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PD 김용하, '블루 아카이브'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게임뉴스 | 박태균 기자 | 댓글: 32개 |



  • 주제: '덕후 PD' 커리어 리뷰
  • 강연자 : 김용하 - 넷게임즈 / PD
  • 발표분야 : 기획, 모바일
  • 강연시간 : 2021.11.19(금) 10:00 ~ 10:50
  • 강연 요약: 게임을 좋아했던 한 컴퓨터공학과 석사는 박사 과정을 밟는 대신 게임 업계에 발을 들였다. 프로그래머로서 게임 개발을 시작한 그는 우여곡절을 거쳐 자타가 공인하는 '덕후 PD'가 됐고, 2021년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를 출시해 일본과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본인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 ■ 프로그래머를 거쳐 '덕후 PD'가 되기까지

    석사 학위를 취득한 김용하 PD는 이후 학업과 현업의 갈림길 앞에 섰다. 와중 지난날의 잡지 필자 경험과 게임 업계 및 개발에 대한 관심이 그를 게임 업계로 이끌었다. 현업을 택한 김 PD의 첫 회사는 판타그램이었다. 주니어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그는 '킹덤 언더 파이어'와 '샤이닝로어' 제작에 참여했다.

    "신입 프로그래머가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저 일을 주는 대로 받아서 코딩을 했어요. 당시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만들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업무 분장이 확실하지 않았었는데요. 좋게 생각하면 덕분에 PD가 될 수 있었다고 봐요. 로직 프로그래밍부터 게임 시스템 설계, 기획 같은 다양한 업무를 접하며 체계적으로 게임 개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으니까요."

    "다음 직장은 넥슨이었는데, 넥슨은 게임 개발 과정 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조직이었습니다. 얼마나 높은 목표를 정할지, 조직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지에 대해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죠. 또 저는 상대적으로 경력이 많은 프로그래머였기 때문에 테크니컬 디렉터라는 과분한 직함도 가지면서 여러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두 회사에서 하나의 패키지 게임과 두 개의 MMORPG를 개발하고, 관리자 경험을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김 PD는 '나도 PD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왠지 남들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게임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마침 경영진이 신규 프로젝트 담당자를 찾고 있었고, 김 PD는 견습 PD로서 새출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첫 도전의 결과는 더없이 처참했다.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전부 실패로 끝났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과 직접 해보는 건 차이가 정말 크더라고요. 게임이 만들어지고 출시되기 위해선 많은 요소가 필요한데, 당시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기술적인 부분뿐이었으니까요. 가장 큰 실패 요인은 게임의 기획 의도, 차별점 등을 강조하기보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기술적인 목표를 중시했던 것 같아요. 또한 꾸준한 마일스톤 과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가는 부분에 대한 역량도 부족했죠."

    프로그래머 출신이라도 기술적인 목표에 욕심내지 말 것. 조직 관리는 혼자 하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 할 것. 첫 실패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은 김 PD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아이덴티티 게임즈에서의 부름이다. 프로그래머로의 복귀를 고민하던 김 PD는 함께 일해온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아이덴티티 게임즈에선 2년 동안 풀스케일 MMORPG 프로젝트 B6의 개발을 맡았어요. 당시 팀원들은 현 스마일 게이트 이상균 PD, 넷이즈 김덕영 PD, 크래프톤 손광재 디렉터, 스튜디오 HG 한재훈 대표 등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업계 올스타 조합이었네요(웃음). 그런데 프로젝트 B6의 프로토타입은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프로젝트가 중단됐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실패 요인은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개발 외적인 부분, 경영진의 교체나 해당 게임에 대한 회사 측의 관점이 바뀌는 것, 투자 및 시장 변화 등을 간과했죠. 우리 개발 진도만 잘 맞추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발목을 잡은 거죠. 당시 얻은 교훈은 게임 개발에는 외부 요인도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경영진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프로젝트는 결국 접힌다는 걸 깨달았죠."


