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10주년 기획 ①]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기획기사 | 이명규 기자 | 댓글: 573개 |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저들이 즐겨온 게임이며, 지금도 최고의 MMORPG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게임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우리에게는 WoW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게임이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첫 출시부터 지금까지 굳건한 왕좌를 한번도 내어준 적 없이 지켜오고 있는 유일한 게임으로, 그보다 먼저 왕좌를 차지한 바 있던 에버퀘스트나 울티마 온라인들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패권을 잡지는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WoW는 전세계 1억명이 넘는 유저가 계정을 만들어 플레이해 보았으며, 확장팩 출시를 거듭해 축적된 스토리는 유명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12배가 넘는 분량을 자랑하게 되었다. 지금도 전세계 740만명이 넘는 유저가 WoW를 플레이 중이다.




그리고 10년전 오리지널 첫 발매 이후 약 2년 주기마다 새로운 확장팩을 출시해왔던 WoW는 10주년이 다가오는 2014년 11월, 그 최신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를 내놓는다.

다양한 확장팩 출시를 거듭하며, WoW는 최초의 모습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고, 대격변에서 기존의 대륙까지 손을 보고, 몇몇 콘텐츠들은 리메이크가 되면서 이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만큼 변화했다. 유저들은 이에 환호하면서도 한켠으로는 아쉬움도 남기며 이전의 추억을 곱씹는, 그렇게 WoW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한 게임이 되었다.

인벤에서는 오리지널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 WoW의 지난 10년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간으로, WoW의 오리지널 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그 10년의 시작





WoW의 탄생을 말하기에 앞서 꼭 짚어보고 가야만 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블리자드의 전작, 워크래프트3이다. 워크래프트3는 WoW에게 게임의 장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것을 물려준, 그야말로 아버지와도 같은 게임이다.

WoW의 배경은 워크래프트3 3차 대전쟁이 끝나고 4년이 흐른 아제로스로, 워크래프트3의 사건인 제3차 대전쟁 이후 수습을 이루고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워크래프트3와 확장팩의 성공과 매력적인 세계관, 각각의 퀘스트와 지역에 투입된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은 게이머들을 그 세계에 흠뻑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실 WoW 오리지널의 경우 이후의 확장팩처럼 명확한 스토리 테마가 있다기 보다는 전체 세계를 보여주는데 주력했고, 지금까지 버전 중 가장 많은 수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때문에 오리지널을 임팩트가 부족한 시절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때 닦아둔 훌륭한 발판이 곧 이후 확장팩들이 성공하는 밑거름이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처음 WoW는 단지 그 게임 속 세계를 마음대로 누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매우 커다란 유혹이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춘 다양한 종족과 지역, 스토리는 게이머들이 지역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며 게임을 접하도록 유도했고, 혹 처음 이 세계관을 접하는 게이머들이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지역과 캐릭터들의 스토리텔링에 절로 몰입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 시장에서 WoW는 또 하나의 공적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수십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레이드 및 전장을 한국 게임계에 주류 콘텐츠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그전까지 한국 온라인 RPG들은 파티 단위나 대규모 인원보다는 개인을 위주로 콘텐츠가 짜여졌고, 독자적인 전투를 위해 스킬과 아이템, 물약 시스템 등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WoW 이후로, 게이머들은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콘텐츠의 재미를 깨닫고 하나 둘 씩 거기에 매료되었고, 이후의 게임들 역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즉, 블리자드의 WoW는 한국 MMORPG의 발전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게임이었던 셈이다.


WoW 오리지널 연대표


WoW 오리지널은 국내에서 2004년 11월 12일 처음 오픈베타를 시작해, 2007년 2월 2일 다음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이 나오기까지 총 831일여간 서비스 되었다. 과연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간략히 연대표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그때 그시절 이야기들


얼라와 호드가 오순도순(?) 살아가던 그시기, 수많은 사건사고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이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들 중 몇가지를 추려 같이 기억을 되살려보려 한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추억을 곱씹어보자!

