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앞에는 명예도 근성도 동족도 없다

오의덕 기자 | 댓글: 127개 |





2월 2일,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작년 말부터 대대적으로 시작된 블리자드의 불타는 성전 광고물의 멘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나 와우인벤 처럼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멘트 자체가 주는 진부함이 더해져 일반인들에게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의 문제로 연기를 거듭하다가 비로소 확장팩 오픈베타 서비스가 시작된 바로 그 날은 정말로 와우 유저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하늘을 나는 탈 것'과 '70레벨 캐릭터', '새롭게 추가되는 던전들과 눈이 돌아가는 아이템들'.

오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되자 마자 확장팩의 모든 컨텐츠들을 "내가 직접 다 해버리겠다" 라는 필사의 각오(?)로 수많은 유저들이 일시에 뛰어들었고, 한 때 아웃랜드와 신규 종족 시작마을은 포화상태를 넘어서 유저들의 캐릭터가 새로운 컨텐츠들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었다.


퀘스트 관련 NPC를 클릭하기 위해 카메라 시점을 이리저리 돌려, 빈틈(?)을 발견, 퀘스트를 수락했 을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고, 중립 NPC를 클릭하다 미스가 발생, 상대 진영 유저를 공격해버렸을 때는 순간 당황스러워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도 했었다.









아차! 아웃랜드는 무한 PVP, 적자생존의 세계였지.


확장팩 클로즈베타 유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저들, 그리고 기자 또한 확장팩 본서버 출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많이 예상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아웃랜드 전 지역의 무한 PvP" 현상이었다.


아웃랜드의 각 지역들은 야외 PvP 컨텐츠와 그 보상아이템이 상당히 잘 구현되어 있고, 퀘스트 수행 장소와 관련 몬스터들도 양 진영이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상대진영 간의 PvP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터졌다. 지옥불 반도 퀘스트 중에서 스랄마 북쪽 "멸망의 괴철로" 지역에 "간아그 하수인"과 "서슬 톱날"을 처치하는 퀘스트가 있다. 문제는 호드, 얼라이언스 모두 동일한 내용의 퀘스트가 존재하고, 협소한 지역에 몹의 개체수도 적은데다가 몹의 재생성 또한 매우 느리다는데 있었다.








완전 소중 몬스터 "간아그 하수인"을 두고 얼라이언스와 호드 유저 몇몇이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두 눈을 부릅뜨고 재생성 되기를 바라면서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던 중, 어떤 진영이 먼저 알 수 없으나 몹을 사냥 중인 유저의 뒤로 가서 무시무시한 칼을 들이대는 사건, 쉽게 말하면 "뒤치기"가 발생했다. -_-;


옛말에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했다. 곧 이어, 암살을 당한 유저가 여러 친구(?)들을 대동해서 나타났고, 그 즉시 몇 차례의 파티급 PvP가 발생했다. 무덤 또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절세 미인" 아니 "간아그 하수인"을 사이에 둔 (-_-) 처절한 전투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계속 해서 밀려오는 상대진영과의 PvP에 아웃랜드에서의 부품 꿈은 어느새 잊혀지고, 심신은 지쳐갔지만, 역시나 우리의 와우유저들은 퀘스트와 레벨업에 대한 집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좁은 멸망의 괴철로 지역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려지게 되었고, 호드와 얼라이언스 각 진영은 그 선을 경계로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며, 서로 대치하면서 각각의 구역(?)안에서 퀘스트를 수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간아그 하수인'을 한 마리 더 잡아 보겠다고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상대 진영 구역에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조준사격부터 시작해서 얼음 화살, 돌진 + 죽격 콤보 등의 무지비한 공격에 바닥을 보는 처참한 운명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이것이 바로 '아웃랜드'로구나."

만레벨 70을 달성하기 위해서 앞으로 무수히 많은 고통과 수난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의 눈앞은 캄캄해져만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자가 생각한 "고통과 수난" 은 역시나 계속되었지만 그 양상은 예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어 갔다.




