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인문학의 만남, '디그라 게임과학 클래스'

게임뉴스 | 김수진 기자 |



국내 최초 게임과학 대중강연 시리즈인 '디그라 게임과학 클래스'가 26일 서울 광화문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첫 개최됐다. 이번 클래스는 게임과학연구원과 디그라한국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디그라 게임과학 클래스는 세계 게임 연구자들의 게임과학 연구를 정기적으로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 게임 산업과 문화에 글로벌 인사이트를 강화하며 대중의 이해 증진을 목표로 한다. 시작은 '스페인'으로, 스페인 게임 연구자인 빅터 나바로-리메살 교수, 베아트리즈 페레즈 자파타 박사의 게임과학 연구 동향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윤태진 디그라한국학회장

클래스는 윤태진 디그라한국학회장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윤 학회장은 디그라한국학회를 올봄 창립해 여러 일을 하고 있다며, 학회 설립 취지를 공유했다. 디그라한국학회는 다양한 국제 게임 연구를 교류하고, 게임 연구자 저변을 확대할 예정이다. 윤 학회장은 단순히 게임학과, 대학원이라는 규격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같이 모여 의견을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 학회장은 “게임이라는 것이 공학적, 미학적, 사회학적, 문화학적인 면 등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며 “금일 발표 역시 인문학과 게임의 만남인 만큼, 게임을 바라볼 시각을 넓힐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 빅터 나바로-리메살 교수

첫 강연자인 빅터 나바로-리메살 교수는 디그라스페인 지회장이자 폼페우 파브라 대학 소속으로,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 '루도-미쏠로지'에 대해 발표했다. 연구는 게임이라는 기존 문화유산의 현대적 해석과 새롭게 창조된 신화가 사회적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빅터 교수의 프로젝트는 비디오게임이 어떻게 신화적 의미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관련 내용은 굉장히 추상적일 수 있지만 게임이 스토리만 텔링하는 게 아니라, 의미도 만들어나간다는 부분을 연구한다. 스스로를 국제주의적인 이상주이자라고 밝힌 빅터 교수는, 신화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신화가 굉장히 옛날 것,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역시 신화의 시대라고 이야기했다. 신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며, 루도미솔로지(Ludomythology)는 게임과 신화를 연결하고자하는 개념이라고 이야기했다. 게임 속에 큰 칼이 등장할 경우, 그 칼은 하나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토리를 전하는 요소 그 이상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그 칼은 영웅의 칼일 수도 있고, 저주를 내리는 칼이 될 수도 있다.




빅터 교수는 신화란 모티브로 구성된 이야기로, 재현을 통해 공동체에서 의미를 가지며, 신화를 통해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화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탐구다. 신화는 공동체적이며, 신화를 공유하고 이를 활용해 현실을 설명하고 탐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귀한 도둑이라는 신화적 주제는 한국의 홍길동, 유럽의 로빈 후드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도둑은 하나의 조각이고, 그 고귀한 도둑이 불의에 대항하는 것이 전체 이야기다.

그리고 신화는 항상 순환한다. 신화에 들어가는 조각, 즉 신화소가 순환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스토리, 커뮤니티, 그리고 어드벤쳐, 이런 것들이 비디오 게임에서 항상 사용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신화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일관된 체계다. 그리스 신화나 한국 신화와 같은 영웅적 스토리 뿐 아니라, 주변의 개인적 경험도 신화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직면한 개인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스토리, 즉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빅터 교수는 현재의 신화 혹은 신화적 구조들은 몇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며, 보물 찾기, 귀향, 복수, 건국, 권력욕, 낯선 사람: 후원자와 파괴자, 타임 루프 내러티브, 배틀 로얄, 국경과 난민, 반체제, 특이점, 붕괴, 자수성가, 느린 삶 등을 예시로 들었다. 특히 그 중 배틀 로얄의 경우, 일본 소설과 영화가 현재 하나의 게임 장르로 완벽히 작용하기에, 이 자체를 신화적 요소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요약하자면, 신화란 사회적인 상상이자 문화적 강박이며, 반복과 자연스러움, 탐험, 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빅터 교수는 자신의 연구팀이 그동안 해왔던 몇 가지 케이스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한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과 디스트레인트2에 대한 연구다. 이외에도 쇼와 시대 후반의 향수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 모바일 게임 회사 Gagex, 현대 신화적 요소로서의 데스 스트랜딩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빅터 교수는 루도미솔로지와 지역적인 관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게임은 분명 국제적인 콘텐츠이지만,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다가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소의 자연스러운 반복적 구조는 다른 픽션 뿐 아니라 게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 공동체, 커뮤니티에 중요하게 작동하며, 고전적인 신화 그 이상을 다룬다. 또한 세계관 역시 세계에 대한 탐구로서의 신화적 요소를 보여준다.