    프로젝트 B6 중단 이후 김 PD는 스스로 제안서를 쓰고 이를 받아줄 회사를 찾아다녔다. 당시 일본판 '확산성 밀리언아서'를 재밌게 즐겼던 그는 서브컬처 컬렉션 게임 제작을 준비했는데, 그동안 쌓인 시행착오와 PD 경험을 통해 본인이 만들 게임의 흥행을 확신했다. 그렇게 등장한 게임이 2014년 출시된 스마일게이트의 '큐라레: 마법 도서관'이다.




    "'큐라레: 마법 도서관'은 생각했던 대로 게임을 제작했고, 그 게임이 생각했던 대로 작동했고, 생각했던 유저분들의 반응을 얻은 작품입니다. 4년 동안 '큐라레: 마법 도서관'을 통해 유저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김 PD는 '큐라레: 마법 도서관'을 라이브 서비스하는 와중 다른 엔진을 사용한 다른 플랫폼의 게임 개발에도 관심을 가졌다. 마침 PS VR 게임 서머 레슨이 출시됐고, 이를 확인한 김 PD는 경영진에 VR 게임에 대한 R&D를 요청했다. 마침 경영진도 VR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VR 연애 어드벤처 게임 '포커스 온 유'의 개발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정식 프로젝트가 아닌 단순 R&D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정식 프로젝트라고 해버리면 상황이 꼬였을 때 무르기 힘들잖아요(웃음). 약 6개월간의 R&D 기간 동안 전에 해보지 않았던 모션 캡처, 페이셜 캡처 등도 새로운 기술도 경험해 봤죠. 그런데 한창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와중 번아웃이 세게 와서 퇴사를 하게 됐어요. 다행히 개발팀에서 저만 나왔기 때문에 '포커스 온 유'는 문제없이 출시될 수 있었습니다."



    ■ '블루 아카이브'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스마일게이트를 나온 김 PD는 넷게임즈 박용현 대표를 만났다. 컬렉션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박 대표는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는 미소녀 컬렉션 게임을 원했고, 이에 김 PD는 프로젝트 MX 개발을 담당했다. 추후 공개된 해당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블루 아카이브'였다.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을 대전제로 삼고 어떤 기존 게임이 일본에서 흥행했는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게임인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최근 트렌드에는 판타지보다 현대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이 알맞다는 걸 알았습니다. 여기까지는 '큐라레: 마법도서관'에서도 했던 거니까 오케이, 다음으로 고민한 건 '사물 모에화'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때가 2018년 초였는데, 당시 출시된 대부분의 미소녀 컬렉션 게임이 '사물 모에화'를 채택했습니다. 전투기, 탱크, 전함, 총기 등 전투에 관련된 것은 물론 건설 기계, 성채, 요리 등등 온갖 사물이 다 나왔죠. 이러한 상황에선 새로운 '사물 모에화' 게임이 나온다 해도 시장에 어필하기 힘들 거라 판단했고, 이에 차라리 신규 IP를 개발하기로 결정했어요. 바로 '큐라레: 마법도서관' 때부터 함께 해온 동료들과 함께 키 비주얼을 만들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미래 비주얼의 세계관과 캐릭터 컨셉을 정한 김 PD의 다음 고민은 전투 시스템이었다. 미소녀 컬렉션 게임인 '블루 아카이브'는 분대 전투가 필수적이었기에 김 PD는 원거리 전투 시스템을 택했다. 분대 단위의 근거리 전투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캐릭터마다 필요한 액션과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시인성이 높은 모바일 환경에서는 동작성을 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원거리 전투가 알맞다는 게 겜 PD의 설명이다.

    "그렇게 가장 먼저 생각한 방향이 '미소녀 엑스컴'이었어요. 사실 프로젝트 MX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왔죠. 비주얼 컨셉은 '엑스컴'을 따라가되, 액션을 모바일 템포로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실제로 이 부분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전투 방식을 브레인스토밍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해보는 건 완전히 다르죠."

