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 '수일배' 진승호의 15년

게임뉴스 | 박태균 기자 | 댓글: 7개 |



  • 주제: 스토리 기반 싱글 게임에서 내러티브를 전달한 방법들
  • 강연자 : 진승호 - 라인게임즈 라르고스튜디오 / 디렉터
  • 발표분야 : 커리어, 기획
  • 강연시간 : 2021.11.19(금) 15:00 ~ 15:50
  • 강연 요약: '검은방', '회색도시'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진승호 디렉터는 멀티 플랫폼 어드벤처 게임 '베리드 스타즈'까지 성공시키며 본인의 가치를 증명했다. 방을 나서고 도시를 지나 별을 스친, 진승호 디렉터가 보낸 격동의 15년에 대한 이야기다.



  • ■ 게임 만드는 진승호, 글 쓰는 '수일배'

    "게임 만들고 글 쓰는 사람입니다"

    '수일배'라는 닉네임으로도 잘 알려진 진승호 디렉터는 EA, 433, 라인게임즈, 세 회사를 거치며 총 12개의 게임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이중 시나리오를 맡고 직접 스크립트를 짜서 개발한 스토리텔링형 게임만 무려 8개다. 그렇다면 진 디렉터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됐을까.

    진 디렉터가 제작에 참여한 첫 게임은 핸즈온 모바일의 모바일 액션 게임 'V맨'이었다. 그러나 'V맨'은 소리소문 없이 폭삭 망했다. 그런데 마침 영웅서기 제로의 기획자가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며 진 디렉터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그 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와중 핸즈온 모바일이 EA에 인수합병되며 진 디렉터는 졸지에 EA 직원이 됐다.

    2007년말 사측에서 진 디렉터에게 타이쿤 게임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는 '스튜어디스 타이쿤' 기획안을 제출해 통과했다. 무난하게 게임 개발에 착수하던 진 디렉터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타 회사의 '스튜어디스 타이쿤'이 출시 예정작에 올라온 것. 이에 '스튜어디스 타이쿤' 프로젝트는 곧바로 폭파됐다.

    이후 해보고 싶은 것을 가져오라는 사측의 지시로 진 디렉터는 고심 끝에 몇 가지 컨셉을 제안한다. 그중에 채택된 것이 스토리텔링형 방탈출 게임이었는데, 진 디렉터는 이에 대해 "사실상 지금까지 제대로 된 스토리 한 번 써본 적 없으면서 일단 해보겠다고 들이댄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진 디렉터가 방 구조와 탈출 방법을 디자인하고, 캐릭터 이름을 정하고, 처음으로 완결까지 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2008년, '검은방1'의 등장이었다.






    ■ '검은방' 시리즈에서의 내러티브 전달

    "얼렁뚱땅 시작한 스토리텔링 게임 개발, 제가 어떤 의도와 고민을 가졌고 그걸 어떻게 게임에 반영했는지 계속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검은방1'의 주요 모티브는 2000년대 중후반 인터넷에서 즐길 수 있었던 플래시 방탈출 게임들이었다. 캐릭터가 없는 1인칭의 플래시 방탈출 게임은 스토리 및 퍼즐의 인과관계가 없거나 다소 불명확했다. 이에 진 디렉터는 '검은방1'에 스토리를 붙이기 위해 영화 쏘우-큐브를 참고했다고 전했다. 방탈출 게임은 묘하게 불안하고 무서운 느낌을 갖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톤이 잡혔고, 위험하고 치명적인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갇힌 채 협력하거나 반목하여 탈출하는 상황이면 스토리를 붙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진 디렉터는 이중 '여럿이 함께 탈출한다'라는 협력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고, '검은방1'에 아이템 전달 기능을 만들어 게임 플레이에 변화가 발생하도록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행의 특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했고, 이야기의 전개나 인물의 개성에 따라 다른 상호작용을 보이게 하는 내러티브를 완성했다.