베타 테스트 도시전설

WoW는 발매 전부터 긴 검증기간을 갖고 테스트를 거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해외에서의 비공개 테스트는 꾸준하게 1년여에 걸쳐 되었으며, 국내 오픈 베타 역시 상당히 길었다. 국내 오픈베타는 2004년 11월 12일부터 시작해, 약 두달 간 진행된 뒤 정식 런칭으로 이어졌다.

당시 WoW는 국내에서도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초 기대작이었고, 때문에 굉장히 많은수의 유저가 몰려들었다. 이와 더불어 게임 초기이다 보니 조율이 되지 못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클로즈베타 때 있었던 몇몇 일화는 도시전설 급이었다.




지하라는 이유로 말을 탈 수 없었고 녹색 강에 빠지면 데미지를 입던 대도시 언더시티, 캐릭터 타입이 정말로 언데드여서 성기사 등 특화 직업에 무참히 썰려나갔던 플레이어 종족 포세이큰, 탈것인 코도가 없이 그저 튼튼한 두발로 초원을 내달렸던 타우렌 등...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 서비스 초기이다보니 여러가지 서버 문제나 버그도 있어, 루팅 렉이나 끼임 현상이 빈번했고, 이 때문에 유명한 '월드 오브 모내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다같이 농사를 즐기던 그런 훈훈한 시기였다.



▲ 수많은 공감을 얻은 WoW의 다양한 패러디들

이후 많은 패치와 서버 증설을 거치며 이런 문제들의 대다수는 해결되었고, 아제로스에 더이상 농번기가 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와우저 모두 농사로 흘린 땀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 인던을 아시나요?

처음 WoW가 출시되었을 때, 별도의 공간이 만들어져 공략하는 '인스턴스 던전'은 국내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디든 자리를 잡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오는 몹은 다 내꺼! 하는 사냥터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당시 불친절했던 인던 진행 방식 및 구조와 시너지를 일으켜 광장히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인던 맵이 지원되지 않았고, 당시 던전의 지형은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운 구성과 다이나믹함을 자랑했다.



▲ 당시 상황을 적나라히 보여주는 썅또끼툰(출처 : 와우인벤 팬아트 갤러리)

진행 도중 길을 잃어버리는건 모든 인던에서 밥먹듯이 일어나는 일이었고, 여기에 더해 길이가 길거나 네임드가 많은 던전은 공략 시간만 몇시간 단위로 늘어나곤 했다. 특히 아직 적응이 덜 된 저렙 구간에서 그런 현상이 더 심했는데, 악랄한(?) 점프 존이 포함된 저렙 인던 통곡의 동굴은 이름처럼 매일매일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지옥이었다.

이 분야에서 최강은 다름 아닌 후반부 인던이었던 검은바위 나락과 검은바위 첨탑이었다. 특히 검은바위 나락은 그 볼륨에서 어지간한 레이드 따윈 가볍게 압도하는 끝판왕이었다.



▲ 5열 횡대로 연병장 반

크고 작은 네임드만 서른명에 달하고, 맵을 전부 주파하는데 수십분이 소모되는, 말그대로 검은무쇠 드워프의 도시 전체를 무대로 한 이 던전은 당시 유명 레이드였던 화산심장부의 입구 역할을 했기에 더더욱 악명을 떨쳤다. 점심먹고 시작해 도중에 저녁을 먹고 마지막엔 야식을 시킨 뒤 막넴을 잡고 쫑을 내는 전설의 인던이었다.



▲ 말을! 내놔라!

또한 그당시 가장 유명한 인던이었던 스트라솔름은 게임방송을 통해 1시간 내에 클리어하는 대회를 진행했음에도 정말 제한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한 팀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던전의 구성이 전체적으로 간략화되고, 평균 클리어 타임도 30분 내외로 조정되면서, 이런 레이드 뺨을 후리는 인던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당시엔 이런 어려운 인던에 고통을 호소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이제는 그 당시 멋진 구성의 인던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전사의 로망, 아케이나이트 도끼



▲ 저 부르셨어요?

