. 그렇지만 유저들의 눈은 그보다는 번역 이슈, 그리고 게임 내 이미지 식자 관련 질문에 나온 한 마디에 눈이 쏠렸다.

답변의 요지는 글로벌 동시 서비스를 하는 만큼 게임 진행에 필요한 텍스트나 이벤트 배너는 현지화하지만, 인게임 리소스를 다 현지에 맞춰 작업하기 어렵기에 인게임 그래픽 요소는 되도록 일본 서비스 원형을 유지하는 형태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유저들의 반응은 비판적이었으나, 크게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한국 및 글로벌 서버는 일본 서비스 때 착오를 타산지석 삼아서 개선된 서버 상태 및 뽑기 천장, 각종 편의 기능을 앞당겨서 갖고 왔었고, 유저들이 어느 정도 육성이 끝나서 1장 스토리를 다 마치고 총력전까지 하면서 블루 아카이브만의 매력을 갓 맛보기 시작했을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월 9일, 명일방주 2주년 쇼케이스에서 한국어 더빙, 그리고 영어 더빙 추가 기획이 발표되면서 다시금 논란이 불거졌다. 명일방주는 스토리에는 더빙이 안 들어가고 로비 및 전투, 기반시설 터치 대사 정도만 들어가서 성우 대사량이 많지는 않고 대부분 자막으로 뜻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말 더빙이 없어도 그러려니, 혹은 덕겜이니 일본어 보이스는 당연하겠거니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저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한국어 더빙이 추가된다는 소식에 자연히 블루 아카이브와 비교하는 유저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10일에 올린 버그 픽스 및 보상 공지가 올라오면서 유저들 사이에서 그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출시 초부터 치세와 아카네의 장비가 일본 서버와 다르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2달이 지난 지금 수정한다고 발표된 것이다.



▲ 출시 초부터 언급됐던 장착 가능 장비 문제가 11일 업데이트로 수정된다

블루 아카이브는 고티어 장비를 스테이지에서 바로 획득하는 방식이 아닌, 1티어 장비에 설계도를 입수하면서 하나하나 티어를 올리는 방식이다. 티어가 올라갈수록 요구되는 설계도의 종류와 양도 많아지고, 그에 비례해서 필요한 행동력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도였다. 그런 만큼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딜러 캐릭터의 장비를 먼저 맞춰야했다.

치세와 아카네는 출시 초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총력전부터 각자 쓰임새가 재발굴되면서 어느 정도 이상 육성을 진행한 유저들이 꽤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둘 다 딜러진이 많이 쓰는 장비들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의 장비를 먼저 맞추려면 다른 딜러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상황인 만큼 유저들은 교체한 장비 레벨 및 티어는 보존해주고 장비 레벨을 올리는 강화석을 제공한다는 보상안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유저들은 블루 아카이브 개발진이 제시한 '동일한 경험'이라는 철학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간 모바일 게임에서 BM이 화두가 되면서 '동일한 경험'이라는 시각도 자연히 BM과 관련된 방향에 쏠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잊을만하면 흔히들 '헬적화'라고 하는, 다른 나라와 파는 상품의 종류나 가격이 달라지는 일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캐릭터의 성능을 건드리기도 하고, 픽업이나 이벤트 일정을 바꾸거나 혹은 아예 스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례를 여러 차례 겪어본 국내 유저들이었던 만큼 해외에서 서비스한 게임이 국내에 들어올 때 무언가 달라진다는 점에 대해서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블루 아카이브 개발진에서도 아마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 일본 서비스와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한 것일 터다.