    '검은방1' 제작에 영향을 준 다른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 작가의 소설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마지막까지 완전히 범인의 계획대로 놀아났다는 스토리와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모든 인물이 한 가지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스토리 등이다. 이에 더해 마지막 추리는 선택지로만 진행하도록 하여 추리를 잘하는 플레이어와 못하는 플레이어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검은방1'이 거둔 기대 이상의 성적에 진 디렉터는 후속작 제작에 착수했다. 시작 전에는 밑천이 다 바닥난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하게 되자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기본 방침은 기존의 틀은 유지 및 발전시키되 스토리와 시스템을 강화하여 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검은방2'에서는 폐쇄된 공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일어나 범인을 찾는다는 스토리와 선택지를 통한 추리 시스템, 아이템 전달 등의 요소는 그대로 유지됐다. 미국 드라마의 시즌제 진행을 참고해 전작의 주인공과 탐정역 캐릭터를 재등장시켰다. 여기에 특정 조건에 따른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정보와 힌트를 얻는 별도의 이벤트를 추가해 플레이어들이 캐릭터 특성에 보다 더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검은방2'의 주요 변화는 두 명의 주인공으로, 진행에 따라 루트가 바뀌도록 설계했다. 이는 진행을 다양하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특정한 스토리 기믹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반이 됐다. 바로 '새로운 주인공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전개다. 플레이어는 1인칭 시점에서 주인공을 조작하고 그의 생각을 볼 수 있지만, 살인이 발생할 때는 다른 주인공 루트로 넘어가 있거나 암시적인 나레이션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영향을 받은 것이으며,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트릭 활용은 후속작인 '검은방3'에서도 이어졌다.

    '검은방2' 역시 흥행에 성공하며 방탈출 기획자와 캐릭터 아티스트가 합류했다. 보다 안정적인 개발 환경을 구축한 진 디렉터는 비주얼, 연출, 스토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단말기 스펙의 급격한 발전으로 더 큰 해상도와 이펙트를 사용할 수 있었고, 숙련된 팀원들 덕분에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렇게 개발된 '검은방3'는 두 전작을 모두 뛰어넘는 결과를 낳았다.

    '검은방3'에는 총 네 명의 주인공과 시점이 등장한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다른 위치, 다른 시간대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사실 이는 '검은방2'에도 사용됐던 진 디렉터의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트릭이었다. 특정 루트는 시간만 맞을 뿐, 시점은 10년 이상 된 과거의 것이었다. 진 디렉터는 같은 장소의 같은 물품이 더 낡았다거나, 고장 났다거나, 없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를 암시했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알아차리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검은방3'에는 언쟁 시스템이 추가됐다. 다른 사람과 말다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마지막 장면을 위한 진 디렉터의 설계였다. 언쟁 시스템은 이야기의 끝에서의 단 한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직접 조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임을 진행하며 언쟁 시스템의 특성을 기억했던 플레이어는 일종의 '기출 변형'을 만나며 이야기 속 인물의 변화나 결단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 '검은방' 시리즈의 마침표, '회색도시'로의 재출발

    "'검은방'을 만들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걸 해야 하는가?"

    세 편의 '검은방' 시리즈를 제작한 진 디렉터는 완전히 방을 나온 주인공 일행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외 본사로부터의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대규모 퇴사가 발생했으며, '검은방1' 개발부터 함께 해 온 팀원들마저 자리를 떠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은방4'가 제작됐는데, 설상가상으로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여러 팀원들이 정리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힘겹게 출시된 '검은방4'는 불안정성에 따른 많은 이슈를 낳았다. 시스템과 내러티브를 연결하는 구조가 매우 많이 줄어들었고, 시스템을 만들어도 콘텐츠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루트 선택은 있었지만 거의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고, 언쟁 시스템은 사용된 곳이 매우 적었으며, 일부 퍼즐의 난이도와 조작성에 대한 검토도 부족했다. 본사의 정책에 아쉬움을 느낀 진 디렉터는 회사를 떠나 기존 팀과 합류했다.

    '검은방' 주인공들이 방을 나간 뒤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자 진 디렉터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에 빠졌다. 더 이상 '검은방'의 제작자가 아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던 그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모조리 집어넣은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선택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담은 게임을 말이다. 그렇게 '회색도시' 시리즈 개발이 시작됐다.