WoW 오리지널 시절, PVP에서 전사들은 슬픈 존재였다. 그 시절 전사들의 별명들은 '듀로타멧돼지', '명점자판기' 등등 하나같이 슬프기만 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나아지기 위해 많은 전사들이 좋은 무기와 장비를 위해 분투를 벌였다. 이중 전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전문기술로 제작하는 무기 '아케이나이트 도끼' 였다.



▲ 전설의 그남자

아케이나이트 도끼는 대장기술로 만들 수 있었던 최고의 무기로, 당시의 시스템에서는 공격속도와 최대데미지 등 스킬에 무기 데미지가 적용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레이드 무기에 결코 꿀리지 않는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결국 PVP에 빠져 "죽격크리!!"를 외치며 피에 목이 마른 전사들에게 이 무기는 최고의 PVP 장비였던 셈이다.

상당한 운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하는 레이드 장비 대신,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장비에 유저들이 매달린건 당연한 사실. 이 시절 전사유저들의 이미지는 용맹 풀셋에 아케이나이트 도끼를 든 모습이었다. 그 당시 만들어져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일리걸 데니쉬-슈퍼 스낵' 이라는 팬메이드 영상에서도 'Kiljoy' 라는 전사를 통해 이런 모습이 잘 나온다.

▲ Best of Kiljoy. "Arcanite Reaper Hoooooo!"


하지만 저 영상에서 비춰지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강력한 무기를 마련하고서도 전사들은 여전히 큰 약점을 가진 PVP 약체였고, 더군다나 후에 패치를 통해 데미지 계산식이 변경되며 아케이나이트 도끼는 몰락하고 만다. 결국 전사들은 언제까지고 '듀로타멧돼지'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 설움은 판다리아의 안개 이전까지 계속되게 된다.


오늘도 힐스브래드와 가시덤불 골짜기는 평화롭습니다

현재의 언덕마루 구릉지가 아직 힐스브래드였던 시절, 힐스브래드 구릉지에 위치한 얼라이언스의 마을 사우스쇼어와 호드의 마을 타렌밀농장은 흡사 휴전선 가까이 민통선 안에 위치한 대성동 마을 같은 곳이었다. 분쟁지대 지척에 위치해 길만 건너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이 두 진영의 마을은 알터렉 계곡이나 전쟁노래 협곡을 능가하는 전쟁터였다.



▲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지옥도

두 마을을 잇는 길은 매일 해골더미가 수북했으며, 길 사이에 난 반쯤 무너진 감시탑은 은신이 가능한 직업이나 원거리 직업군에게 주요 거점이었다. 한가지 더 이 지역의 분쟁을 부추긴 것은 바로 만나는 각 진영 유저들의 레벨 차. 퀘스트 동선상 호드 유저들이 통상적으로 10레벨 가량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당시 얼라이언스의 중심지이던 아이언포지와도 가깝고, 인구가 적긴 해도 호드의 대도시인 언더시티도 지척이었으니... 이는 조그만 싸움이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로 이어지고, 다시 복수를 위해 고렙(엄마아빠)을 소환하는 과정을 거쳐 막대한 수의 유저들이 몰려와 필드전쟁을 벌이는 촉매가 되었다.



▲ 힐스, 가덤 못지 않았던 타나리스 무적귀환 전설

힐스브래드 구릉지의 전쟁이 이런 대규모 필드쟁으로 번졌다면,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무법 정글이 있었으니, 바로 동부 대륙의 남쪽 끝, 가시덤불 골짜기였다. 고레벨 유저들은 줄구룹 이외엔 볼일이 별로 없었고, 더군다나 빽빽한 정글이어서 대규모 싸움이 벌어지기엔 부적합했다.

