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계에서 풍운아로 불리며, 끝없는 도전의 아이콘이었던 최향남이 또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Wiener Neustädter DIVING DUCKS(이하 다이빙 덕스)에서 황건주(26, 전 SK 와이번스)와 함께 2015시즌을 보내게 된 최향남은 이미 다이빙 덕스 홈페이지(http://www.divingducks.com)와 구단 SNS(https://de-de.facebook.com/divingducksfan)에서 엄청난 기대와 환영을 받고 있다.
마르지 않는 열정으로 항상 도전자의 삶을 살아왔던 풍운아 최향남. 그의 파란만장했던 야구인생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자.

영흥고등학교 재학시절 해태 타이거즈가 영입에 욕심을 냈지만, 정작 본인은 동국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담임교사가 대학 입시 원서를 체육특기자로 쓰지 않고 일반 전형으로 쓰는 실수를 저지르며 진학에 실패했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성격 탓에 해태의 엄격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좋을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군대에 현역입대하게 된다. 해태 타이거즈 덕아웃을 피해 90년대 군대 내무실을 선택했을 정도니 그 당시의 무시무시했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전역 후 김응룡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계속 기회를 얻었지만, 좀처럼 터지지 않았던 최향남은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된다.

김응용 감독이 갖고 싶어 했던 그의 재능은 LG 트윈스에서 폭발하게 된다. 1997년 ERA 2.99 8승 3패, 1998년 ERA 3.63 12승 12패, 1999년 ERA 4.26 8승 5패를 기록하며 90년대 후반 LG 트윈스 마운드의 핵심 투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전성기를 달리던 최향남은 부상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 재기에 성공하는 듯싶었지만, 기아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부상을 당하며 2003년까지 시즌 아웃. 결국, LG 트윈스에서 방출당한다.

입단 시 신인이었던 최향남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기아 타이거즈로 돌아왔다. 문제는 입단 계약 조건에 해외 진출 시 조건 없이 풀어주겠다는 항목이 있었는데, 구단 입장에서는 그 당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그런 조항이 뭐 대수냐고 생각했지만...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버렸다.
2004년과 2005년 기아 타이거즈에서 계투진으로 생활하던 최향남은 2005시즌 종료 후 한국 나이 36살에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에 입단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2006시즌에 ERA 2.37 8승 5패라는 좋은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에 복귀한 윤석민보다도 훨씬 뛰어난 성적이다. 하지만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한 최향남은 국내 리그로 돌아오게 된다.
기아 타이거즈는 최향남의 해외 진출과 함께 모든 권리를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에 복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최향남은 롯데 자이언츠로 입단한다.
2007년 ERA 5.00 5승 12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덕분에 2008년에도 최향남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롯데 자이언츠의 마무리 투수였던 임경완이 부진에 빠지며 급하게 마무리 투수로 뛰게 됐는데 의외로 성적이 좋았다. 그리하여 2009년에도 롯데 자이언츠의 불펜에서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 부분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같이 모든 권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롯데 자이언츠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최향남을 풀어주게 되는데, 101달러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최향남을 영입하게 된다. 하지만 시범 경기가 끝나고 웨이버 공시되어 LA 다저스 산하의 트리플A팀인 앨버커키 아이소토프스에 입단하게 된다.
2009년 불혹을 앞둔 나이로 트리플A에서 ERA 2.34 9승 2패라는 엄청난 성적을 남긴 최향남. 2010년에도 트리플A에서 계속 뛰게 되지만 ERA 5.84 1승 2패라는 부진에 빠진 채 방출당하고, 일본의 독립리그에서 뛰게 된다.

2011년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방출됐다. 그 후 젊고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이종범을 은퇴시킨 기아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입단 테스트 후 계약에 성공하며, 그 당시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가 됐으며, 타이거즈의 유니폼만 3번 입는 진기록을 만들었다.
기아 타이거즈의 불펜에서 최고령 세이브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2013시즌이 끝나고 또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고, 구단을 물색했으나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없었다.
미국행을 포기하고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으나 구단이 해체됐고, 2015년에는 한국 나이 45살로 이제 은퇴하나 싶었는데 돌연 오스트리아 야구 리그에 진출했다.
최향남의 머나먼 여정이 언제 끝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끝이 아닌 출발을 생각하는 그의 도전 정신만큼은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