    "현재 '블루 아카이브'에 적용된 지형, 엄폐, 리로드 등의 시스템이 담긴 프로토타입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해서 테스트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화면 각도에 따른 엄폐물 배치나 공격과 방어 타입, 이동 방식, 보스전 같은 것들을 구성하고 수정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게임에 넣을 것들과 넣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했고, 그렇게 나온 게 현재 '블루 아카이브'의 전투 시스템입니다."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과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최상위권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 PD가 보다 많은 의의를 두는 건 매출이 아닌 유저들의 적극적인 2차 창작이었다. 특히 한국에 출시된 서브컬처 게임 중에선 가장 활발한 2차 창작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입장이다.

    "'블루 아카이브'는 게임 외적으로도 다양한 컨텐츠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꽤나 긍정적입니다. 일본 퍼블리셔 요스타가 이런 부분에 강점을 많이 갖고 있어서 타 IP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상품화, 영상물 제작 등에 많이 힘써준 덕분도 있죠. 넥슨 역시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여러 컨텐츠를 준비 중인데요, 다양한 전개를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는 '블루 아카이브'가 매출을 얼마 내는 게임으로 기억되기보다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는 IP로 정착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열심히 피드백을 듣고 업데이트를 하려고 하니, 앞으로도 '블루 아카이브'와 넷게임즈에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QnA

    Q. '국내 게임을 일본에 수출한다'가 아닌 '일본에 게임을 먼저 출시한다'라는 결정을 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말 많이 궁금해하시는 내용입니다. 넷게임즈의 전작 오버히트 같은 경우엔 한국에서 먼저 출시한 후 일본 진출을 위해 많은 부분을 고치고 수출했는데, 생각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서브컬처 장르는 처음부터 일본을 겨냥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서브컬처 시장인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한국에 역수입해도 반응이 좋지 않겠냐는 판단이었죠. 사실 단순 PD로서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인데, 대표님이 일본에 먼저 출시하자고 제안하신 거고 그 전략이 잘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Q. 피규어를 제작하는 유저입니다. 2차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2차 창작물 판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알고 싶습니다.

    일본 퍼블리셔 요스타는 따로 가이드라인을 공지한 바가 있는 거로 압니다. '상업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2차 창작이 가능하다'라고 발표한 했던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도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공지하기 위해 넥슨과 협의 중입니다. 넥슨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메이플 스토리나 다른 게임들도 비슷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담길 듯합니다.


    Q. 일본에서 하츠네 미쿠와 콜라보을 진행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혹시 특별히 콜라보하고싶은 IP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과 사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더라고요. 미쿠 같은 경우엔 개인적으로도 하고 싶었지만, 사업적인 기회가 잘 맞았기에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어떤 IP와 콜라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논의 중인데요. 개인적으로 원하는 IP가 있다기보다 해당 IP가 게임의 전체적인 컨셉과 잘 맞는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IP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사업적으로 타이밍이 잘 맞는지 등을 따져서 결정할 것입니다.


    Q. 일본에선 콜라보 카페나 피규어, 코미컬라이징 등 다양한 2차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시 '블루 아카이브'의 애니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애니화는 정말 하고 싶죠. 그런데 애니화는 준비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리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사업적인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클리어해야 될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블루 아카이브'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저희도 아이디어가 있고 요스타도 굉장히 많은 제안을 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서로 협의를 하며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진행된 것들도 있지만 진행할 것들도 굉장히 많아서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걸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Q. '블루 아카이브'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이 인상 깊었는데요. 그들에게 마케팅을 맡기게 된 계기와 향후에도 콜라보을 이어갈 의향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글로벌 마케팅은 쉽지 않은 부분이죠. 이를 위해 넥슨 사업부 분들과 논의하던 중 '블루 아카이브'가 타게팅하는 유저들과 버추얼 인플루언서 팬분들의 접점이 많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홀로라이브' 소속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넥슨 측에서는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었지만 '블루 아카이브'라면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잘 진행된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고요. 앞으로도 예정된 게 있기 때문에 기대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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