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인기 있는 축구 선수 중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선수를 알게 되면 그의 독특한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190cm 이상의 장신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슈팅과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아크로바틱 골을 넣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축구선수의 일대기를 알아보는 선수 스토리 시간, 선수 한 명의 스토리지만 그가 지나온 길은 하나의 책을 쓸 정도로 장대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 말뫼 FF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다
1981년생인 그는 6살때 유소년 클럽을 거쳐 축구를 시작했으며, 1996년 스웨덴 리그의 말뫼 FF와 첫 계약을 맺었으며 1999년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말뫼 FF는 2부 리그로 강등된 상황이었지만 즐라탄의 활약 덕분에 1부 리그로 다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2부리그 팀을 어린 선수 덕분에 1부리그에 진입하는 상황이 오자, 축구 팬들과 명문 클럽들의 관심은 즐라탄에게 쏠렸습니다. 당시 시즌 더블과 무패우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잉글랜드 EPL의 아스널 FC 클럽에서 즐라탄을 영입하기 위해 감독이 직접 움직였으며, 입단은 거의 성사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아스널 FC 감독이었던 아르센 뱅거가 즐라탄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계약이 늦춰졌고, 즐라탄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협상을 포기, 네덜란드 리그에 있는 AFC 아약스 암스테르담(이하 아약스)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말뫼에서 활약 당시 20살쯤 되는 나이에 40경기 16골이라는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는 더 좋은 무대에 뛸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 네덜란드 아약스로 이적, 그러나 알고보니 사기계약?
스웨덴리그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아약스로 이적한 즐라탄은 기대를 받으며 데뷔합니다. 그러나 적응력의 문제인지 첫 시즌에서 24경기 출전 6골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약스의 전 감독인 아드리안서가 경질되고 로날드 쿠만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쿠만 감독은 즐라탄에게 적응하지 못한 즐라탄에게 신뢰를 주었고, 덕분에 그는 26경기 12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아약스에던 그는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었지만, 팀 내부에선 폭팔 직전의 화산 같은 분위기였던 팀이었습니다. 아약스로 이적 당시 말뫼 FF 단장만 믿고 계약을 진행한 즐라탄, 하지만 팀에 들어오고 나니 주전 선수 중에서 주급이 가장 낮은 것을 알게 되어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쌓여가는 불만은 2004년 여름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A매치에서 터지게 됩니다. 즐라탄은 네덜란드 대표팀이자 아약스 주장이었던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밟아 상처를 입히게 했습니다. 고의로 상처를 입히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는 즐라탄에게 고발까지 했으며, 네덜란드 언론까지 그에게 비난을 가하자 그는 8월 31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FC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는 즐라탄에게 불만이 식히지 않았는지, 사건 이후 2012년 즐라탄 얼굴 사진 앞에서 골프 스윙을 연습하는 영상을 공개해 다시 한 번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 유벤투스에서 리그우승을 경험했지만, 팀의 승부조작으로 이적하다
유벤투스 FC (이하 유벤) 시절엔 즐라탄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키가 크고 깡마른 체격을 가진 그가 유벤에 와서는 벌크업을 통해 몸이 갖춰지며 피지컬 능력까지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말뫼 FF 시절부터 코치와 감독들에게 할 말 다하는 그의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파비오 카펠로 코치가 즐라탄의 성격을 파악, 자신의 앞에선 순한 양으로 조련시켰습니다. 이후 유벤에서 기량 끌어올리며 리그 16골을 기록하며 그해 최고의 외국인 선수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유벤의 달라진 공격 역할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득점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설상가상 유벤은 '칼치오 폴리'라는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칼치오 폴리 사건이란 심판을 매수하여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부당한 방법이었는데 당시 연루된 유벤, ACF 피오렌티나, SS 라치오, AC 밀란 4개의 팀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유벤이 징계를 받아 2부리그로 강등되자, 즐라탄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을 원했습니다. 당시 AC 밀란이 즐라탄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즐라탄의 관심은 FC 인터 밀란(이하 인테르)였습니다. 인테르를 우승시켜주고 싶은 언더독마인드와 자신이 그곳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의지 때문에 결국 인테르로 이적하게 됩니다.

■ 인터 밀란에게 우승컵을 거머쥐게 하며 팀의 영웅이 되다!
당시 인테르는 리그 우승을 한 경험이 없는 불운의 팀이었습니다. 선두권을 잘 유지하다가도 시즌이 끝나기 전 버티질 못하고 우승을 하지 못해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미안한 입장이었지요. 즐라탄이 인테르에 영입되고 나서 분위기는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즌 2006-2007에 그는 27경기 15득점 5도움으로 팀에 큰 활약을 보여줬으며, 인테르는 세리에 A 리그에서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테르는 챔피언스 리그(이하 챔스)에서 탈락하자 주제 무리뉴 감독이 새로 부임하게 됩니다. 무리뉴 감독은 즐라탄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관리를 해주지만 경기에서 그가 득점해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즐라탄과 밀당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즐라탄은 승부욕이 불타올랐는지, 2008-2009시즌에는 35경기 25골 8도움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인테르를 또 한 번 리그에 우승시켜 줍니다.
즐라탄은 이제 유럽 축구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챔스 우승에 욕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지난번 챔스에선 리버풀 FC에 직격을 맞았고, 이번 챔스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발목을 잡혀 16강에 탈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챔스 우승을 많이 해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것을 원했고, 인테르 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테르를 떠나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즐라탄이 인테르를 떠난 후, 다음 시즌 챔스 리그는 인테르가 우승을 차지한 해프닝이 생겼습니다.