가시덤불 골짜기의 정글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디서 상대 진영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시체를 지키거나 다른 유저를 끌어들이는 등 복수에 복수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기자 또한 동레벨 대의 유저와 반나절 동안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 엄마보고 싶다...(출처 : 인벤 유저 10840님)

그야말로 배틀로얄이 펼쳐졌다. '6쪽으로 7,8,1쪽 구해요' 같은 평화로운 채팅이 나오다가도 '아 저 도적XX 아주 자리 깔았네 ㅡㅡ' 같은 한탄이 나오는 곳이 가시덤불 골짜기였다.

이후 힐스브래드와 가덤 모두 대격변에서 리메이크를 거치며 이런 필드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대다수 유저가 고통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회상하는, 또 언제나 필드쟁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되었다.

좀비 아웃브레이크? 오염된 피 사건

이따금 온라인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의 사건들을 방불케할 만큼 현실적으로 진행되어 이슈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WoW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속칭 '오염된 피 사건'이다.



▲ 사건의 원흉, 진로크 안주는 순 나쁜녀석

줄구룹의 최종 보스 학카르는 오염된 피(Corrupted Blood)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디버프를 걸어 주기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주변 플레이어들에게 이를 전염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사냥꾼의 펫은 이 디버프를 가진 채 소환을 해제하면 계속 효과를 받게 되었다. 때문에 누군가 오염된 피에 걸린 펫을 대도시에 풀어놓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무한하게 퍼지는 전염병이 대도시에 풀린 것이다!

이때 유저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피해자들의 치료를 시도하는 이들이나, 전염병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 남에게 디버프를 뿌리는 사람들, 또 치료로 사기를 쳐서 골드를 뜯어내는 사람들까지... 이 사태는 허무하게도 사태를 감당하지 못한 블리자드 측에서 서버를 리셋하고 추후 패치를 통해 학카르의 기술을 바꾸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 사건 당시의 어느 아이언포지

당장의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는 WoW라는 게임이 다양한 학자들의 관심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이 가상세계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염병 위기, 속칭 '아웃브레이크'는 학자들이 현실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현상을 연구하는데 쓰였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블리자드에게 관련 통계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4대 인던이여 영원하라




WoW 오리지널 당시,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종착역과도 같았던 레이드 바로 전 단계에는 인스턴스 던전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만렙을 달성한 유저들의 아이템 파밍과 도전 욕구를 고취시키는 속칭 4대 인던이 있었으니, 스트라솔름, 스칼로맨스, 혈투의전장, 검은바위첨탑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와우를 즐겼던 대다수의 만렙 유저들은 이들 던전을 돌며 몬스터를 처치하고 장비를 모았다. 그렇게 수많은 유저가 즐긴 만큼, 그에 걸맞는 다양한 추억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 시간 없어! 가자고!!

도적의 필수 아이템이자 통곡의 벽이었던 검은바위첨탑의 필살의 비수, 마찬가지로 탱커들의 이상향이었던 쿠엘세라, 그리고 화염저항 버프를 위해 모여있다 필드쟁으로 피바다가 펼쳐지는 첨탑 입구, 첨탑에서의 그 유명한(?) 리로이 젠킨스 전설까지... 이쪽이야 말로 더 많은 유저들이 직접 피부로 느껴본 사례들일 것이다.

▲ 전설의 그남자, 그장면

이들 4대 인던은 새로운 확장팩이 나와 유저들의 레벨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라도 명맥을 유지했는데, 혈투의전장의 쿠엘세라, 스트라솔름의 속칭 '남작마' 등의 유니크함이 여기에 한몫 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이 추억의 던전들은 하나씩 리메이크되어 당대의 유저들에게 어울리는 던전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긴하지만, 지금도 이 던전들의 인기가 식을줄 모른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3대 전설 삼위일체, 우레폭풍, 설퍼라스, 그리고 아티쉬



▲ 불의 세례를 받아라!!