    '회색도시' 개발 초중반 모바일 게임 업계는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로 대표되는 카카오 시대를 맞이했다. 모든 회사가 카카오 시대에 발맞춰 전력투구를 시작했고, 진 디렉터 역시 '회색도시'의 IP를 더 넓게 퍼트리기 위해 개발 방향을 카카오 어드벤처 게임으로 바꿨다. 이에 개발 중이던 '회색도시'의 주요 시스템 난이도를 현격하게 낮추고, 강력 사건을 다루는 것보다 드라마와 같은 인물 관계 위주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과거편을 과감히 축소-편집하는 등 복잡한 인과를 배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진 디렉터는 '회색도시'에 게임 시스템을 통한 트릭을 집어넣었다. 특정 캐릭터 시점에서 증거를 골라 넣어 사건을 재구성하게 하는 대입 시스템이 그것이었다. 불필요한 절차처럼 느껴졌던 해당 시스템은 사실 단순히 아이템이나 단서를 대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위치에 다른 사람을 대입하여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설명하는 장치였다. 플레이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드는 과정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회색도시'는 엇갈린 반응과 함께 나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제대로 마감하지 못한 부분과 더 잘할 수 있었지만 놓친 부분들로 인해 여태 경험하지 못한 거센 비판도 받았다. 잠시 멈춰 선 진 디렉터는 '회색도시' 개발 과정에서 놓쳤거나 너무 덜어냈거나 집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한 진 디렉터는 축소했던 '회색도시'의 과거를 제대로 다루면서 현재 시점인 '회색도시'를 보완하고, 제대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미싱 링크를 연결하고 모든 준비가 됐을 때 마지막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회색도시의 속편이자 프리퀄인 '회색도시2'의 개발이 시작됐다.




    '검은방' 시리즈와 '회색도시'를 제작하며 선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진 디렉터는 '회색도시2'에 실시간으로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임기응변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러한 임기응변은 순간의 실수로 즉시 끝나버리고, 힌트를 거의 주지 않은 채 플레이어를 몰아세우는 부조리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진 디렉터는 그 폭력성과 불가역성이 당시 본인이 생각한 선택의 본질이었다고 한다. 픽션이기에 더 치명적인 상황을 설정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빠르게 결단을 내려 살아남는 체험을 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에 진 디렉터는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트릭을 비롯해 깊이가 얕았던 특기를 다 배제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임기응변 시스템 하나만 '회색도시2'에 남겼다.

    한편 프리퀄 게임은 이미 미래를 아는 플레이어가 느끼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과, 세계관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문제는 전작을 모르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는 것이었다.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던 전작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빠듯했고, 이에 진 디렉터는 '회색도시2'의 에피소드를 6개로 나누고 1, 2부를 우선 오픈한 다음 한 달 간격으로 6부까지 업데이트한다는 빡빡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회색도시2'는 2014년 10월 에피소드 1, 2가 런칭됐고, 힘든 일정을 거쳐 2015년 2월 에피소드 6부 업데이트와 함께 일단락됐다. 그러나 에피소드가 넘어갈수록 플레이어가 급감했고, 오픈 스펙으로 약속했던 '회색극장'은 5월에나 완성되어 업데이트됐다. 무리한 일정에 신경 써서 보아야 할 곳을 피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끝내는 일에만 파고든 것이 문제였다.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 진 디렉터는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 노력에 파묻혀 궤도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회색도시' 프로젝트는 종료됐고, 팀은 해체됐다. 이와 관련해 진 디렉터는 오버그라운드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건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생각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게임 제작은 일을 맡기는 상부의 믿음과 사업 및 개발 지원 조직, 개발팀이 밤낮으로 함께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 디렉터는 당시를 회상하며 주변을 전혀 보지 않고 달리기만 한 본인의 문제도 컸다고 이야기했다.



    ■ '검은방' 시리즈의 마침표, '회색도시'로의 재출발

    "기나긴 주말을 보내고 나니,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2015년 팀 해체 사실이 알려지자 진 디렉터의 SNS 타임라인에는 팔로워들의 수많은 논평과 멘션이 쏟아졌다. 처음 겪는 생소한 경험에 진 디렉터는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했다. 이것이 SNS를 사용하는 컨셉의 스토리텔링형 게임, 베리드 스타즈의 시작이었다.




