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는 지난 27일, 차이나조이 개최에 앞서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의 컨퍼런스를 재개, 프로젝트 부활을 알렸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는 SIE가 2017년부터 중국의 콘솔 게임 개발사를 지원하기 위해 진행해온 프로젝트로, 여기에 선정된 중국 콘솔 게임들은 SIE의 기술 지원뿐만 아니라 차이나조이 등 게임쇼에서 유저 및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선보일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 이어졌으나, 2020년 코로나19의 발발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 각지의 게임쇼가 축소되고 교류가 줄어들면서 기존의 선정작에 대한 지원은 유지하되, 새로운 작품으로 확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유행의 종료와 함께 새로운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선정작을 추가로 발표, 차이나조이 무대에 선보였다.
사이언아이리스 게임의 쿼터뷰 로그라이크 액션, ‘윌리스’도 이번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2023에 선정된 작품 중 하나다. 디스토피아적인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가상 공간에 침투, 타겟의 정보를 빼내거나 혹은 회로를 과부하시켜서 암살하는 특수 요원 ‘윌 에이전트’들의 활약을 로그라이크 던전 크롤러 형태로 풀어냈다.
각종 사이보그들과 기계들이 등장하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무대로 하는 쿼터뷰 액션에 로그라이크라는 요소가 들어간 만큼, ‘윌리스’의 첫인상은 자연스럽게 슈퍼 자이언트의 게임이 연상됐다. 슈퍼 자이언트가 분위기 있는 사이버펑크 액션, 그리고 속도감 있는 쿼터뷰 로그라이크 액션 두 스타일에서 이미 유저들에게 각인될 만한 작품을 선보였던 개발사였지 않던가. 그 두 가지를 핵심으로 내세운 ‘윌리스’를 볼 때 자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할까. 이러한 인식을 어떻게 ‘윌리스’가 자신만의 요소로 지워내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인 셈이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발표 당시 네 명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공개했던 ‘윌리스’지만, 이번 시연 버전에서는 근접 무기를 주로 활용하는 ‘카웬 린’ 한 명만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렇듯 아직 개발 초기 단계지만, 이번 시연 버전에서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3D 콘솔 액션 게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분기 공격에 모바일 액션 RPG류에서 많이 활용하기 시작한 저스트 회피 이후 불렛타임을 활용한 빠른 딜링 템포가 그 좋은 예였다.
통상 로그라이크 액션에서는 처음부터 다수의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스킬을 보유하는 일이 드물다. 모든 로그라이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로그라이크의 특징으로 꼽히는 랜덤과 고난도 레벨 디자인은 플레이 타임을 확보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장르의 특징이 오랜 시간 동안 어필이 된 만큼, 초반에 다소 지지부진하게 등장하는 몹들을 때려잡는 과정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평생 그런 게 아니고 아이템이나 특성, 스킬 등이 갖춰지는 순간부터 그 구도가 점차 바뀌기 시작하니 말이다. 물론 그에 맞춰서 다수의 적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 혹은 까다로운 기믹이 숨어있는 필드 등 난관이 기다리지만, 그걸 컨트롤로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로그라이크’에서 기대하는 포인트다.
그러나 ‘윌리스’는 처음부터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분기 공격과 특수 공격 키로 제공됐다. 일반 공격으로 적을 하나하나 녹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찌보면 처음부터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스킬을 할당해준 셈이었다. 실제로 카웬의 분기 공격은 전방의 적을 넓게 검기로 베어버리거나, 전방위로 검기를 날려서 사방에 퍼져있는 적을 공격하고 일부 탄환도 막아버리는 호쾌함이 있었다. 물론 이를 무조건적으로 난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기 공격이나 특수 공격을 할 때마다 하단의 게이지가 줄어들고, 일반 공격으로 다시 게이지를 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도감을 불어넣는 또 다른 요소가 저스트 회피 이후의 불릿 타임, 작중에서는 ‘시공동결’이라고 일컫는 시스템이었다. 이미 모바일 액션 RPG를 했던 유저라면 극히 익숙한 시스템으로, 저스트회피를 하면 일순 무적 상태에서 느려진 적을 일방적으로 타격하면서 극딜을 하는 구도는 여기에서도 동일했다. 여기에 ‘윌리스’에서는 통상 게이지를 소모하는 공격들이 시공동결이 유지되는 동안 게이지 소모 없이 무한정 사용할 수 있기에 이를 얼마나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플레이의 체감 난이도 자체가 바뀌었다. 또한 쿨타임이 있어서 연달아 사용할 수 없기에 적의 어떤 패턴에 대응하느냐도 관건이었다.