오리지널 종료 당시, WoW에는 총 3개의 전설등급 아이템이 존재했다. 양손 둔기였던 설퍼라스, 한손 도검 우레폭풍, 양손 지팡이 아티쉬가 그것이었다. 설퍼라스와 우레폭풍은 화산심장부에서 시작해 까다로운 제작과정을 거쳐야 했고, 아티쉬는 더더욱 힘든 제작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데다 당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제작 난이도로 인해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던 아이템이었지만, 게임에 단 세개만 존재하는 전설급 아이템이자, 각각 직업 아이템 파밍의 정점이라는 점 때문에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 이 칼도둑놈들!

이후로 확장팩마다 하나씩 새로운 전설 아이템이 등장했지만, 실질적으로 3개나 되는 전설 아이템이 나타났던 적은 없었다. 근접무기도 들 수 있었지만 주 사용 무기는 원거리였던 사냥꾼을 제외하면, 모든 직업이 하나씩 전설 아이템을 가진 시기였다.

이후 새로운 확장팩이 나오고, 업데이트를 통해 나온 형상변환 시스템에서도 전설 아이템은 사용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점점 더 찾아볼 수 없는 아이템들이 되었지만, 지금도 이따금씩 대도시에서는 아이템을 꺼내 착용하고 은근한 자랑을 뽐내는 유저들을 찾아볼 수 있다.



▲ 뭔가 스파이가 보인다면 그건 눈의 착각입니다


진정한 드래곤슬레이어, The Chosen

전장이나 업적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지만, WoW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레이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레이드에서 각각의 공격대는 당연한 듯 세계 최초 킬 경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쭉 WoW는 각 지역마다 업데이트 주기가 달랐고, 미묘하게 느린 간격으로 업데이트가 되는 북미와 유럽 이외의 지역들은 절대적으로 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그럼에도 각각의 공격대들은 지역 최초, 더 나아가 세계 최초를 위해 노력했고, 한국에서도 대규모 공격대들이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 우리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그 와중에, 한국의 세계 최초 킬이 나온 레이드 보스가 있으니, 바로 검은 용 오닉시아다. 오닉시아는 광역 공포와 지속적인 불길을 통한 패턴을 내세워 몇번씩 다른 공격대를 좌절시켰고, 그에 대한 대처로 당시 비주류 취급을 받고 있던 드워프 사제가 사용할 수 있었던 주문 '공포의 수호물'이 크게 각광받기도 했다.

2005년 1월 29일, 미국의 공격대들이 잇달아 오닉시아 레이드에 실패하는 동안, 바로 한국의 초우즌 공격대가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초우즌은 이어 크툰(당시 쑨), 켈투자드 등 오리지널의 각종 레이드 보스를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 세계최초 오닉시아 킬 영광의 주인공, The Chosen

이후 대격변 들어 즐거운공격대가 데스윙 하드모드를 세계 최초 킬하기 전까지 국내의 유일한 세계 최초 킬 사례였으며, 이후 치명적인 사건을 통해 초우즌 공격대가 와해됨으로 해서 더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게 되었다.

[관련기사] 오닉시아 레이드 첫성공! The Chosen길드


"진로크는 누구의 것인가?" 아이템 공방전



▲ 아니 너 말고...

'님이 그걸 왜굴려요' 라는 길드명은 와우저라면 다들 한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오리지널 시기, 다양한 직업이 존재함에도 초창기 사냥꾼처럼 그 역할이 모호한 경우도 있었고, 장비의 스탯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무기종류였는데, 줄구룹에서 나오던 양손 도검 진로크를 사냥꾼이 가져가자 전사와 성기사가 나 안한다며 파업을 하는건 예사고, 단순히 드랍템이 아니라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제작해야하는 아이템이었던 우레폭풍 등의 아이템도 이건 전사꺼네 도적꺼네 하는 말싸움이 일상이었다. 거기에 다양한 역할이 가능한 점을 들어 어떤 아이템이든 다짜고짜 주사위를 굴리곤 하는 성기사 등... 종류도 다양했다.



