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돌아온 '해병왕' 이정훈 "내가 있어야 할 곳을 깨달았다"

인터뷰 | 김홍제 기자 | 댓글: 9개 |
프로게이머에게 아이디란 팬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어필할 수 있는 단어를 아이디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정훈은 조금 달랐다. 신들린 컨트롤로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는 테란의 기본 유닛 '해병'이 곧 이정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리고 팬들은 자연스럽게 이정훈을 해병왕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그의 아이디는 'MarineKing(해병왕)'이 되었다.

팬들은 이정훈만의 환상적인 해병 컨트롤에 매료됐다. 해외에서도 'MKP(MarineKing Prime)'를 외쳤다. 자연스럽게 이정훈은 최고의 스타크래프트2 인기 선수로 거듭났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이정훈의 기세도 세월이 흐르면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난 2013년 10월 돌연 리그오브레전드로의 종목 전환을 발표했다.

이정훈은 LOL 종목 전환 이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도 스타2 팬들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MKP'를 외치고 있었다. 게임이 정석화되고, 테란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자 이정훈만의 스타일리쉬한 플레이를 갈망했다. 테란 명가로 군림했던 프라임은 이정훈과 조성주, 변현우의 부재로 인해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런 프라임을 모습을 보고 '이정훈만 있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그러던 와중 이정훈이 지난 2월 13일 전격적으로 스타2 복귀를 선언했다. LOL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어 팬들의 질타와 비판 역시 달게 받겠다던 해병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훈은 자신이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스타2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연 해병왕을 다시 스타2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Q.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해병왕'을 기다린 많은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LOL로 전향했다가 다시 스타2로 돌아온 프라임 소속 이정훈입니다. 고향에 온 기분이네요(웃음).


Q. 지난 9월 30일 WCS 시즌3 챌린저 리그 김명운 선수와 대결을 마지막으로 스타2에서 LOL로 종목을 바꾸셨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김명운 선수와 마지막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LOL로 종목을 전환한 뒤 연습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다만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뿐이죠. 이후 프라임 옵티머스팀에 식스맨(정글러)으로 연습하면서 지냈어요.


Q. GSL 오픈 시즌2 한준과 대결에서 엄청난 해병 산개 컨트롤을 처음으로 선보였죠. 마치 스타1 초기 임요환의 마린을 스타2 버전으로 보는 느낌이 강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때 당시 스타2가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게임 내적으로 '정석'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시도해봤는데, 해병 컨트롤이 저한테 잘 맞더라고요. 팬들도 저의 플레이를 보고 좋아해 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Q. 해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이정훈하면 스타2계의 홍진호라 불릴 만큼 2라는 숫자와 인연이 깊었는데, '콩정훈'이라는 또 다른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초창기에 준우승을 많이 차지해서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엔 그런 별명이 저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났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우승인데, 2인자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죠.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저에게 자극제가 되었고, 더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이후에도 국내 리그에서 우승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적을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뒤로는 '콩정훈'이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그냥 재밌고 좋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Q. '콩정훈'의 이미지를 심어준 가장 큰 장본인은 정종현 선수겠죠. 이정훈에게 정종현이란?

제가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종현이 형의 장점과 맞물리면서 '인간 상성'이 된 것 같아요. 그 당시 누굴 만나도 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는데, 유일하게 종현이 형만 만나면 작아지더라고요(웃음).


Q. 사실 국내에서 인기도 대단했지만, 해외에서 MKP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죠. 이정훈이 등장하면 관중 모두가 하나 되어 MKP를 외쳤죠. 본인을 모델로 한 키보드와 마우스 패드가 발매되기도 했는데, 그 때에는 기분이 어땠나요?

정말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뻤어요.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 그 제품이 나오는 건, 프로게이머 중 임요환 선수의 마우스 밖에 없지 않았나요? 해외 업체에서 저를 모델로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해외 팬들이 저를 좋게 봐주신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사실 이 마우스 패드가 처음엔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모델인데 이 마우스 패드를 사용하지 않을 순 없잖아요? 그런데 기존에 쓰던 거랑 워낙 달라서 자꾸 게임이 안 풀리고, 지면 마우스 패드 때문에 지는 거 같은 거에요(웃음). 하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니 금방 적응되었고, 마우스에 힘도 덜 들어가고 되게 좋더라고요.



▲ 이정훈을 모델로한 마우스 패드. 실제로 해외 판매량이 엄청났다고.



Q. 군단의 심장으로 넘어오면서 이정훈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성적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군단의 심장이 나오기 직전, 자유의 날개로 치러지는 대회가 정말 많았는데, 전부 8강 정도에서 머물며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자유의 날개에서 꼭 한 번 우승을 차지해보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했죠. 그 뒤로 프로게이머로서 상실감이 들고 의욕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때에 군단의 심장이 발매됐죠.

군단의 심장 베타 시절엔 래더 1등을 차지하면서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조금씩 연습에 소홀해졌고, 다른 선수들을 조금씩 치고 올라오면서 자연스레 성적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흥미를 더 잃었던 것 같아요.


