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에 이어 2014년 2월 1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계약에 성공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윤석민. 3년간 보장금액 575만 달러, 최대 1,300만 달러, 메이저리그 승격 시 마이너 강등 거부권 조건까지 걸린 계약이었다. 하지만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의 마이너리그 트리플A 노퍽 타이즈에서 ERA 5.74 4승 8패를 기록하고, 2015년 3월 5일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다.
KIA 타이거즈는 윤석민의 이적료로 1달러를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급했고, FA 계약으로 윤석민과 4년간 90억에 계약하며, 이번 FA 시장에서 두산의 장원준이 기록했던 최고액을 경신했다.
KIA 타이거즈 입장에서는 잇따른 전력 유출 상황에서 든든한 선발 투수가 돌아왔기 때문에 상당히 기분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야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윤석민은 데뷔 첫해부터 불펜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년 차인 2006년 기량이 상승하며 ERA 2.28 5승 6패 19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투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KIA 타이거즈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계속 활약하는 듯싶었지만, 2007년에 팀 사정상 선발로 전향하면서 162이닝 동안 ERA 3.78의 좋은 성적을 내고도 7승 18패에 머무르며 불운의 아이콘이 되었다.

2008년에는 ERA 2.33(1위) 14승(2위) 5패 119탈삼진(5위)을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 선발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발탁 과정은 험난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표팀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기술 위원들의 설득(?)으로 컨디션 난조인 임태훈과 교체하게 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른 투수들이 2~3경기에 등판하는 동안 홀로 5경기에 등판해 2승 1세이브 ERA 2.35를 기록했다. 보직과 상관없이 필요할 때마다 등판하며 노예 모드로 고생했는데, 그러다 보니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방송 분량에 신경 쓰던 작가와 의사 모드가 되기 전인 봉중근을 제외하면 대표팀 투수 중 ERA가 가장 좋지 않았다.
2009년에는 다시 2007년처럼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기주를 대신해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했는데, 선발진의 부상과 유동훈이 마무리를 맡으며 1달 만에 다시 선발로 돌아왔다. 이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한때 ERA 1위까지 올랐지만, 시즌 막판에 미끄러지며 ERA 3.46 9승 4패 7세이브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9년 WBC 대표팀에 발탁되어 2008년의 아쉬움을 설욕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역대급 인생 투구 중 하나로 평가받는 베네수엘라전이 있다.
2010년에는 주로 선발 투수로 출전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필요할 때 마무리로도 등판했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라커룸을 주먹으로 때려 손가락 골절로 6주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이 16연패에 빠졌던 사건도 있었고, 시즌 후반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사구 논란에 휩싸이며 1군에서 말소됐다.
2010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어 첫 경기인 11월 13일 대만전 7회에 선발 투수 류현진에 이어 구원 투수로 등판했는데 당일 출전선수 명단에 윤석민이 없어 퇴장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5이닝 무실점 호투로 막아내며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웠다.

2011시즌 전 20승을 거두고 해외에 진출하겠다며 포부를 밝힌 윤석민은 시즌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이내 컨디션이 올라가며 무서운 페이스로 승을 쌓아나갔다. 최종 성적은 172⅓(5위)이닝 ERA 2.45(1위) 17승(1위) 5패 1세이브 승률 0.773(1위) 178탈삼진(1위)으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아쉬운 점은 2010년 사구 논란이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는 2011년에 승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인데, 5월에 선발로 등판해 패전 투수가 된 후 롯데 자이언츠전에는 선발로 등판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윤석민은 2011년 야구 인생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선동열 이후 20년 만에 4관왕을 차지한 투수가 되었으며, 골든 글러브와 정규 시즌 MVP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포스팅 자격을 얻어 해외로 진출하려고 하지만, 구단의 만류로 2년 후 FA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
2012년에는 불운과 기복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ERA 3.12 9승 8패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사실, 나쁜 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심한 기복과 승리운, 그리고 팀의 도움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며 안타까웠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기록을 보면 10승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ERA 3.12(8위) 137탈삼진(4위)을 기록하며 선발로서는 자신의 몫을 다했다.
2013년 WBC 대표팀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선수가 줄줄이 부상을 당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는데, 윤석민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데뷔해인 2005년을 제외하면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셈이다.
2013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획득한 윤석민은 미국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성적이 떨어져 금액이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윤석민은 2013년을 보내고 2014년에 뒤늦게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시범 경기에서 몇 번 등판한 윤석민은 계약이 늦었던 만큼 몸 상태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맞게 된다. 처음에는 메이저리그에 금방 올라갈 것 같았지만 결국 2014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내게 된다. 마이너리그 성적은 23경기 95⅔이닝 동안 ERA 5.74 4승 8패. 도저히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없는 성적이었다.
2015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마이너리그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올릴 수 없을뿐더러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약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쉽사리 올릴 수 없었다.
결국, 윤석민은 짧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오게 됐다. KIA 타이거즈는 윤석민과 FA 계약으로 4년간 90억에 합의했다. 윤석민의 구체적인 보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센터라인의 붕괴로 위기를 맞이한 KIA 타이거즈에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게 팬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