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서브컬쳐 플랫폼, 빌리빌리가 주최하는 '빌리빌리 월드'가 심상치 않다. 2017년부터 개최한 이 행사가 해외, 그리고 국내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일부 중국 서브컬쳐에 관심 있는 유저들 사이에 알음알음 돌기는 했지만, 작년 '블루 아카이브'가 중국 출시에 앞서 빌리빌리 월드에 참가하고 나서야 그 이름을 알게 된 유저가 많다.
2017년, 그 시기는 점차 중국 서브컬쳐 게임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그런 만큼 '빌리빌리 월드' 역시도 중국 내수, 그리고 중국 시장을 노리고 이미 진출해있던 해외의 다양한 굿즈 판매사 위주로 출전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던 시점에 코로나19로 인한 입국 제한에 판호 발급 중단까지 겹쳐지면서 더더욱 내수 위주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해외에선 관심을 두지 않던 '빌리빌리 월드'였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규모부터도 심상치 않다. 올해 결과는 아직 안 나왔으나, 상하이시 정부에 따르면 작년 빌리빌리 월드는 예약자 수 60만 명 돌파, 총 관람자 수 27만 명 이상으로 추정될 정도다. 그런 만큼 업계에서도 점차 빌리빌리 월드를 새롭게 주목해야 할 여름의 주요 행사 중 하나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라면, 폐쇄적인 중국 시장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판호나 여러 규제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서 해외 기업들이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다. 파트너사 혹은 지사를 통해서만 활동할 수 있으며, 판호가 나오지 않은 해외 게임이 행사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
혹은 해외 개발자들이 유저와 자유롭게 교류하는 장면도 잘 연상되지 않는다. 그간 중국의 여러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 개발자들을 보면 상당히 경직된 느낌이었으니까. 언어의 장벽도 있지만, 관계자들의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보이지 않는 규제가 몸을 옭아매는 듯한 분위기가 은연 중에 느껴지곤 했다. 해외 개발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발표를 하는 일이 코로나19 이전에는 종종 있었지만, 그때도 무언가 정해진 발언만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랬던 만큼 '빌리빌리 월드'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김용하 PD가 블루 아카이브 부스에서 유저들과 소통하거나 블루 아카이브 부스 특유의 디제잉 공연이 시작되면 다들 몰려와서 구호를 외쳐대는 광경은 그간 중국 게임쇼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여기에 아직 출시되지 않고 판호도 나오지 않은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부스 참가하는 건 물론, 개발진이 와서 유저들과 기념 촬영 및 사인회를 진행했다. 게다가 CDPR이 중국에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은 사이버펑크2077로 행사에 참가하는 건 물론, 본사 개발진과 스태프들까지 현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유저들과 소통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앞서 '사이버펑크2077'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빌리빌리 월드'는 좁은 의미의 서브컬쳐에만 국한한 행사가 아니었다. 사실 '서브컬쳐'라는 말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 아니던가. 빌리빌리에서는 더 넓은 범위로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망라하는 행사를 선보였다.
디즈니를 비롯해 각종 IP 테마관이 마련된 8관, 각종 IP 굿즈 및 스트리머-버튜버 존이 마련된 1관,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인 2, 3관 그리고 보드게임 및 TCG, 여성향과 2차 창작이 마련된 4관까지 총 5개의 전시관은 사뭇 놀라웠다. 그 규모도 규모지만, 중국하면 떠오르는 거대한 스케일의 부스만 늘어선 구성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작은 부스들도 각자의 테마를 내세우면서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게임 행사에서 보기 어려웠던 인디 게임사들의 참여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B2B 인근에서 구색맞추기식으로 있던 것과 달리,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포진한 2관에 배치하면서 여러 게임에 관심 있는 유저층이 인디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도 무협, 보드게임뿐만 아니라 '사이버펑크 2077', '원스 휴먼', '팬텀 블레이드 제로' 등 코어한 PC-콘솔 작품들을 직접 체험하고 현장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스트리머나 버튜버도 소위 말하는 대기업을 위한 메인 스테이지는 물론이고, 중소 스트리머 및 버튜버를 위한 라이브 스테이지나 스트리머존, 버튜버존을 따로 마련해둔 것도 이색적이었다. 보통 중국 행사하면 커다란 부스, 거대한 회사들 위주로 운영됐던 만큼 마치 코믹월드나 일러스타페스에 나온 서클 부스 같은 규모의 부스들이 모여있는 광경이 뭔가 낯설다고 할까. 그래서 처음엔 전부 다 2차 창작인 줄 알았지만, 알아보니 스트리머나 버튜버 굿즈 판매 혹은 버튜버가 직접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라이브를 하는 부스였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중소 업체들이 오프라인에서 활약하기 힘들다는 인상인 여타 중국 행사들과 달리, 그들이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물론 '빌리빌리 월드'는 아직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엔 이르다. 외국인이 접하기엔 복잡한 인증 절차나 티켓 구매 절차는 물론, 정보가 늦게 발표되는 등 중국 내에서 진행하는 행사 대부분의 문제를 빌리빌리 월드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빌리빌리 월드는 철저히 유저를 위한 행사라 B2B는 없고, 각 게임별 부스로 나오기 때문에 게임사 자체를 알리기가 쉽지 않다. 어느 한 회사가 여러 게임으로 참가하려고 해도 각 게임마다 따로따로 부스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또한 빌리빌리라는 플랫폼 홀더가 주도하는 행사인 만큼, 경쟁사들은 참가하지 않을 여지가 크다. 실제로 이번 '빌리빌리 월드'에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따로 소유하고 있는 텐센트, 탭탭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각각 중국 최대의 게임 회사, 중국 내에서 모바일 인디 게임 및 플랫폼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회사들이고, 자체 행사를 소화할 여력이 있는 회사들이다. 그외에도 자체 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플랫폼 홀더들이 관계된 게임들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빌리빌리 월드'는 앞으로 더 확장할 여지가 크다. 그간 '중국'하면 떠올랐던 거대하고 경직된 이미지가 아닌, 방대한 규모를 보여주면서도 유연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참가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벤트 현장에서 OST를 들으며 '떼창'을 하거나 오타게를 추고, 적극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개발자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젊은 혈기는 최근 중국 게임 행사에서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중국하면 떠오르는 검열, 자기감시라는 키워드가 그때만큼은 지워진 상태였다. 지하철에 타기 전 가방 검사를 받으면서야 다시금 여기가 중국이라는 것을 자각했으니 말이다.
물론 중국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접근 자체는 쉽지 않고, 워낙 많은 인파들이 모인 만큼 만일을 대비해 보안요원과 공안들이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긴 하다. 중국 시장 진출 자체도 여러 겹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으니, 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노린다면, '빌리빌리 월드'는 앞으로 반드시 체크해야 할 행사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협의적인 서브컬쳐 게임만 어필하는 것을 넘어서, 여러 장르까지 망라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행사의 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유연함과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구축해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여러 제약이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빌리빌리 월드'는 주목해봐야 할 행사 중 하나로 꼽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