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근거도 논리도 후진 '게임 탓'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60개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또 게임 탓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기사가 8일 게재됐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10대, 20대 청소년층이 주로 즐기는 국내 인기 상위 게임 10개 가운데 4개가 상대를 처치하는 FPS 장르라면서 이러한 게임들이 폭력성을 조장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2001년 대한가정학회지가 발표한 '남자 청소년의 컴퓨터 게임 이용과 공격성'과 2013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교실 발표한 '게임의 공격성' 논문을 예시로 들면서 "잔인한 게임에 많이 노출될수록 실제 공격성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논문과 연구 결과들이 게임과 폭력성의 인과관계를 증명한다는 해당 기사의 논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반대로 게임과 폭력성은 연관이 없다는 논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올 초 스탠포드 대학의 브레인스톰 연구소의 발표가 대표적이다. 해당 발표는 미국 내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된 것에 대해서 게임이 정말 총기 난사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사한 내용이다.

브레인스톰 연구소는 몇 달에 걸쳐서 비디오 게임과 폭력적인 행동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모든 연구와 해당 분야의 문헌 등을 포함한 82개의 의학 연구 논문을 검토했고 그 결과 비디오 게임과 총기 난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브레인스톰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이 폭력성을 조장한다면 비디오 게임 등장 전후로 범죄율에도 변화가 생겨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덧붙이면서 오히려 인기 있고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출시하면 역으로 폭력 범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폭력적인 감성의 배출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을 정도다.

비단, 논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기사를 보면 여러모로 비약으로 가득 찬 걸 볼 수 있다. 유저와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상대 팀을 많이 죽여 이기고 있을 땐 기분이 확 좋아진다"는 문구는 얼핏 사이코패스와도 같은 인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처치함으로써 승수를 올리는 게임에서 이기고 있는데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기니까 재미있는 거지 상대를 처치해서 재미있는 게 아님에도 교묘하게 의도를 왜곡하는 문구다.

이러한 행태는 지난 2001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임요환 선수에게 모욕적인 인터뷰를 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게이머로서 남부럽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임요환 선수에게 "PK를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상대를 죽이고 싶은 기분이 드느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있건만, 모든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게임이라는 분위기는 아직도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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