    베리드 스타즈에는 다시 연쇄살인과 범인 추리 요소가 도입됐다. 몸은 갇혀 있지만 SNS는 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매개체를 스마트 워치로 잡았는데, 여기엔 다른 목적도 있었다. 바로 벨소리와 녹음 기능을 트릭으로 활용해 게임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진 디렉터는 게임 초반부에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이를 짚어줌으로써 플레이어들이 게임 시작 한 시간 내에 트릭에 쓰인 요소들을 모두 확인하게 했다.

    또한 진 디렉터는 본인이 처했던 상황과 이후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베리드 스타즈'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복잡하게 설계했다. 게임 NPC와의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에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개발에도 큰 부하를 걸리게 했고, 플레이어의 진행 템포를 떨어뜨리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진 디렉터는 분명 보다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며, 지금은 더 나은 발전상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게임의 메인 컨셉 중 하나인 SNS의 경우 각 계정의 설정을 따로따로 잡아 개성을 부여하고 등장인물처럼 활용했다. SNS의 게시물에는 닉네임과 사진, 글만 있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면 눈에 띄는 닉네임이 생기고 그들의 특징을 알게 된다. 이는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르는 제3의 인물들이 넘겨짚는 내용들을 보게 하여, 실제 상황과의 괴리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플레이어가 느끼도록 배치한 것이다.

    여기에 '검은방' 시리즈처럼 탐정역을 등장시켰는데, 진 디렉터는 이를 바깥에서 서포트하는 외부인으로 설정했다. 플레이어에게 '누군가 내 안위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말을 걸어준다'라는 감각을 주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베리드 스타즈'의 캐릭터와 플레이어는 내외부 상황에 의해 많은 고통을 받는데, 이는 진 디렉터가 의도한 것이다.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불편한 상황이 있지만, 그곳이 다시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베리드 스타즈'에는 새로 시도할 것들이 많았다. 개발 범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니티 엔진을 도입한 진 디렉터의 첫 게임이었고, 중도에 콘솔로 플랫폼을 바꾸며 그간 해보지 않았던 분야의 연구와 테스트가 필요했다. 퍼블리셔 없이 패키지를 제작하고 출시하기 위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긴 개발이 끝나고 출시일이 다가오자 진 디렉터에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베리드 스타즈는 많은 성원을 받았다. 출시한 주에 콘솔 게임 전체 판매 3위를 기록하고 닌텐도 e샵 매출 순위 1~10위에 상당 기간 안착하는 등 순항을 이어갔다.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는 우수상과 기술창작상 기획/시나리오 부문에서 두 개의 상을 수상했고, 메이드 위드 유니티 2021에서는 베스트 PC/콘솔 픽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진 디렉터는 '베리드 스타즈'는 아직 진행 중이기에 완전히 정리할 수 있는 건 나중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베리드 스타즈는 스팀을 통한 PC 버전 발매를 앞두고 있다.






    ■ 그러면,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온 선택의 결과들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검은방'을 시작으로 '회색도시'를 거쳐 '베리드 스타즈'에 이르기까지, 진 디렉터는 지난 15년의 세월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얼떨결에 시작한 사람이, 자기가 좋아했던 것을 밑천 삼아 두서 없이 만들다가,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되면서, 점차 자기 안에서 테마를 찾기 시작하고, 자잘한 성공과 커다란 실패를 겪었지만, 적어도 멈춰 서지는 않은 과정이었다고.

    진 디렉터에게 있어 스토리텔링 게임 개발이란 그러면,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었다. 스토리텔링 게임을 개발하며 이를 정말로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게 되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더 잘하고 싶다는 건 지금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이는 어쩌면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 디렉터는 이 일을 좋아하기에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에 진 디렉터는 신규 프로젝트 하우스홀드(가제)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앞에는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진 디렉터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로 인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빙빙 헤매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반드시 전보다는 조금 더 전진할 것이다. 본인과 마찬가지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걷고 있는 게임 업계 관계자들과 대작 사이에서 진 디렉터의 게임을 찾아준 게이머들에게 감사를 전한 진 디렉터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민과 선택으로 가득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다시 한번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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