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차 세계 대전 기갑전의 전설, 독일의 중전차 "Tiger I"

게임뉴스 | 유준수 기자 | 댓글: 1개 |
독일에서 개최 중인 게임스컴 2016을 기념해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 Tiger I(이하 티거)의 전설 위장이 등장했다. 수 많은 전차 중에 티거의 전설 위장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티거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차라는 반증일 것이다. 실제로 각종 투표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차를 뽑으라면 언제나 1위에 오르는 전차다.

티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서 개발하고 운용했던 중전차로, 당시 타국의 전차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성능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 구현된 티거는 역사에서 보여줬던 압도적인 강력함 보여주지는 못한다. 실제로는 Sherman이나 T-34와 전투를 벌이면서 활약했던 전차지만 게임 내 밸런스를 위해 티어값이 다르게 배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티거와 동일한 타국 7티어 전차인 IS 등은 티거를 격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차기 때문에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운용하는 전차의 역사나 기원을 알고 타면 더 재밌는 법. 이제부터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 등장하는 전차들의 역사를 하나씩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수많은 역사적인 전차 중의 첫 타자로는 역시 티거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 세계 유일, 현재까지 기동이 가능한 보빙턴 박물관의 Tiger I


◆ 2차 세계 대전 기갑전의 상징, 티거의 개발과 성능

초기형 Tiger의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Tiger Ausf.H', 한국말로 풀면 '6호 전차 H형'이다. 등장 이후 이름이 바뀌길 수차례, 결국 히틀러의 명령으로 '전차 티거 E형'이 공식 표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티거' 혹은 '타이거'로 불렸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서는 36톤급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제 차량은 완성되었지만, 휴행탄 수 등의 각종 문제로 양산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36톤급 개발 계획이 벽에 막힐 무렵, 히틀러는 기동성은 필요없으니 방호력을 높인 전차를 요구했다. 이에 포르셰와 헨셸사에서는 45톤급 개발 계획을 제시하였는데, 이 45톤급 개발 계획이 티거의 시초가 된다.

1942년 히틀러의 생일 당시 헨셸사에서는 VK 45.01 (H), 포르셰사에서는 VK 45.01 (P)를 각각 제시하였다. 이때 헨셸 사의 모델이 채택되어 익히 아는 티거가 탄생하게 된다.

헨셸 사에서 제시한 티거는 7,5cm 70구경장과 그에 맞는 포탑을 탑재한 모델과 8,8cm 56구경장을 탑재한 모델까지 두 가지 안건이 제시되었다. 처음에는 7,5cm 70구경장을 양산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었는데, 관통력 차이가 크지 않았으며 탄약 적재량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수한 성능의 8,8cm 주포용 철갑탄이 개발되면서, 결국 8,8cm 주포를 탑재한 모델로 생산이 시작됐다.

방호력면을 보면 차체 전면은 100mm, 측면과 후면은 80mm, 포탑 전면은 최대 120mm의 장갑을 둘렀다. 경사형 장갑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께에 비해 방호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주력 대전차포들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 2차 세계 대전 도중인 1942년, 티거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니, 티거의 등장과 끝

사실 유명세로만 본다면 첫 등장부터 엄청난 활약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첫 등장 때는 단순한 지역 이동 도중에 4대의 전차 중 3대의 전차가 변속기 고장으로 기동 불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뒤늦게 회수를 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한심한 모습만을 보여준 등장이었다.

약 한 달이 지난 후인 9월 23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첫 실전을 치렀다. 이번에도 4대가 투입되었지만 소련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 대는 반파 상태로 소련군에게 노획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독일군은 실패에서 얻어진 교훈으로 티거의 결함을 수정함과 동시에 운용교리를 정립하게 된다.

이후의 티거의 활약은 매서웠다. 1942년 말에는 북아프리카에 투입되어 이듬 해 5월까지 150여 대의 미군 전차를 격파했으며, 최종적으로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항복할 때까지 단 7대의 손해만 입은 채 300대 이상의 적 전차를 격파했다.