Q. 팬들도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이정훈 선수는 정찰을 거의 하지 않고, 컨트롤에만 의존하는 플레이가 단점으로 지적받았어요. 고칠 의향은 없으신가요?

평소 성격은 고집이 강한 편이 아닌데, 게임 내적인 부분에선 제 개념이 확고해요.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쭉 파고들었죠. 성적이 떨어질 땐 '내 생각이 틀린 건가?'라고 생각돼서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그냥 잘하는 스타일을 더 강력하게 만들자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팬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는 건 스타2에서 LOL로 종목을 전환한 이유일텐데,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스타2에 흥미가 급속도로 떨어졌다는 것이죠. 자유의 날개 마지막 시즌 즈음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의욕이 떨어졌습니다. 군입대 문제도 생기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방황하던 시기였어고요. 코드S에 계속 있다가 코드A로 떨어졌을 때, 코드S에 없던 것 자체도 제게 화가 나고 충격적이었는데, 그 시즌 승격강등전에서도 재경기 끝에 떨어졌어요. 충격이 매우 컸습니다. 당시 LOL에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마침 제 상황을 알고 계셨던 감독님과 대화 끝에 전향을 결심하게 됐어요.

당시 팀도 제가 필요한 상황이었요. 저 스스로도 내가 곧 프라임이고, 프라임이 곧 나라는 생각이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도전을 결심했어요.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동안 프라임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전향을 결심한 뒤 팬들에게 실망감을 드리지 않기 위해 스타2 초창기보다 열심히 연습했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더군요. 결국 LOL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Q. 리그오브레전드는 스타2와 완전히 다른 장르 게임입니다. 적응하기 힘들진 않았나요?

일단 LOL로 전향한 것은 단순히 스타2에 흥미가 떨어지고, LOL이 재밌어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큽니다. 물론 적응이 어렵기도 했어요. LOL로 전향한 뒤 연습하면서 느낀 부분인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게임이더라고요. AOS라는 장르가 생소했고, 자연스럽게 최상위권 선수들을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AOS 장르만의 색다른 개념을 깨우치는 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런 상황에서 다시 스타2로 복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첫 번째로 팀의 프로리그 부진이 가장 컸어요. LOL로 종목을 전환했어도 스타2 선수들과 같이 숙소에 지내기 때문에 계속 같이 연습해오던 팀원들이 지는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죠. 팀이 최약체로 평가받는 부분도 화가 났어요. 특히 프로리그에서 지고 돌아오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제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게 스스로도 속상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팀이 연패를 거듭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 날 (장)현우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더라고요. 현우와는 2010년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서로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인지 알거든요. 근데 그때 현우가 말은 안 했지만, "우리 팀 테란 라인이 있었으면 이렇게 쉽게 지진 않을 텐데"라는 분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팬들 때문이에요. LOL 전환 이후에도 해외 팬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개인 방송이나 스타2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하루에 20~30명이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휴가 때 조금이나마 팬들에게 보답해 드리기 위해 스타2 개인 방송을 잠시 했는데, 6,000명 정도 제 방송을 봐주시는 거에요. 그때 팬들과 채팅을 통해 소통하면서 '아직 나를 좋아해 주는 팬분들이 있구나"라고 팬의 소중함을 깨달았죠. 직접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채팅창에 'MKP'를 외치는 팬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직접 저 환호를 들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 3년전 이정훈과 장현우, 이제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Q. 그렇다면 현재 본인의 기량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와 있나요?

다시 스타2를 시작한 지 3주 정도 되었는데, 래더 상위권에 합류하는 것이 크게 힘들진 않아요. 일단 스타2를 다시 시작하면서 최대한 열린 마인드로 잘하는 선수들 플레이를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어요. 예전 전성기 때의 비하면 80% 정도는 끌어올린 것 같아요. 무엇보다 스타일적인 변화가 가장 커요. 기대해주셔도 좋습니다.


Q.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게 어떤 의미 일까요?

예전에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보다 제가 재미있고, 팬들이 원하고 열광하는 플레이를 하겠다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지금은 이기기 위한 게임도 할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Q. 조성주의 이적, 이정훈의 불참, 변현우의 부재 등으로 프라임 핵심카드였던 '삼테란'이 모두 빠지면서 프로리그에서 프라임의 성적이 굉장히 저조한 상황이에요. 프로리그 2라운드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1라운드 때 굉장히 부진했지만, 팀원들의 실력적인 부분이 크게 뒤처진다기 보다 운이 많이 안 따라주고 선수들의 프로리그 적응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2라운드부터는 저뿐만 아니라 (변)현우와 같이 프라임 테란의 힘을 보여드릴테니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Q. 프로게이머로서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제 프로게이머 경력도 벌써 5년차네요. 어렸을 땐 시간의 소중함을 잘 몰랐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열정이 하얗게 불타오를 때까지 열심히 해서 다시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아직 이정훈의 슈퍼플레이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제가 LOL로 전향했다가 다시 스타2로 돌아오게 됐는데, 팬분들이 좋게만 봐주시진 않으실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부분도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고 앞으로 멋진 경기와 성적으로 예전과 달라진 '해병왕' 이정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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