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피플] "위기와 기회를 넘어"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 전병헌

인터뷰 | 서동용 기자 | 댓글: 75개 |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원실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셨습니다. '이제, 인터뷰를 진행해야지' 하는 순간 전병헌 회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회장의 핸드폰 안에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의 순위는 2위였습니다. "1위인 인천시의원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며 웃었습니다.

점수는 십만 점을 넘어, 몇백만 되어 보였습니다. 기자도 같은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보통 시간을 들여선 절대 이룰 수 없는 점수였습니다. 그에게 붙어있던 국회의원,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 IeSF 회장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이 떼어지고, 한 사람의 게이머,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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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회장님.



취임 후 2년의 임기 동안 넥스트e스포츠 4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모두 완료한 것에 대한 소감은 어떠세요.

우선 항상 지지를 보내주시는 e스포츠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취임 약속 들을 모두 지킬 수 있었던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의 가장 큰 의의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e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e스포츠협회가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팬-관계사-정부로부터 신뢰를 받고, 다양한 e스포츠 정책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쌓았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가장 큰 문제는 팬들뿐 아니라, 많은 e스포츠 관계사 및 관계자들이 협회를 신뢰하지 않고 갈등과 반목의 중심이라는 시각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심과 불신의 시각을 해소하는데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 좋은 치료약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언컨대 협회가 제역할을 못한다면 한국e스포츠는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e스포츠 팬들께서도 협회를 응원함과 동시에 때로는 감시하는 역할도 잘해야 한국e스포츠가 지속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모두의 노력으로 e스포츠가 소수 매니아 문화가 아니라 대한체육회가 인정한 '정식 스포츠'이자, 전 세계 유수 언론이 주목하는 디지털 시대의 핵심 스포츠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에 무엇보다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e스포츠가 올림픽에 입성하는 그 날을 이제는 꿈이라도 꿀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희망찬 것 아닐까요?






특히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가 되기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협회는 2007년부터 정식 스포츠 인정을 통해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고하고 진정한 스포츠로서 e스포츠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으나, 제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구심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나, 이를 도와줄 조력자가 거의 없었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협회장이 되고 나서 심혈을 기울인 것 중에 하나가, 대중과 기존 제도권 스포츠계의 인식변화, 스포츠 관계 기관 및 정부부처와의 협력확대와 더불어 체계적인 아마추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협회 사무국도 이러한 회장의 의지를 잘 이해하고 실무적으로 차근차근 준비했기 때문에 8년간의 불가능이 2년 만에 가능으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특히 지난 2013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주관의 정식 스포츠 국제 종합대회인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서 협회가 e스포츠 종목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대한민국 대표선수단 출전선수 전원이 메달을 획득하고, 종합성적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제도권 스포츠계와 대중, 스포츠 매체들의 e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어서 2014년에는 e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함으로써 대한민국 체육계에 e스포츠가 지금 젊은 세대에 얼마나 인기 있고, 위상이 얼마나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당시 KBS 9시 스포츠 뉴스에서도 전국체전을 크게 다뤘는데, 담당 기자도 전국체전 취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들은 혐오스러운 정치인밖에 가질 수 없다.



한국e스포츠협회 사상 최초의 정치인 회장이었기 때문에 대중의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약을 확실히 실천해 냄으로써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약속과 실천'에 대한 본인의 특별한 철학이 있다면?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들은 혐오스러운 정치인밖에 가질 수 없다." 제가 좋아하는 정치 명언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정치는 우리 삶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고, 거버넌스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좋아하는 'e스포츠'가 더 나아지고, 롤드컵을 한국에 유치하고, 케스파컵을 새로이 만드는 것도 사실은 정치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응원해주시고, 때로 잘못한 부분을 지적해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내가 오늘 출근길, 등굣길에 사용한 택시비, 버스비, 지하철요금, 가스비, 기름값 등등 모든 것이 정치로 결정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내 삶을 지배하는 정치를 외면하고 방치하면 내 삶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변해가지 않을까요?