■ 이루어질 수 없는 두사람. 사랑과 전쟁을 찍은 과르디올라와 이브라히모비치
바르샤에 이적한 즐라탄은 2009-2010시즌 29경기 16득점 9도움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초반에는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샤 경기인 엘 클라시코에서 결승 골을 터트려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경기를 진행하다 보면 그가 부진해 보이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당시 바르샤는 요셉 과르디올라 감독의 티키타카 전술은 화려한 패스와 순간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하는 팀플레이였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열심히 뛰지만 정작 즐라탄 본인은 어슬렁거리는 모습만 연출했고, 즐라탄이 큰 장신을 이용해 제공권을 장악했으면 좋았지만, 그는 공이 조금만 뜨면 머리가 아닌 발을 들이대는 특유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메시었습니다. 팀 초창기엔 메시와 즐라탄은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잘 나아갔지만, 몸 상태를 회복한 메시가 미친듯한 경기력을 보여주자 감독 과르디올라는 '메시를, 메시에 의한, 메시를 위한' 전술로 바꿔나갔고, 즐라탄은 중원 공격수에서 사이드 공격수로 밀려나며 전술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즐라탄은 그의 성격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의 성격은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들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즐라탄은 자신을 찾던 AC 밀란으로 이적을 하였으며, "감독이 나의 꿈을 망쳤다."라며 대놓고 감독을 헐뜯으며 바르샤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즐라탄이 떠난 바르샤는 그가 원하던 챔스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 세리에의 왕이 돌아왔다! 세리에 우승컵을 놓치지 않는 즐라탄
이탈리아 리그 세리에A로 돌아온 즐라탄은 그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여주며 경기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그가 머물렀던 인테르와 소속팀 밀란의 매치인 밀라노 더비에서 인테르 팬들은 야유와 환영속에 즐라탄을 응원했고, 즐라탄은 그간 정이 있었는지 인테르를 헐뜯지 않고 오히려 바르샤와 과르디올라를 헐뜯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10-2011시즌 29경기 14득점 13도움을 기록했지만, AC 밀란을 세리에 A 리그에서 우승시켜주니 '세리에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어 그가 있는 이탈리아 클럽은 우승한다는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챔스에선 토트넘 홋스퍼 FC에 패배하여 챔스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1-2012시즌엔 폼이 절정으로 올랐습니다. 32경기 출장 28득점 9도움 성적을 내며 밀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으려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리그의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 이적소식이 발표가 나자 밀란의 팬들은 멘탈이 붕괴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이적할 생각이 없어 PSG에게 천문학적인 급료를 요구했는데 PSG가 그걸 수락했기 때문에 이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리그앙을 파괴하며 소속팀을 3연속 우승을 안겨주다
PSG로 이적한후, 이번에도 전 소속 클럽을 헐뜯을 것으로 예상한 축구 팬들이었지만, 오히려 즐라탄은 밀란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 반전을 나타냈습니다. 이 때문에 밀란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 즐라탄은 2012-2013시즌 성적은 34경기 30득점 8도움이라는 성적을 보여줬으며, 2013-2014시즌 성적은 28경기 25득점 11도움으로 밀란에 소속되었을 때보다 더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그리고 PSG로 이적하면서 그의 특유 습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헤딩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볼을 발을 올려 아크로바틱 골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헤딩을 처리할 수 있는 볼이면 헤딩으로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팀에선 주전 공격수를 놓치지 않으며 PSG를 리그앙 3연속 우승을 시켜주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모저모
세리아의 우승컵은 많이 들어봤지만, 챔스에는 운이 없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2008-2009시즌 인테르에 있을 때 바르샤가 챔스 우승하자 바르샤로 이적, 이후 2009-2010시즌에 인테르가 챔스 우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2010-2011시즌 밀란으로 이적하자 그 시즌 바르샤가 챔스를 우승하는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도 즐라탄은 첫 데뷔와 다른 클럽으로 이적하기 전을 제외하고는 경기 득점 수 2자리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인테르에서 25골이 첫 20득점대를 넘으며, PSG에서 30득점을 한 것이 자신의 최고 득점입니다.

축구 선수 중에서 이렇게 아크로바틱한 골을 넣는 선수는 보기 힘듭니다. 이런 독특한 행동은 어릴 때부터 배우던 태권도의 영향이 컸는데 축구에서 태권도를 접목한 유일한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 때문에 출장 정지를 받은 경험도 있습니다. 공을 처리하려고 발을 높게 들었지만, 상대 골키퍼에게 맞아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으며, 현재 소속팀인 PSG는 리그 첫 패배를 당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개성 있는 모습에 열광하는 축구 팬들이 많았습니다. 쉬운 골은 매번 놓치지만, 어려운 골은 말도 안 될 정도의 신체 능력을 발휘하며 득점에 성공하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지요.

게임 내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요? FM 시리즈에선 일화가 있었습니다. FM 2006 당시 사기적인 능력치를 보유한 역대 최고급 선수가 된 것입니다. 190cm의 장신인 즐라탄이 170cm도 안 되는 메시의 움직임으로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골 결정력과 헤딩 능력치가 최대치였습니다. 그래서 공이 자신의 근처에만 오면 무조건 득점이 되는 사기적인 모습을 보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FM 온라인에서도 능력치가 좋아 즉시 전력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다만 나이 시스템의 단점으로 인해 2~3번의 재계약이 이뤄지면 노장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은 어쩔 수 없습니다. 원하던 즐라탄을 얻어도 평소에 쓰지 않다가 상위 리그에서 플레이 해야 하는 아쉬움만 남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