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한' 각인은 정말 필요한 걸까?

게임뉴스 | 최민호 기자 | 댓글: 749개 |
북미/유럽 서버 아르고스 업데이트와 함께 한국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해외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모험가들에게는 '아르고스'의 패턴이 크게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즉사급 패턴'으로 알려진 문양 패턴, 악명 높은 3페이즈의 안/박 패턴이나 뒷발차기 등 한국 서버 기준으로 한 방에 캐릭터가 폭사하는 패턴들을 맞고도 북미/유럽의 모험가들은 멀쩡하게 일어나 던전을 진행했다.

이에 '해외 서버는 아르고스를 하향해 출시한 것 아니냐'는 소란도 있었지만, 이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원인은 간단했는데, 아르고스를 트라이하는 해외 모험가 중 누구도 '원한' 각인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미/유럽 서버는 출시 후 한 달이 되는 시점에서 아르고스가 나왔기 때문에 3티어 장신구 매물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한국 서버만큼의 세팅 노하우도 없는 모험가들이 대부분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한 모험가도 '331', '333' 정도를 맞춰서 트라이하는 한국 아르고스와 해외 서버의 아르고스는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원한을 활성화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원한'을 끼는 것이 필수인 한국 서버의 입장에서는 해외 서버의 아르고스 트라이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흔히 '원한을 빼면 (생존 면에서) 더 좋은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의 결과를 실제로 지켜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원한' 각인은 정말 필요한 걸까?




▲ '원한(Grudge)'을 쓰지 않는 북미 모험가들(사진 출처 : 트위치 캡처)



▲ "유럽 서버는 원한을 쓰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한 모험가의 글(사진 출처 : 로아 레딧)



■ '주간 레이드'부터 국민 세팅 시작...한국 서버 원한의 역사

의외로 로스트아크가 오픈 베타부터 시즌 1까지는 긴 시간 동안 '원한'은 그렇게 필수적인 각인이 아니었다. 북미 서버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게 모험가들의 게임 이해도가 낮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 아이템 레벨을 높여 다음 콘텐츠로 가는 것이 중요했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원한 등 각인 세팅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특히, 원한 1레벨은 고블린 섬 등 에포나 의뢰 평판 보상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에포나 의뢰가 끝나는 시점이 되기 전까지는 활성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원한' 세팅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주간 레이드'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최종 콘텐츠인 '타이탈로스'까지 대미지에 집중한 세팅을 굳이 맞출 필요가 없었다. 직업 각인이나 '중갑 착용', '무적 회피' 등의 방어 각인을 써도 크게 지적받는 일이 없었다. 어려울망정 클리어 자체는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간 레이드는 정말 클리어가 불가능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주간 레이드 입장 기회를 날리는 것이 큰 손해였기 때문에(가디언 수확 시 랜덤으로 주간 레이드 입장권 획득) 누구나 대미지 세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당연하게 세팅하는 각인이지만 당시에는 국민 각인도 아니었고 얻기도 쉽지 않았는데, 1레벨 각인이 에포나 평판 보상, 2레벨 각인이 섬의 마음 상자에서 랜덤 드롭되는 '내실'로 얻는 각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원한 2는 환각의 섬, 고요한 안식의 섬 등에서 획득할 수 있었다. 확률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원한 2'를 활성화하냐 안 하냐가 제법 큰 차이를 낳았다. 원한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는 최초의 장면이었다.




▲ 시즌1 타이탈로스까지만 해도 각인, 특성비를 따지지 않았다



▲ 주간 레이드를 대표하는 두 각인 '부러진 뼈'와 '원한2'


이후 시간이 지나며 원한 2레벨이 부동의 1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직업 각인의 성능이 크게 좋지 않았고, '저주받은 인형(공격력 증가 10% 고정)', '예리한 둔기(2레벨 활성화 불가)' 등도 서브 각인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1레벨 효율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기습의 대가' 정도를 제외하면 시즌 1 세팅의 기본은 '원한 2'였다.

이런 기조는 각인 선택이 많이 늘어난 시즌 2에서도 이어졌다. 대대적인 각인 개편이 일어났지만, 원한만큼은 3레벨이 다른 각인보다 약 4% 강한 성능으로 출시됐고 각인을 2~3개 사용할 수 있었던 시즌 2초반부나 각인을 최대 6개 활성화시킬 수 있는 현재까지 '국민 세팅'의 기본 중 기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픈 베타를 거쳐 시즌2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험가라면 '원한' 사용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1레벨부터 3레벨까지 그 효율성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원한 세팅의 강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원한, 정말 필요한 걸까?