▲ "저기 냥쿠니가 진로크를 들고있다!"(지나가던 전사,성기사: 부들부들...)

이런 직업별 아이템 소유권 다툼은 개개의 공대나 파티를 넘어 각종 팬사이트에서 각각의 직업에 따라 유저 편이 갈라져서 새우 등이 터지도록 말싸움을 벌이곤 하는 만년 떡밥이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이 바로 당시 한국 최고의 레이드 공격대였던 초우즌의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이상의 종말' 사건이다.

드루이드들을 위한 강력한 전용 옵션이 붙어있었던 귀하디 귀한 둔기인인 낙스라마스제 아이템 '이상의 종말'은, 이를 어느 주술사가 높은 포인트를 통해 입찰해 먹어버리면서 문제의 시작점이 되었다. 분노한 드루이드들은 파업을 시작했고, 때문에 정상적인 레이드가 불가능해진 공대는 결국 차츰차츰 그 위력을 잃어가게 되었다.



▲ 요물이 되어버린 물건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터져나오고, 패치와 확장팩을 거듭하면서 각 직업의 역할과 아이템에 붙은 각종 옵션이 역할별로 보다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포인트제 정규 공격대보다 골드입찰제를 내세운 막공이 활성화 되면서 소위 '포깡'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물론, 그만큼 '골깡'이 늘어나버렸지만 말이다.

[관련기사] 이상의종말? 누구의 것? 합의점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풍의 전조'




▲ 아제로스 독재자 사망전설의 시작

WoW 오리지널은 최초엔 그 세계관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운 게임이었다. 사실 대다수의 한국 게이머들은 에버퀘스트 등 파티와 공격대를 기본으로 한 대규모 레이드를 펼치는 MMORPG에 그렇게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특히 수년전 에버퀘스트의 정식 한국 런칭 시에도, 그 난이도와 사실성을 위한 불친절함, 또 대단위 레이드 등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서비스 종료로 이어진 바 있었다.

여기서 WoW가 한국 시장에 돌풍을 일으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게임성이 대단했던 것도 크지만, 이 세계관의 친숙함이 매우 컸다. 당시 블리자드는 한국에서 연달아 출시작을 히트시키며 모두가 한번쯤은 블리자드의 게임들을 플레이해보고 세계관을 단편적으로나마 겪어본 때였다. 워크래프트3와 그 확장팩 프로즌 쓰론은 한글화를 통해 한국에 출시되었고 유래없이 그 세계관에 빠져든 팬을 양산하게 된다.



▲ 내가 진주인공이다

이어 해당 세계관을 활용, 직접 이어지는 스토리를 활용해 당시 한국 게임계의 주력이자 인기 장르였던 MMORPG가 출시된다고 하니, 거의 모든 게이머들은 한번쯤 이를 플레이해보고자 하는 열망에 부풀었다. 비록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어려워도 한번쯤 캐릭터를 만들고 플레이해보는 게임이 되었다. 2달이나 되었던 오픈베타 기간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이로 인해 WoW는 그 이후 게임들의 사례를 보아도 유례없이 오픈베타에서 정식 유료화로 전환한 유저들이 많았고, 국내에서도 수십개의 서버를 정식 서비스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 기억하는가, 당신의 도전을?

또 레이드 중심 MMORPG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에버퀘스트에 이어, '레이드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었고, 이후 확장팩마다 핵심 콘텐츠인 레이드를 중심으로 게임 내 경제, 밸런스, 구성 등이 짜여져 게임 기반이 확실히 다져지는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인 만큼 다소 난잡하게 열개가 넘는 주요 업데이트가 있었던 WoW 오리지널이지만, 이후 확장팩들의 기틀은 여기서 이미 다져진 셈이다. 그리고 그 기틀 위에, 차기 확장팩 '불타는 성전'의 사전 패치인 폭풍의 전조가 적용되고, 본격적으로 흥행 질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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