진정한 적은 과연 누구인가?


엄청난 유저의 수와 렉 현상을 견디다 못해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레벨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기자는 지옥불 반도의 퀘스트는 뒤로 미뤄두고 두 번째 지역인 장가르 습지대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지옥불 반도보다 렉은 적었고, 겉으로 보기에 유저의 수도 그렇게 많지 않은 듯 했다. 와우인벤 퀘스트 공략작업을 수 차례나 진행했었기에 퀘스트 공략은 이미 머리 속에 모조리 다 들어 있었고, 그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레벨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퀘스트 수행을 위해 어디를 가도 몹은 시체만 있었고, 오로지 유저들만 바글바글했다. 대군주 고어피스트를 잡으러 가도, 므라게쉬를 잡으러 가도, 공포의 집게발을 잡으러 가도 만날 수 있는 것은 몹의 시체와 재생성을 기다리는 양 진영 유저들 뿐이었다.








.....전쟁.....?


아웃랜드에서 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뒤에서 치명적인 매복을 날리던 언데드 도적은 없었지만, 힘든 퀘스트를 도와주면서 방긋 웃어주는 초롱초롱한 눈의 타우렌 전사는 있었다.


"그래 쉬운 퀘스트부터 하나씩 하자."

장가르 습지대를 탈것을 타고 종횡무진하며 고생 끝에 '늪송곳니 가오리'를 발견하고 얼음 화살을 시전하는 순간, 가오리를 향한 같은 진영 전사의 돌진. ...-_-;


"앗싸! 초롱 버섯 발견!"

즉시 말에서 내려 버섯을 채집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이미 그 버섯을 채집하고 있던 유저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와 괜히 멋쩍어 하며 발걸음을 돌려야만 힐 때도 있었다.








한 마리의 몹을 향해 돌진하는 수 많은 유저들.

지나치며 구경하면 단순히 재미난 풍경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경쟁에 참가하는 본인은 머리에 피가 마를 정로로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아웃랜드의 멋진 배경을 둘러보며 감탄할 수도, 워크래프트 역사관과 잘 어우러진 퀘스트를 음미하며 색다른 재미도 발견할 수 없다.


공개 채팅창에는 퀘스트 몹과 퀘스트 아이템의 소유권 문제로 같은 진영 간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네임드 몹이 재생성되는 자리에는 기다리는 유저들 사이에 웃지 못할 긴장감만이 맴돌 뿐이다. 또, 각 직업마다 퀘스트 몹을 남들보다 빠르게 공격하기 위한, 다시 말해 "선빵"을 치기 위한 비법을 연구, 개발해 아웃랜드 온 사방에서는 퀘스트 몹 쟁탈전이 펼쳐지고 있다.




와우 = 레벨업 게임?


확장팩 오픈 전에 예상했던 '상대 진영과의 무한 야외 PvP'는 완전히 빗나가고, 현재의 와우는 '호드 대 얼라이언스' 혹은 '연합군 대 불타는 군단'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오직 퀘스트와 레벨업을 빨리 하려는 유저들간의 무한 경쟁 구도가 '주'가 되고 있다.


기자 또한 레벨업 경쟁레이스에 동참하고 있고, 이 문제는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성격의 것이지만, 우리가 와우라는 게임의 역사관과 배경, 구현된 컨텐츠를 곰곰히 생각해 볼 때 작금의 현상은 뭔가 이상하고 께름칙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 매너 좋은 유저가 많기로 소문난 와우에서 상대방과의 분쟁, 말싸움, 욕설과 비난을 자주 목격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되는 분쟁과 퀘스트 경쟁에 지친 한 유저가 내뱉은 말이다.


"레벨업 앞에서는 얼라이언스의 명예도, 호드의 근성도,
동족 간의 끈끈한 의리도 없더라."







[ 스랄의 편지,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ausia ]



WOW Inven - Vito
(vito@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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