1. 선택이 아닌 필수...모두에게 강요되는 페널티

원한의 가장 큰 문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다. 서포터를 제외한 모든 클래스가 강제로 원한을 착용해 20%의 피해를 더 받게 된다. 개인의 측면에서나 공격대 측면에서 방어 능력이 많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의도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본래는 물약을 먹어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20%의 피해를 더 받아 한 번에 사망한다면 기회가 없어진다. 시즌 2 어비스 던전과 군단장 레이드에서 '생존'은 클리어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딜러 한 명의 죽음은 언제나 가장 큰 페널티이자 재도전 사유 중 하나다. 모든 딜러가 원한을 착용하고 사망하는 실수를 한 번씩 한다면 공격대 전체 공략 측면에서도 좋을 것이 없다.

흔히 '즉사급'으로 알려진 패턴들은 원한을 제외하기만 해도 쉽게 생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원한이 없다면 공략의 어려움이 감소하고 파티 전체의 안정성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 원한으로 인해 대응 못하는 죽음을 맞는 경우가 제법 있다


2. 체력/방어 계수가 낮거나 구조 상 맞딜이 불가피한 경우

만약 '원한이 없다면' 플레이 스타일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구조적으로 패턴을 맞으며 공격해야 하는 '전투 태세 워로드'나 '블래스터' 등은 패턴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크게 낮아지며, 체력/방어 계수가 낮은 '광기 버서커'라면 대응 기회 없이 사망하는 상황이 줄어 물약 등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공격대의 방어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보스의 패턴이 강력하다면, 모든 클래스가 회피에만 집중하게 되고 공격대 전체의 대미지가 낮아지게 된다. 원한이 없다면 클래스의 특성에 따라 패턴을 무시하고 공격하거나 보호막을 이용해 버티는 등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일부 패턴들이 확실히 개선될 수 있다.




▲ 일부 클래스는 원한이 없다면 오히려 대미지 포텐이 늘어날 수 있다


3. 원한으로 인해 각인 다양성이 사라진다

현재 로스트아크는 3레벨 각인은 총 5개, 1~2레벨은 1개를 장착할 수 있다. 총 6개의 각인을 사용할 수 있는 셈인데, 이중 직업 각인을 보통 사용하니 한 자리가 없어지고 '원한'이 필수로 들어가 한 자리가 사라진다. 6칸이 있지만 실질 사용할 수 있는 각인은 3~4개가 전부다. 어짜피 모두가 원한을 사용하고 있다면 모든 캐릭터의 대미지를 20% 올리고, 체력/방어 계수를 20% 하향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각인은 수십 종이 있지만, 원한으로 인해 다양한 가능성이 막혀 있는 셈이다.

원한을 전면 개편하거나, 원한을 강요하는 현재 상황이 사라진다면 누군가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위해 원한을 채용하고, 누군가는 안정성을 위해 원한을 빼는 등의 '선택'이 가능해진다. 각인을 고를 수 있는데 굳이 1개 각인의 효율을 높여 선택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현재는 그 효율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원한을 안 고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 반대 의견 : 이미 '원한'을 전제로 만들어진 밸런스...굳이 바꿀 필요 없어

1. 이미 원한은 기본 전제다

앞선 의견과 마찬가지로 원한은 기본 전제다. 공식적인 의견이라 할 순 없지만, 암묵적으로 로스트아크의 모든 던전들은 '원한3'을 착용한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말은 원한3을 끼고도 깨지 못하는 던전이 없다는 의미다. 20%의 페널티를 받고도 충분히 깰 수 있는데, 굳이 원한3을 빼가며 딜량을 축소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원한을 끼고 생존이 힘들 정도 모험가라면, 던전 숙련도를 올리거나 숙련자 팟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된다.

특히, 시즌 2 로스트아크는 다양한 수단으로 캐릭터의 대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캐릭터의 세팅 격차는 4~5% 내외로 그리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모든 딜러가 사용하고 있는 원한을 빼는 것은 받는 피해 20% 이상의 큰 페널티를 스스로 지는 것과 비슷하다. 모두가 원한을 사용하기 때문에, 혼자 원한을 빼면 그만큼 뒤처지는 셈이다. 딜러로서 고점을 보길 원한다면 원한을 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북미 서버 모험가들 또한 최종 세팅으로는 원한을 추천한다(출처 : 유튜브 캡쳐)


2. 지금도 원한을 빼고 세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원한을 빼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세팅, 아이템 레벨을 맞춰 놓았다면, 원한을 챙기지 않고 공개 파티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공대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펙을 던전 입장 레벨보다 조금 높인다는 전제하에 거의 모든 파티에 원한 없이 구인구직이 된다.