▲ 베아트리즈 페레즈 자파타 박사

두 번째 강연자는 같은 대학의 베아트리즈 페레즈 자파타 박사로, 게임 속에서 다루어지는 트라우마의 형성 과정을 탐구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어떻게 트라우마 담론을 새롭게 구성하는지 설명했다.

베아트리즈 박사는 트라우마가 비디오 게임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그리고 디스트레인트를 통한 케이스 결과를 공유했다. 트라우마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신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마음의 상처라고도 볼 수 있다. 관련 이론은 대부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관련이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병이 생기기도 했다.

트라우마는 단일 사건으로부터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단일 사건이 트리거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라는 부분과 관련해서다.

그렇다면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까. 우선 개인적 트라우마가 있다. 사회적으로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을 거치면 개인에게 트라우마가 된다. 또한 나라별로 다르게 다가오기에 문화적인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 남아공은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반대로 말을 해야 트라우마가 고쳐진다고 여긴다. 세대 간의 트라우마도 있다. 과거 세대의 임팩트가 후대에 전달되는 그러한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는 20세기, 픽션, 전쟁과 학대, 식민지화 등을 통해 서사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픽션 속 트라우마의 형태, 트라우마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활용된다. 단편화, 상호텍스트성, 반복, 비선형, 격차, 관점의 변화, 시각적 이미지 등이 그것이다. 트라우마 서사는 반복성이 많고, 시간 흐름이 비선형적이다. 스토리 중에 공백이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이 등장한다. 특정 역사나 이벤트 등에 대한 캐릭터 관점이 다르다. 그리고 상당히 은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관련해서 문제도 발생한다. 너무 개인적이거나, 너무 서구적이거나, 너무 많은 트라우마를 넣는 경우다. 너무 개인적일 경우 단일 사건에 대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맥락을 확인할 수 없다. 너무 많은 트라우마가 들어가면 그 어떤 것도 트라우마가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제가 있다.




이어 베아트리즈 박사는 비디오 게임에서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비디오게임에서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때는 비슷한 미학적 요소가 등장한다.

안개 낀 광장에 주인공이 혼자 서있거나, 암울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상당히 괴기하고 섬뜩한 요소 혹은 수채화와 같은 우울한 요소를 넣는다거나, 다양한 단계의 슬픔을 기괴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리고 게임에서 트라우마가 주제로 사용되는 경우, 상실, 괴물과 같은 잠재의식, 정신 질환을 주로 이야기한다.




박사는 게임이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의 예시로 ‘디스트레인트’ 시리즈를 소개했다. 디스트레인트는 사채업자인 주인공 프라이스가 나이 든 부인의 재산을 압류하는 일을 수행하며 겪는 일들, 인간성을 팔아버린 대가를 확인하는 호러 어드벤처 인디게임이다.

게임은 프라이스가 인간성과 탐욕을 맞바꾼 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망가져 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2편에서는 1편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은 프라이스가 회복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특히 2편의 경우 프라이스의 다양한 감정이 등장해 1편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아트리즈 박사는 마지막으로 비디오 게임이 트라우마를 다루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게임들이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이며 역사적 맥락에서 표현되어야 하며, 서사 및 맥락과 윤리적 측면 역시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