단순히 쿼터뷰 액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가지 시스템은 빠르게 적을 소탕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재미를 제공하는 좋은 수단일 것이다. 그렇지만 무작위로 등장하는 적과 아이템, 그리고 장비 등등 ‘랜덤’ 요소의 조합이 얼마나 완성도가 높느냐가 로그라이크의 관건 아니던가. 앞서 언급한 내용은 어떤 수가 나와도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나열한 것인 만큼, 로그라이크로서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일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윌리스의 스테이지는 엄밀히 말해서 완벽하게 무작위는 아니었다. 보스까지 거치는 스테이지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보스는 동일했고, 패턴도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플레이해서 콘텐츠를 해금하게 되면 죽어도 일부 보상을 남겨서 업그레이드하는 이른바 ‘로그라이트’ 요소도 갖춘 상태였다.
그런 가벼움에 맞춰서 필드에서는 단순히 스펙을 올리는 선택지뿐만 아니라 감전, 빙결 등 다양한 효과를 제공하는 효과도 자주 등장했다. 물론 일반 공격을 때려서 발동하는 것이 아닌, 분기 공격과 특수 공격에 확률적으로 적용되지만 그 좋은 효과들을 바탕으로 잡몹들을 빠르게 소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는 있었다. 다만 보스에게는 비교적 적은 확률로 해당 효과가 적용되고, 후반 페이즈에서는 아예 이런 CC기류는 거의 통용이 되지 않기에 마지막에는 순수 컨트롤로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리고 각 무기별로 특색이나 빌드도 뚜렷하게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쌍검은 검기로 넓은 범위의 적을 타격하는 것에 특화됐다면, 창은 긴 사거리와 적을 일순 얼리면서 끌어당겨서 무력화시킨 뒤 콤보를 이어가는 것에 특화됐다. 이 역시도 다른 빌드 트리로 바꿀 수는 있고, 한편으로는 해당 무기의 특성에 맞춰 트리를 맞추면 효과가 배가 되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에 랜덤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의 빌드 완성도를 저울질하면서 테크트리를 나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여기에 다소 플레이어가 초반에 강력하게 등장해도, 보스급에 와서는 자칫 잘못했다간 연타로 공격을 맞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쉽고 빠르게 지나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로그라이크에서 기대하는 어려운 맛을 느끼게 한 셈이다. 오히려 위와 같이 어떤 빌드를 타도 안정적으로 대처가 가능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보스의 패턴도 굉장히 빠르고 가면 갈수록 촘촘해지는 경향도 있었다.
아직 15분 가량 플레이 가능한 초반 구조만 맛보기로 보여준 만큼, ‘윌리스’가 로그라이크로서 어떤 완성도를 보여줄지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로그라이크보다는 로그라이트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로 가벼운 기조에 적절한 매운맛까지 보여줬지만, 로그라이크 자체가 원래 랜덤하게 등장하는 난관을 차근차근 기반부터 다져나가면서 극복해나가는 장르 아니던가. 자연히 플레이타임이 길기 마련이고, 그렇게 오래도록 플레이해도 새로운 맛이 느껴지는 것이 이 장르의 매력이기도 하다.
마치 사골처럼 우러나는 매력을 처음부터 보여주기는 쉽지 않지만, ‘윌리스’는 적어도 한 번 잡았을 때 특유의 속도감 있는 액션과 호쾌함 그리고 한 번 더를 외치게 만들 정도로 절묘한 초반 레벨 디자인을 보여줬다. 물론 이 장르에서 이미 인정 받는 다른 작품들이 있는 만큼, 그 작품들의 그늘에서 벗어난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더 속도감 있고 가벼운 스타일로 차별화를 꾀한 모습은 확실히 보였다. 과연 ‘윌리스’가 그 고유의 템포를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적절히 매운 무작위성과 난이도 디자인을 출시까지 완성해나갈지, 그 과정을 지켜볼 만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