그렇지만 이들이 놓친 것이 있다. 우선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걸 줬다고 해서 똑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언어 같은 주관적인 영역은 더욱 더 그렇다. 그와 관련해서 일부에서는 덕후의 세대 차이까지 운운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외국 게임이 번역되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덕질하려면 외국어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대부분 한국어화를 거치기 때문에 덕후라고 해서 일본어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하고, 또 국내 게임에서 갑자기 일본어가 튀어나오리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본어 표지판이나 티켓 등을 보여줬을 때 하얀 건 바탕이요 검은 건 글씨라고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고, 이전과 다르게 배경이 일본이라고 아예 명시되지 않는 한 좀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글귀 옆 혹은 자막에 해석이라도 붙어있는 게 일상적이니, 그런 것 없이 나온 것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또 일본어를 잘한다고 해서 그걸 자연스럽게 체화한 상태인지, 아니면 갑자기 나오면 SSD인 C드라이브가 아닌 HDD인 D드라이브에서 다소 느릿하게 데이터를 불러오는 상태인지 등 제각각 상황이 다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라떼는'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던가. 답변의 주요 핵심은 비용 및 현지화 퀄리티가 우려되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지만, 같은 경험이라는 문구 하나가 추가되면서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더군다나 국내 게임인데도 식자뿐만 아니라 번역 문제가 불거졌으니, 유저들의 불만은 그 한 마디로 풀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서비스하는 지역이 다르면 '동일한 경험'이라는 명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 서버뿐만 아니라 글로벌 서버에서도 게임개발부 메인 스토리의 아리스 첫 등장 컷인 일러스트의 편집 때문에 '동일한 경험'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받아들인 적이 있었지 않았나. 그래서 개발진은 동일하게 진행하고자 했지만, 아동 혹은 미성년자 노출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몇몇 국가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해야 했다. 다행히 뒤에는 일부 어그로를 제외하고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간 외국에 먼저 서비스했다가 국내에 들어온 게임들이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해서 헬적화 논란에 휩싸이고, 이슈에 치인 끝에 시들어간 케이스가 많았다. 혹은 국내 서비스와 해외 서비스가 달라서 테스트 서버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벤트 순서가 다소 바뀌고, 픽업이 바뀌는 일이 나오자마자 바로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강박적인 답변이 나왔으리라.

그러나 블루 아카이브는 이미 일본 서버를 플레이했던 유저들을 통해서 100% 동일하게 서비스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36시간 연장 점검, 50시간 연장 점검 같은 사태나 두 달 동안의 버그 픽스 및 개선에 치우친 노 업데이트 기간은 누구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서버 픽업은 어느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핵심 콘텐츠인 총력전과 메타가 맞아떨어졌다. 그런 일들이 유저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터라 실제 인터뷰 답변에서 동일한 경험이라는 말은 저때 더 많이 나왔는데, 그와 관해서는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고 있다.



▲ 총력전 순서 변경보다는 오히려 모집 배너의 퀄리티가 일본에 비해 떨어진다는 이슈가 불거져서



▲ 게임개발부 픽업부터 개선이 이루어졌다

사실 유저들이 해외와의 동일한 경험을 강조했던 이유 중에는 그간 해외 서버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과 인식이 축적된 것도 크다. 그에 대비해서 미리 사전 경고하는 차원에서 어필하고 모니터링하지만, 해외 서버보다 개선되거나 좋아진 점이 있다고 해서 동일한 경험이 아니라고 운운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블루 아카이브는 동일하다, 같다는 말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그 단어에 강박적으로 휘말리는 모양새다. 개발진 답변에서도 상황이 똑같을 수 없고, 비용 및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언급됐지만 예전에 풀었던 그런 말로 수습하기엔 지금까지 조금씩 쌓인 유저들의 불만이나 의견 차이를 털어내기는 부족하다. 더군다나 이미 그간 그들이 말해왔던 '동일한 경험'과 다른 일이 벌어져버리지 않았나.

단순히 BM이 동일하다고, 이벤트 순서나 업데이트 순서가 동일하다고 해서 유저들은 동일한 경험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유저들이 동일한 경험을 강조했던 이유도 단순히 해외 서비스와 동일하게 가라는 말이 아니라, 결국 해외보다 더 못한 서비스는 최소한 받지 않겠다는 커트라인의 의미다. 지금 블루 아카이브에서 '동일한 경험'이라는 말이 논란이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생각하기에 일본 서버와 동일하지 않고 못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니, 개선하거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경고다. 동일하다는 그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소통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2021년부터 유저들은 경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을 이어가곤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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