약간의 (인식적인)손해를 감수하고 20%의 받는 피해 감소 효과를 누리는 셈이니, 모험가에 따라서는 충분히 고를 수 있는 선택이다. 대신 다른 세팅을 완벽에 가깝게 맞춰야 하겠지만, 이 또한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원한 각인을 빼는 선택이 가능한데, 각인을 하향해가며 밸런스를 맞출 필요는 없다.


3. 원한 각인의 4% 차이는 정말 크다

시즌 2 후반부를 달리고 있는 지금, 1~2%의 차이는 정말 크다. 엔드급 아이템 레벨을 달성했다는 가정하에 남들보다 1% 좋은 세팅을 맞추기 위해 (팔찌, 어빌리티 스톤, 품질 등) 백만 단위의 골드가 들어가기도 한다. 당장 고대 등급 무기 1강당 대미지 상승률이 1.6%이며 7/7 어빌리티 스톤과 9/7 어빌리티 스톤의 대미지 차이가 약 4%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2~4%의 대미지 손실을 본다는 것은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미지와 스펙은 상대적이며, 로스트아크는 한 개의 성장 수단을 졸업하면 더는 피해량을 올릴 수 없다(품질 100, 무기 25강 등). 캐릭터의 스펙이 높아질수록 캐릭터의 체력, 방어력은 어렵지 않게 올릴 수 있지만, 대미지는 점점 올리기 어려워진다. 다른 방법으로 원한의 대미지를 따라잡으려면 골드가 얼마나 소모될지 알 수 없는 셈이다.

◎ 원한(20%)과 저주받은 인형(16%)의 차이

- 무기 품질 90과 품질 100의 차이
- 고대 무기 2.5단계 재련 차이(1강당 1.6% 대미지 상승)
- 333331각인과 333332각인의 차이(9/7 어빌리티 스톤)
- 가디언의 광기 12각성 효과 차이


4. 사용할만한 범용 각인이 더 나와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

원한을 빼거나 하향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원한이 '다양성을 제한한다'고는 하나 원한을 빼면 넣을 각인이 딱히 없는 클래스도 존재한다. 아르카나, 호크아이 등이 대표적이다. 범용 각인 여럿 준비되어 있지만, 그중 사용할 수 있는 각인의 숫자는 매우 적다. '예리한 둔기, 저주받은 인형, 아드레날린' 등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효과가 강력해서도 있지만, 특유의 범용성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범용성이 좋은 원한이 빠진다면, 각인 선택이 어려워질 수 있다.

원한을 하향하거나 제외하기 위해서는 아드레날린처럼 대안이 될 수 있는 각인의 등장이 필요하다. 당장 '저주받은 인형'을 대체할 각인도 마땅히 없는데, 원한을 '질량증가'나 '돌격대장' 등 다른 범용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 원한을 빼면 딱히 넣을 것이 없는 클래스도 있다



▲ 돌격대장이나 질량 증가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 어찌됐건 밸런스의 변화는 필요하다

모험가들의 인식이 극단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원한' 중심의 각인 세팅이 변화를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반대로 원한 중심으로 디자인된 보스 몬스터들의 패턴이나 대미지 세팅이 바뀔 가능성도 높지 않다. '원한'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하락시키는 순간 모든 캐릭터가 중갑착용을 공짜로 장착하는 것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파워 각인인 '원한' 위에 밸런스의 균형이 위태롭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원한의 능력치를 하향하거나 효과를 변경한다면, 자연스럽게 다양성 문제나 특정 캐릭터의 불편한 구조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

또, 보스를 상대로 하는 체감 대미지는 시즌 초와 후반부가 극적으로 다르기 때문에(방어구 레벨 커트라인, 공개 모집 파티의 평균 레벨, 패턴 숙련도 등) 일시적으로 원한이 문제가 되더라도 던전 발매 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논란이 사라지기도 한다. 새 던전이 나오면 주기적으로 '원한' 관련한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이런 문제를 모두 고려해 보스 대미지 밸런스가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누군가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원한의 본래 콘셉트를 잘 살리며 플레이가 가능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원한을 빼고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질 것이다.




▲ 원한과 관련한 문제는 언제든 다시 논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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