정치인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결국은 여러분께서 얼마나 정치를 관심 있게 지켜보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 관심을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약속과 실천'을 하는 정치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어떠한 철학보다는 e스포츠 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더 나은 내 삶을 위해, 내 삶을 바꾸는 한국 정치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대한체육회는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외 일각에서는 e스포츠가 축구, 야구, 농구와 같은 일반적인 대중 스포츠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거부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 e스포츠의 현실에 대해, 정치인이나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을 떠나 기성세대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기성세대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e스포츠가 스포츠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령 육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다 멀리,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뛰는 것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할 것이고, 새로운 속도의 높이의 신기록에 환호할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육체적 충돌이나 시간의 경쟁보다는 선수 간의 수 싸움, 코치 간의 수 싸움, 단체의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 이러한 것이 스포츠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e스포츠를 어떠한 스포츠만큼이 훌륭한 스포츠이며, 프로게이머의 훌륭한 플레이에 뜨겁게 환호하고 짜릿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스포츠는 e스포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제도권이나 의사결정권에 있는 세대들은 과거 현재와 같은 게임문화, e스포츠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e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이 우리가 e스포츠 즐기고, 발전시키는데 큰 장애나 장벽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의 우리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식할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아날로그 스포츠와 동등한 인식과 지위 확보를 위해 저 자신도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재현하는 코스프레를 직접 여러 차례 해서, 실로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실행하기에는 꽤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앞으로도 이런 이벤트를 할 생각이 있나요?

코스프레는 협회장으로 팬들과 좀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였고, 스스로도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코스프레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고, 팬들 앞에서 직접 나섰던 경우는 1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팬들에게 느끼는 임팩트가 컸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라가스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e스포츠 팬들이 이미 저를 편하고 익숙하게 느끼고 있고, 언제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소통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코스프레는 여기까지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지금 e스포츠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2012년 취임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어떤 것인가요?

만으로 2년 반의 시간이 지났는데,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이버 스포츠에 e스포츠 페이지를 신설한 것을 꼽고 싶습니다. e스포츠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털에서 일반 스포츠의 하부 카테고리를 벗어나 야구, 축구 등과 함께 정식 스포츠섹션을 별도로 구성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e스포츠가 다시금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는데 아주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2월에 출범 15년 동안 준비해온 대한체육회 준가맹 승인 역시 기존 제도권 시각과 인식을 전환하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했듯이, 중앙대학교 e스포츠 특기 전형을 이루어 낸 것도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포츠 학부에서 e스포츠 선수를 받아들인 것 역시 기존 제도권 스포츠에 한 반 더 다가서고 대중의 인식을 전환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부의 각종 규제로 게임산업이 몇 년 전부터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업계가 성장에만 집중하다보니 정치권과 스킨십이 많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게임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는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좀 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제가 원내대표로 있을 때 '게임중독법'을 막아내면서 게임정책 전반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과도한 규제 정책들은 지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국게임산업은 지금 위기이자 기회의 시간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한국게임산업 캐시카우였던 PC 기반 온라인게임은 점점 쇠퇴할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게임은 지속 확대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2011년 오픈마켓게임법을 통해 앱스토어, 플레이마켓에서 중단된 게임 서비스를 다시금 오픈하게 했던 당사자로서 지금 모바일 게임의 발전을 보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한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국게임산업의 지금의 위기는 규제도 문제지만, 한국게임 회사들이 PC 온라인게임에서 과도하게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수익모델을 양산한 것도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성장하고 있는 모바일게임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PC 온라인게임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팬, e스포츠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항상 위기와 기회는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LOL)의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한국 e스포츠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만, 그러한 세계 진출화로 한국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는 더 커지고, 더 많은 팀들이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국제e스포츠연맹과 한국e스포츠협회는 항상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변화와 혁신을 하는데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이 보다 즐겁고 재밌게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e스포츠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께서도 연맹과 협회를 많이 응원해주시고, 언제 어디서 뵙더라도 즐겁게, 함께 e스포츠를 즐기는 한 명의 팬으로서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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