▲ 각종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티거


압도적인 교환비가 성립된 이유에는 주포의 성능 차이가 가장 컸다. 티거는 상대방의 사거리 밖에서 편하게 공격할 수 있었던 반면, 적들은 사거리와 관통력 문제로 무리한 근접전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즉 적이 접근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적을 격파할 수 있었다.

힘들게 티거에게 접근했더라도, 왠만한 공격으로는 티거의 두터운 장갑을 관통시킬 수 없었다. 당시에는 영국의 6파운더 등의 주력포로는 일정 거리까지 접근해야만 티거를 겨우 상대해볼만한 수준이었다.

이외 독일이 전투를 벌이는 모든 지역에서 티거는 크게 활약했다. 서부전선 기갑전에서는 티거 한 대가 적 전차 5대 이상을 격파하는 수준의 교환비를 보였는데, 폭격에 의한 손실이나 자폭, 해체 등을 제외하고 나면 1:10이 넘는 교환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 티거의 당시 방호력은 각종 포탄을 도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가장 치열한 기갑전이 벌어졌던 동부전선에서는 티거 부대가 소련 전차만 5천대 이상 격파하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이 전투에서 '오토 카리우스' 등의 전설로 남게된 에이스 전차장들이 탄생했다.

물론 영국이나 미국, 소련 역시 티거에 대한 방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43년부터 무기 개발에 온 힘을 쏟았으며, 1944년에는 영국의 17파운더나 소련의 85mm 대전차포 등 티거를 공략할 수 있는 무기들이 주력으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런 무기들로도 티타임을 잡은 티거를 관통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영국의 17파운더 등 먼 거리에서도 티거를 관통 가능한 무기가 있긴 했지만, 명중률의 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독일 전차장들은 이미 노련해질대로 노련한 베테랑 전차장들만이 남아있던 반면 소련이나 영국 등의 전차장들은 대부분 사망하여 신병으로 채워졌기에 전투 능력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결국 1945년이 되어서야 미국과 소련에서 각각 90mm 대공포와 100mm 대전차포가 주력으로 배치되면서 티타임을 잡은 티거를 먼 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해졌다. 이에 전략적 가치를 잃게 된 티거는 티거 2에게 자리를 내주고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 100mm 대전차포가 등장하고 나서야 티거를 완벽히 격파하는 것이 가능했다


◆ 역사적 고증은 완벽한가?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의 티거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는 독일 7티어 중전차에 'Tiger I'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또한 티거 제작 이전 36톤급 개발 계획은 6티어 중전차 'VK 36.01 H'로, 포르셰사에서 만들었던 티거의 시제품은 7티어 중전차 'Tiger (P)'로 등장한다.

스톡 주포인 7,5cm 70구경장과 스톡 포탑은 티거 시제품 중 한 모델의 부품들이며, 8,8cm 56구경장과 업포탑은 티거의 주력 부품이였다. 엔진 역시 초기형 티거는 스톡 엔진인 HL210을 장착했었으며 후기형 티거는 업엔진인 HL230을 장착했었다.

다만 최종 주포인 8,8cm 71구경장은 주로 티거 2나 엘레판트, 나스호른, 야크트판터 등이 사용했던 주포로 티거에 탑재하자는 기획안은 나왔었지만, 티거가 실제로 사용했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실제로 티거로는 역사와 같이 혁혁한 전과를 내기는 힘들다. 실전에서 티거가 주로 상대했던 전차들은 T-34나 Sherman 등의 5티어 전차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T-34-85쯤은 되어야 티거를 어느정도 상대할 수 있었으며 IS-2나 SU-100은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차다 보니, 역사에서처럼 무쌍을 찍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사 내용&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iger_I)



▲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는 독일 7티어 중전차의 포지션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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