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경일 원장 "게임 본질은 피드백, 산업 정체성 재정립해야"

인터뷰 | 이두현,김수진 기자 |
2021년, 게임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게임문화재단 산하에 '게임과학연구원'이 설립됐다. 게임의 긍정적 가치와 효용에 대한 학술 연구를 통해 올바른 게임 문화를 만들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 게임 연구 전문 기관이다.

연구원의 정체성은 역대 리더십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초대 원장인 故 이경민 서울대 교수(게임과 뇌), 2대 원장인 윤태진 연세대 교수(게임과 사람), 그리고 신임 원장인 김경일 아주대 교수(게임과 인지)로 이어지는 흐름은 의학, 미디어학, 심리학을 아우르며 게임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려는 연구원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김경일 원장은 올해 2월 취임했다. 김 원장은 대중에게 인지심리학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 게임과학연구원 김경일 원장

1. "게임이라는 단어가 품은 산업의 확장성을 볼 때입니다."

김경일 원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며 한국 산업 전체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즉 '협업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다양한 산업의 융합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시너지를 내는 반면, 한국의 기업들은 10년 뒤의 모습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게임산업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게임’이라는 단어가 산업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온전히 반영하거나 인식시키지 못하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과거 모든 차를 '자가용'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SUV, 세단 등으로 분화했습니다. 한때 모든 연예인을 '딴따라'라 폄하했지만, 이제는 아이돌, 배우, 뮤지션으로 나눠 부릅니다. 전문화는 언어의 분화를 낳습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단어는 그 확장성에 비해 아직 분화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도박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 오늘날의 모든 비디오 게임에 똑같이 적용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김 원장은 분화되지 않은 단어는 편견을 낳고 산업의 전문성을 저해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게임 회사”라는 말 속에 담긴 가능성과 영역을 더욱 넓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 게임의 본질: '재미'가 아닌 '피드백 과학'

게임업계 일부에서는 "게임은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김 원장은 이 말을 "음식은 맛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같이, 본질의 1%만 보는 지극히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인지심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게임의 핵심은 '재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뇌를 fMRI로 찍어보면, 게임을 할 때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할 때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며, 게이머는 게임 후 피로감을 느낍니다. 게임은 레저가 아니라 '일'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 방해 요소를 차단하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등 과업에 임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런데 왜 몰입할까요? 재미있어서 몰입하는 게 아니라, 몰입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인간이 게임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는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피드백(Feedback)' 때문입니다. 내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즉각적으로 확인하며 나의 정체성을 느끼고, '소정의 보람' 즉, 성취감을 얻는 과정입니다. 애니팡에서 점수와 랭킹을 빼면 아무도 5분 이상 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게임산업의 본질은 '피드백 과학(Feedback Science)'입니다."





▲ "결국 게임산업의 본질은 '피드백 과학'입니다"

3. 연구원의 운영 철학: '위탁연구'을 넘어 '연결'로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게임과학연구원의 역할과 운영 철학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김 원장은 기존의 게임 연구가 대부분 특정 기업의 필요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 '위탁연구'에 가까웠다고 본다. 그는 연구원이 이런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게임과학연구원의 목표는 특정 기업의 납품용 보고서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산업들을 연결시켜 '우연한 기회를 만들 확률'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겁니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스타일러는 엔지니어들이 잦은 해외 출장에서 직접 느낀 불편함, 즉 '필요'에서 탄생한 예기치 않은 발명품입니다. 이처럼 혁신은 계획이 아닌,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이 부딪힐 때의 '우연'에서 나옵니다. 우리 연구원은 게임사와 다른 산업의 회사를 만나게 하는 것과 같은 연구를 통해, 한쪽의 '일'과 다른 쪽의 '게임적 요소(피드백)'를 제시할 것입니다."

연구원은 단순히 철학적 담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 적성평가 기술 개발'이나 '헤비게이머 정체성 연구' 같은 구체적인 과제를 통해 실증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해외 중요 학술 서적인 'Play Matters'의 번역 출판을 통해 국내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4. 산업의 미래: '정체성'을 파는 '선도국'을 향하여

그는 우리 게임산업이 현재 정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 '무엇을 파는 업(業)'인지에 대한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 답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인 '선도국'에서 찾았다.



▲ "연구원, 위탁 연구소를 넘어 게임산업의 철학적 토대 마련"

"선진국이 돈 많고 힘센 나라라면, 선도국은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즉 '정체성'을 파는 나라입니다. K-팝에서 BTS가 팬들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피드백'으로 성공했듯, 이제 한국은 정체성을 파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 자체가 이미 고도로 '게임화' 되어 있습니다. 버스 도착 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처럼,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하나의 커다란 게임기 안에 들어와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게임은 바로 이 '정체성'을 파는 산업의 정점에 있습니다. 그래픽이나 사운드는 유입 요건일 뿐, 유저를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은 게임이 주는 피드백을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입니다. 우리 연구원은 게임산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인류의 고단한 노동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고, 평범한 85%의 사람들에게 몰입과 성취의 기회를 제공한다'와 같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인류에 대한 기여를 설명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김경일 원장이 그리는 게임과학연구원의 역할은 명확하다. 단기적인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위탁 연구소'를 넘어, 게임의 본질을 탐구하고 산업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연구원은 게임이라는 단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피드백 과학'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산업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도록 돕고자 한다. 또한, 게임과 전혀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토양을 만들고, 개발자들에게는 익숙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각도'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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